"아주 돌개라니까!"
엄마는 매번 나를 향해 돌개라고 불렀다.
대체 왜 내가 돌개인가 싶어 "돌개가 뭔데? 무슨 말인데?"라고 물었다.
"밖에 돌아다니는 개 있잖아. 집에는 안 들어가고, 맨날 돌아다니는 개! 돌개!"
"아주 물방개라니까!"
시엄마는 매번 나를 향해 물방개라고 불렀다.
대체 왜 내가 물방개인가 싶어 "왜 제가 물방개예요?"라고 물었다.
"아주 정신없이 움직이잖아. 집에만 있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맨날 나가려고만 하잖니!"
돌개 그리고 물방개였다.
잠시라도 한 곳에 머무르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엉덩이가 가벼운 여자였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모습은 어린 시절에도 도드라졌는지 초등시절 통지표에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주의가 산만하며"
발발발발거리는 특성은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쳐 진득하니 책 한 번 보는 것도 힘들었고, 글을 쓸 때도 '조금 쓰다 핸드폰-조금 쓰다 핸드폰'의 반복이었다. 몰입이란 능력은 내가 가질 수 없는 다른 세상의 것인가!!
그런 내가 41년 만의 돌개, 물방개의 습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생겼으니...
"한나야~ 건강검진 예약해~!! 3월에 받아야 검사 추가로 더 해준다니까~"
남편은 추가 검사를 받을 기회를 놓칠까 싶어 나만 보면 검진을 예약하라고 종용했다.
기다리던 검진 일정이 되었고, 나는 여기저기 검사실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받고 있었다.
대기하는 사람들의 지루함을 걱정한 것인지 곳곳마다 TV가 설치되어 있었고 화면에서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이 소리도 없이 나오고 있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TV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퀴즈가 나온다. 맞춘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가려져 있는 빈칸을 반드시 맞춰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위암과 대장암 예방하는 똑똑한 다짐-
1. ( )가 가벼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모지??? 모가 가벼운 사람이 된다는 거지???
그때 화면에서 네모를 가리고 있는 스티커가 휙 떼어졌고,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등장했다.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화면에서는 암을 예방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을 권하며 활발한 신체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귀에 딱지가 붙도록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야~ 제발 진득하니 앉아 좀 있어봐!"라는 말을 듣던 나였기에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이 돼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크흐흐" 콧바람을 뿜어내며 웃어댔다.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가슴속에 차올랐고 나에게 가만히 있질 못한다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봤지???? 나 엉덩이 가벼운 여자야~~!! 네이버에 <엉덩이가 가벼워>로 검색해 봐~~~ 치매도 안 걸린대~~"
이렇게 엉덩이가 가벼운 것을 극찬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내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으니...
-공부만 시작하면 똥부터 싸야겠다며 핸드폰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딸.
-공부 시작한 지 5분도 안된 거 같은데 목마르다며 물 마신다고 나오는 딸.
-10분 공부했으니 잠깐 쉬어야 한다며 소파에 벌러덩 누워 잠을 청하는 딸.
"야!!!! 너는 대체 모냐??? 모하는 애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엄마가 좋다고 엄마 무릎 베고 누워있는 딸에게 어찌 뭐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나를 똑 닮아 엉덩이가 가벼운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7개월 뒤부터 대학 입학원서를 써야 하는 상황인데, 잔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매일매일이 천하태평인 딸을 보면 내 가슴이 타들어간다. 베짱이처럼 기타를 들고 다니면서 엄마 아빠한테 연주를 들려주는 우리 딸...
"얘야~~ 너는 고 3이란 말이다!!!"
나의 속상한 마음이 하늘을 찔러갈 때면 약속한 것처럼 '아빠'한테 전화가 온다.
개구쟁이+말썽꾸러기+엉덩이가 가벼운 나를 키우고, 많은 삶을 살아낸 아빠는 "괜찮아. 아빠가 늘 기도하고 있잖니. 우리 다민이도 다민이의 길을 걸어갈 거야. 그분이 인도해주실 거야. 걱정하지 말고!"라며 낮고 작은 목소리로 내 마음을 위로해주신다.
