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본 성공한 사람이다! 18살 먹은 딸내미가 아빠 이틀 집에 없는 동안 '아빠 언제 오나, 아빠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나 몰라. 다른 게 뭐가 필요해?! 이게 성공이지~ 그지 않아??"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진짜 보고 싶다고 했어?"라고 물으며 나를 바라본 채 씨익 웃는다.
얼마 전 남편과 집 앞 천변을 걸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수다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남편의 마음에 수도 없이 많은 상처를 낸 아버지였다.
"엄마를 힘들게 했던 시간들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싫어... 근데 나는 가끔 무서워... 문득문득 내가 아빠를 닮으면 어쩌지 걱정이 돼. 아직까지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그 성격이 나오면 어쩌냐...?"
남편의 진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를 단 번에 날릴 수 있는 사람이 그 옆에서 걷고 있는 나였다.
"싹이 보일라고 하면 애초에 개지랄을 떨어서라도 정신 번쩍 차리게 해 줄 거야!! 그니까 걱정 마!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보는 안 그래. 지금의 여보는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이런 걱정은 참 좋은 걱정 같지 않아? 혹시나 닮을까, 혹시나 은연중에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자꾸 돌아보게 만들잖아. 우리 이런 걱정은 하면서 살자~~ 여보도 알다시피 나도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그러니까 우리 정말 정신 번쩍 차리고 살자."
그 후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남편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남았다.
"우리가 한 번 행복한 가정 만들어 보자. 시간이 지나서 돌아봤을 때 그래도 괜찮다 싶은 가정, 우리 딸이 커서 엄마 아빠처럼 살아야지 그런 마음 생길 수 있는 가정 제대로 만들어 보자..."
남편이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아이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아빠 말이야... 참 잘 컸어. 할머니 이야기 들어보니 가정환경이 참 안 좋았던데... 난 아마 견딜 수 없었을 거 같은데 우리 아빤 정말 좋은 어른이 되었어..."
어린 시절의 남편은 어땠을까?
그의 모습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있었다.
아이와 내가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극도로 초조해지고, 불안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거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 심지어 어떤 상황인지, 뭐가 문제인지 알 것도 없이 '제발 그만해!!'라고 소리치며 상황을 빠르게 종료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딸과 엄마의 적당한 매치는 어느 곳이나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때마다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꼭 끼어들어서 더 불편하게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내가 화를 내는 날도 있었다.
언제였을까? 남편이 좋아하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는 맥주를 꺼내 먹은 날이었다.
홀짝홀짝 마시던 그가 입을 떼었다.
"난 말이야... 큰소리가 나면 불안해. 정말 심장이 두근두근 해... 너랑 다민이가 내는 소리가 별소리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격앙된 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항상 웃는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일단 큰 소리가 나면 힘들어. 어릴 때도 그랬던 거 같아. 엄마 아빠의 싸움이 시작되면 방에 들어가 이불 안에 숨어 있었어. 정말 언제 끝날까 기다리는 그 끔찍했던 시간들이었는데 딱 그때의 초조함이야..."
딸아이와의 관계에서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는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에 남편은 내게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시간이 지나고 남편은 여전히 나와 딸과의 매치에 간혹 파르르 떨때도 있었지만 서서히 적응이 되는 듯해 보였다.(여보~적응시켜서 미안해;;;)
여러 가지 기억으로 어린 시절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아무 힘이 없던, 해결 능력도 없던... 그러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아이는 그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눈물만 흘리며 견뎌낸다. 시간이 지나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 눈앞에서 펼쳐졌던 일들이 어떠한 일이었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롭게 깨달으며 추상적이었던 슬픔이 선명해진 그림으로 다가와 마음속에 저장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행히 누구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꿈을 꾼다.
'나는 다시는 불행하지 않겠노라고! 나의 자녀에게도 그 불행을 알게 하지 않겠노라고! 반드시 행복하게 살아가겠노라고!'
우리 부부는 굳센 결의로 "다른 건 몰라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절대 싸우지 말자!"는 원칙을 만들었고 다행히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 아이 앞에서는 화를 내는 목소리로 말다툼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쯤이었을까? '이제 고학년이니 우리의 말다툼을 이해하지 않을까? 그래!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며 아이 앞에서 짜증 난 목소리로 몇 마디를 주고받고, 집안에 온통 냉랭한 기운이 감돌 때였다.
아이는 조용히 내게 와 "엄마! 내가 메일 보냈는데.... 한 번 읽어봐"라고 속삭였다.
오래전 아이가 보낸 이메일어쩌면 많이 컸다고, 우리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 아이 역시 집을 감싸고 도는 차가움이 갑갑했고, 어린 시절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엄마, 아빠의 함박웃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12살은 절대로 큰 나이가 아니었다. 18살이 되어서야 "또 왜? 방금까지 꽁냥거리다 갑자기 왜 냉전인데?? 몰라 몰라~~ 둘이 화해하고 나한테 말거셈"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읽은 딸은 "그래도 한 집에서 둘이 분위기 안 좋으면 나도 진짜 집 나가고 싶다는 건 알아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남편의 말을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한 번 행복한 가정 만들어 보자! 우리 딸도 커서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은 그런 가정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자..."
나도 남편에게 답해본다.
"여기 있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너의 아내가 여기 있어. 마음이 상할 때도 있겠지... 하지만 풀어낼 힘도 우리에게 있으니 잘 풀어가는 모습도 보여주는 엄마 아빠가 되자! 우리 싸울 때 이 글 카톡으로 링크 걸어주는 거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