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by 이한나

"아우~ 나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독립할 거야.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야지~ 나도 혼자서 살면서~~~ (어쩌고 저쩌고)"

아이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순간 정말이지 밥맛이 뚝 떨어졌다. 입은 1초도 기다릴 수 없다며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야~ 너도 나가서 개고생을 해 봐야지. 네가 월세 내면서 살 수 있으면 나가던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가서 네가 밥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스스로 돈 벌어서 잘 먹고 잘살아~ 나도 좀 편하게 살아보게!"


"당연한 거 아니야? '언제 잘 거냐? 숙제 다했냐? 12시에는 자라!' 이런 잔소리 안 듣고 나도 편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렇지~"

딸램아... 너는 그만했어야 했다.

"와~~~ 저거 저거 말하는 것 좀 봐~ 저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그게 지금 엄마 앞에서 할 소리야??"

남편은 누구 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으나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무조건 마누라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판단력이 뛰어난 그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깊이 숙이고 찜닭을 먹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남편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여보~~~ 나 지금 무지 열 받아! 내가 기분 나쁘겠어 안 나쁘겠어? 여보가 말을 해 봐!"

근데 이 남자... 적군이었다.

"아직 어리니까~ 혼자 살아보고 싶기도 해서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뭘 그거 갖고 그렇게 화를 내!"

하... 나는 전신의 힘을 다해 남편을 째려보았고, 레이저 광선이 뜨거웠는지 남편은 박쥐처럼 급하게 아군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아니야 아니야. 여보 말이 다 옳아. 이다민이가 잘못했네~ 나가서 고생을 해 봐야 안다니까..."


나는 오늘따라 왜 그리 분이 안 풀렸는지 딸아이를 향해 계속 잔소리를 퍼부었다.

"너 진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싫어하면 그만해야지.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사람이 기분 좋겠어 안 좋겠어? ㄴ아ㅓ얼;ㅣㅏ멍ㄴ;리ㅏ먼이ㅏ럼ㄴ;ㅣ아ㅓㄹ;민아ㅓㄹ;ㅣ만얼;ㅣㅁ나얼;ㅣ만어리마어리;ㅁ나얼;ㅣ만얼;ㅣㅁ나어리만얼;ㅣㅁ나얼;미나얼;ㅣㅁ나어리ㅏ머ㅓㅣ마너ㅣ;ㅏㅎㄴ미ㅏ런ㅇ미ㅏㅓ"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피곤한지 딱 한마디만 허공에 내지르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꼭 자기 아프면 저렇게 예민하게 군다니까..."

질 수 없던 나는 "야!!!!"라는 한마디를 내질렀지만... 더 이어갈 기력이 없었다.

딸의 말처럼 나는 요즘 아프다.


"2022년 열심히 살 거야! 운동도 이제 열심히 가야지~ 필라테스도 다녀오고, 집에서 러닝머신도 해서 코로나 시기 동안 찐 살들 다 빼야지~"라는 말을 하며 야심 차게 한 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비록 자기 계발의 시작인 미라클 모닝은 못하더라도 나를 위해 좀 더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다.

체력적으로 계획을 매일 실천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 생각돼 천천히, 듬성듬성 하니 무려 13일이나 해낼 수 있었다. 과거에는 '3일 하고 포기', '다시 2일 하고 포기', '힘을 내 월요일 다시 시작했다가 포기'했었으나 이번에는 오래 지속되었다!!............라고 문장을 마치고 싶었는데...

제길 바로 병이 나버렸다.

뭐가 대체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인지 염증 수치가 올라가면서 취약한 곳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났다.

"집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 있어요. 쉬고 또 쉬고 정말 많이 쉬어야 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왜 이리 야속했는지 모르겠다.


'1월에 일이 없어 쿨쿨 쉬다 조금 걷고 필라테스 열심히 했다고 병이 나?

이 망할 놈의 약골 체질~ 아주 항생제를 입에 달고 사냐??'


결국...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나의 마음은 짜증으로 가득 차 버렸다. 평소 아이의 미래 독립선언을 들을 때면 "엄마랑 같이 살아야징~~~ 엄마는 우리 딸내미 좋은데~~ 맨날 같이 있고 싶은데~잔소리 또 해야지~~ 엄마는 곧 잔소리~ 잔소리는 곧 엄마란 말이야~~"라며 콧소리를 내던 엄마였다. 나보다 더 큰 아이가 너무나 예뻐 궁둥이를 팡팡하며 볼에 입 맞추고 등을 쓰다듬던 나였단 말이다. 그런 내가 오늘 딸아이의 독립선언에 서글퍼 방 안에서 눈물을 훔치고, 아이를 향해 "나가서 살아 보라지 뭐!"라며 씩씩거리고 있으니 참으로 웃긴 노릇이었다.


오늘 나는 왜 이런 것일까???