아빠는 나에게도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등수는 뒤에서 세는 게 훨씬 쉬울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성실하지도 않았다. 학교는 늘 가기 싫은 곳이었고, 학창 시절의 나는 누구에게라도 손가락질받기 쉬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아빠는 "한나는 건강해서 1등! 공주니까 1등! 괜찮아~ 아빠는 우리 딸이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누구보다 잘 해내리라 믿어~! 우리 딸은 축복받은 딸이야! 우리 딸~최고~ 사랑해~~"라는 말을 매일매일 반복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 왜 그래"라며 괜스레 민망함을 타파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마음만 먹어봐~ 잘할 수 있다니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반복적인 일상이 하나 더 있다. 매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살며시 내 방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고 나를 위해 기도하셨던 아빠. 나는 잠들어 있다가도 아빠가 기도할 때면 잠이 깨버렸지만 끝까지 잠든 척하며 아빠의 기도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든든했다. 비록 내 모습이 학생으로서 칭찬받을 일이 하나 없었지만 나를 향한 아빠의 신뢰와 아빠의 기도를 알았기에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번엔 엄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엄마는 늘 내게 처음 이야기하듯 나의 태몽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쎄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거야. 엄마가 얼른 나무 위에 올라가서 감들을 따서 치마에 담았다니까. 그리고는 바구니에 감들을 놔뒀는데 그 감들이 세상에나 큰 두꺼비들로 변하는 거야. 너무 신기하지? 너 어디서 이런 태몽 들어봤냐??? 정말 특별한 태몽이라니까~ 감이 두꺼비가 되었다니까~~ 넌 분명 감이 두꺼비로 변한 것처럼 멋지게 달라지는 인생을 살 거야~! 학교 다닐 때 생각해 봐~ 벌써 변했잖니?!"
수백 번도 더 들은 태몽 이야기지만 엄마의 생생한 표정과 손짓을 볼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비록 별 볼 일 없는 나지만 '두꺼비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의심하며 내 삶에도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보니 지금껏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엄마, 아빠가 나를 향해 부어주었던 긍정의 시선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 것만 같다. 개뿔 없으면서도 '나 이한나야~' 하면서 갑자기 장착되는 자신감, 다 망쳤는데도 또 한 번 덤벼볼 수 있는 근성, 상처 입어도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나를 속 터지게 하는 아이를 다시 한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노력'까지...
나는 엄마, 아빠의 에너지를 받아 딸아이에게 태몽을 들려주었다.
"엄마, 아빠랑 아주 넓은 해변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가 쫙 갈라지는 거야. 너 홍해의 기적 알지?? 그런 거처럼 말이야. 엄마랑 아빠는 갈라진 바닷길, 촉촉하면서도 마른 모래바닥을 걸어가기 시작했어. 근데 저 멀리 하늘에서 하얗고, 엄청나게 큰 비둘기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더라고. 어디로 가나 보고 있는데 서서히 엄마 아빠 앞으로 오더라. 엄마가 새를 무서워하는데 그 비둘기는 하나도 안 무서웠어~ 친근감을 느낄 정도였다니까~ 근데 비둘기 발톱에 반짝반짝 빛나는 엄청 큰 보석이 있는 거야. 눈이 부실 정도로. 근데 큰 보석을 받으라는 듯이 엄마, 아빠한테 뭔가 표현을 하더라고~ 그래서 손을 내밀어서 엄마가 얼른 그 보석을 받았지~~ 너 이런 태몽 들어봤어??? 넌 정말 대단한 태몽이라니까~"
수없이 들려준 태몽임에도 늘 새롭다는 듯 딸아이는 똥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엄마의 태몽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처럼 나도 아이에게 그런 마음을 주고 싶었다.
힘들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사람이 바로 너'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자작 태몽을 알리 없는 딸은 내 무릎 위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너도 너의 삶을 살아갈 거야.
엄마는 계속 너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할 거야.
우리 딸은 베짱이처럼 기타를 잘 쳐서 1등, 잘 먹어서 1등,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서 1등.
세상이 정해놓은 '등수'로 너를 평가할 수 없지!
하나님이 엄마에게 맡겨주신 우리 딸~ 엄마가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사랑해줄게.'
때로는 한없이 부족한 엄마이지만...
내가 먹었던 긍정과 사랑의 시선을 아이에게 주고자 오늘도 노력해본다.
(이 글은 오랫동안 딸아이에게 보여주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