천천히 되짚어 보면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 나는 구부리지도 못하는 몸뚱이로 옆에서 사부작거렸다. 이윽고 "나는 괜찮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는 불필요한 투지가 가슴 속에 피어올랐고, 나는 싱크대 앞에 서있는 내 몸을 거칠게 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희생을 불사지르는 엄마의 마음이라며 혼자 으쓱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엄마, 아빠의 땀과 눈물이 담긴 아름답고도 거룩한 밥상 앞에서 '엄마를 벗어나고 싶다니!!! 독립이라니!!!!' 지금 그게 할 말이란 말인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평소 나의 언니는 타인을 향해 넓은 마음을 갖는(쓰고도 민망) 나를 보며 속이 '다라(대야) 같은 년'이라고 했다. 심지어 플라스틱 다라(대야)는 잘 깨지니 깨지지도 않는 '스뎅 다라(대야)'라는 말로 단단하고 태평양처럼 넓은 나를 치켜세우곤 했었다.

확실한 오류였다. '스뎅 다라(대야) 같은 년'은 무슨~ 나는 그날만큼은 '간장 종지 같은 년'이었다.

어떤 것도 담기 힘든 종지처럼 '작은 마음'과 극도로 활성화된 '예민함'의 콜라보가 딸아이의 독립선언에 엄청난 반응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나고 나니... 딸의 문제가 아니였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내 감정은 내 책임'이라는 TV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말이 번득 생각난 것이다.

매번 마음이 상할 때면 '나를 화나게 한 사람, 나를 화나게 만든 상황'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힘들었을 때, 슬펐을 때, 화가 났을 때, 억울했을 때...

왜 그렇게 느꼈는지 찾아가다 보면... 그렇게 느끼게 된 원래의 마음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무거운 몸으로 차린 밥상에 '너무 좋아~ 맛있어'라는 칭찬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인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봐 주길 원했나 보다. 입맛은 없었지만 식탁에서 쏙 빠지기가 미안해 억지로 저녁 식사에 응했던 그 시간...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 엄마의 잔소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말은 마치 '엄마가 싫어 함께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작은 노력을 알아봐 주길 원했던 그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서글펐다...


속상하고 서운한 내 마음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나는 습관적으로 "가서 개고생을 해봐야지"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나도 네가 없이 편하게 살아보자"는 말로 되갚았다.

맨날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면 뭐할 것인가?!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자극을 받게 되면 반응을 하겠죠? 근데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반응해버린다는 거예요. 이런 습관적인 반응은 폭력적인 반응이에요. 반대로 지금 무슨 상황이지? 내 감정은 무엇이지?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 이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선택하는 반응으로 성숙한 반응입니다."

이런 말들은 딴 세상의 이야기였다.


강의한 내용을 실천했다면 어땠을까?

'아... 아이가 독립하고 싶다는 말을 하네.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까지...

아 나도 기분이 나쁘다. 왜 나쁘지?

생각해보니 아픈 몸으로 딸내미를 즐겁게 해 주려고 식사 준비까지 했는데...

아...내 진짜 마음은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었구나...'


이렇게 머리가 돌아가면 얼마나 좋냐고!!!

실천은 개나 줘버리고 "지금 이 순간~~~~~~ 딱!" 떠오르는 생각을 한 번의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자동 발사를 하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나 어쩌노????


'리더십 강사가 리더십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강사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 리 없다마는... 그래도......... 나도 강의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내 안의 간절한 절규가 일어났다.


간절함이 가득할 때쯤... 만고의 진리가 떠오른다.

"역시 열 받는 순간엔 그냥 입이라도 닫고 있어야 된다니까. 꼭 같이 입 열고 맞장을 뜨려고 해서 문제야~ 문제~"

마음에 불이 치솟을 때, 묵직한 서글픔이 밀려올 때는 잠시라도 침묵하며 '내 마음은 지금 어떤 마음이지?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라며 한 템포 쉬어가며 내 진짜 마음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내 마음이 정리가 된 것인지 나는 아이의 방문을 두드려본다.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엄마가 몸이 아프니 평소보다 예민하긴 했어. 인정할게. 마음 상했다면 미안해. 엄마도 너 맛있는 거 해주고 싶어서 노력한 건데 독립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서운했나 봐. 다민이 말이 엄마가 싫다는 말로 이상하게 해석되는 거 있지?!"


딸아이는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작게 이야기한다.

"난 엄마가 좋아. 잔소리가 싫을 뿐이야... 근데 정말 엄마를 좋아해. 진심!!!그리고 말이야~ 나 용돈 좀 줘... 돈 모아서 집 나갈라고 달라는 용돈이 아니라... 그냥... 나도 쓸 곳이 있어서 필요한 용돈이야..."


"야! 니가 똑바로 해 봐! 잔소리를 하겠냐??"라고 맞받아 치고 싶지만... 자동 발사하려는 입을 틀어막고 미소를 짓는다.

sticker sticker

2022년에는 제발 요놈의 입이 자동 발사하는 것을 멈추고 '진짜 내 속마음'을 찾아가길 소망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전 20화오늘의 운전 점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