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쌉인정!

by 이한나

"아이쿠~"

신발이 벗겨지며 넘어지려는 순간! 남편의 길쭉한 팔이 자동으로 뻗어 나온다.

내 양쪽 어깨를 감싸 쥔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괜찮아?"라고 물어보기는커녕... "아 진짜~ 조심 좀 해! 왜 맨날 그러는 거야? 아니면 좋은 길로 가던가? 왜 울퉁불퉁한 곳으로 다니는데?"라며 폭풍 잔소리를 쏟아낸다.

24년 전 그는 덤벙거리는 17살의 나를 보며 "괜찮아. 오빠가 챙겨줄게. 나는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는데 네가 있어서 너무 좋다. 오빠가 너를 지켜줄게." 하던 그 오빠는 어디 가고 어떻게든 잔소리할 곳만 찾아다니는 아재만 내 옆에 있는 것인가...

촘촘한 그물망 같은 42살 오빠에게 내 행동은 매일매일 한 번도 빠짐없이 걸려든다.

"오빠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

시원하게 그물에서 빼줄 법도 한데 집념의 사나이인 남편은 아내의 아우성에 입을 다물리가 없다. 그는 나를 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내 귀에는 정확하게 들리게 두 글자를 뱉어낸다.

"지는??"


너란 인간... 한 번도 지지 않는 인간. 한 번도 져주는 법이 없는 인간.

짜증이 솟구쳐 두 눈으로 강력한 레이저를 뿜으며 째려보니 남편은 부연설명을 시작한다.

"솔직히 너도 잔소리가 적은 편은 아니잖아! 네가 나보다 많으면 많지~ 적진 않을 걸??"

오늘만큼은 나도 지고 싶지 않았다.

"내 잔소리는 오빠 잔소리랑은 급이 달라! 내 잔소리는 공기 같은 거야~ 편안하게 존재하는 거라고~ 있는 듯 없는 듯! 근데 오빠 잔소리는 방귀 같은 거야~ 가만히 있는데 훅 들어와~ 그니까 편안한 느낌이 아니야. 소리도 크고 냄새도 나는 것처럼 오빠 잔소리는 짜증나!"

누구의 잔소리가 더 지독한지 극렬한 언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딸아이는 입을 열었다.

"아빠는 옷 정리해라, 쓰레기 버려라, 창문 열어라 깨끗한 거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엄마는 뭐 먹지 말아라, 그만 먹어라, 건강에 대한 잔소리를 해. 둘이 있으면 깨끗하게 살고 건강한 거 먹어서 장수할 거야! 그러니까 둘이 잔소리 열심히 하면서 살면 되겠네~ 잘 살아봐!"


이 명쾌한 정리는 무엇인고...

남편이나 나나 딸아이의 말에 무한 수긍을 하며 숙연해졌고, 이내 파스타를 먹는 것에 몰입하기로 했다.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 리조또, 오일 파스타까지 뱃속에 채워 넣으며 행복을 만끽하는데 남편은 슬슬 배가 불러왔는지 기운을 차리고 아까 마치지 못한 연설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말이야~ 엊그저께 유튜브에서 봤는데 소유진이 백종원이 잔소리가 엄청 많다고 그러더라. 소유진이 콩나물을 사 오면 '집에 콩나물 있는데 왜 또 사 오냐고?' 그럼 소유진이 '있는지 몰랐다고~' 그럼 그냥 넘어가야 되는데 잔소리 폭격이 시작된다는 거야. 그때 오은영 박사님이 해결책을 줬어. 그럴 때마다 그냥 백종원 말을 따라 하라는 거야. 있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집에 콩나물이 있는데 또 사 왔네' 이렇게 말이야~"

"여보랑 똑같네~~~ 다음부턴 여보가 하는 잔소리 따라 하면 되는 거야? 어머~ 옷을 또 안 걸었네! 어라~ 또 쓰고 제자리에 안 뒀네~~"

한참을 웃던 우리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지상낙원 14층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은영 박사님은 왜 상대의 말을 따라 하라고 했을까?

잔소리부터 생각해보자.

머리로는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내 귀에 들리는 순간 듣기 싫고 짜증 나는 소리... 바로 잔소리.

보통 우리 가족이 잔소리를 대하는 자세는 3개로 나뉜다.

1) 말없이 수긍하고 잔소리에 응하는 일을 완수한다.

2) 미안하다는 표현과 함께 속히 그 일을 완수한다.

3) 일단 티꺼운 표정 한 번 연출한 뒤, 아래와 같은 말들을 한다.

"알고 있다고! 하려고 했다니까"

"몰랐으니까 그렇지~ 자긴 처음부터 잘했나?"

"너도 전에 그런 적 있으면서 왜 이렇게 까칠함?"

"넌 안 그래?=지는?"

내 잔소리를 대하는 남편의 자세

그때그때 다르지만 우리는 종종 옳지만 기분 나쁜 말 바로 잔소리 앞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너도 그럴 것이라는 평등 이론을 펼치며 철저하게 자신을 방어한다. 왜?? 일단은 기분 나쁜 말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나 방어하는 순간 안타깝게도 공격은 재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단 촘촘한 42살 우리 집 아저씨만 봐도 그렇고, 백종원 아저씨도 그렇고, 우리 엄마네도 매한가지다.

아빠가 엄마에게 몇 마디라도 했다 하면 엄마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휴~ 지겨워~ 저놈의 지적질~ 당신이나 잘하셔"곧장 대응하고,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맞은 아빠는 "매번 저런 식이니 사람이 평생 안 바뀌지"라는 말로 2차 공격을 재개한다.(이후 여러 번의 공격과 방어가 오고 간다.)


그랬다. 신기하게도 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한 방어 전략이 잘 통하기는커녕 2절, 3절, 4절에 이어 도돌이표까지 붙은 잔소리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잔소리의 나비 효과???

서로가 피곤해지는 상황이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이렇게 글을 쓰니 나도 남편의 잔소리를 1절에서 마무리 짓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부턴 인정을 하겠다

"우산 쓰고 여기에 던져놓은 사람 누구야?"라고 물으면

"아이고! 내가 우산 쓰고 여기에 나뒀네~"라고 말해야지.

"벌레 생기게 왜 먹고 쓰레기통에 안 버렸어?"라고 추궁하면

"아!! 벌레 생기게 먹고 쓰레기통에 안 버렸네!"라고 따라 해야지!


따라 하기 연습까지 마쳤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잔소리를 하고 싶었.

"오빠~ 내가 선크림 바르라고 했는데 발랐어? 또 안 발랐어? 내가 바르라고 했잖아~ 이 쭈그렁탱이야!! 피부 노화된다고!!!"

남편이 윗입술을 씰룩거리며 눈을 흘기려는 순간, 나는 바로 "따라 해! 따라 하라고!"라며 방어가 아닌 인정을 해야 함을 알려준다.

학습능력이 출중한 남편은 "아~ 선크림 바르라고 했는데 오빠가 또 안 발랐네. 피부 노화된다고 했는데 또 안 발랐네. 다음엔 꼭 바를게."라는 올바른 말을 뱉어낸다

신기하게도 '가자미 같은 새끼~ 마누라한테 눈 흘기는 것 좀 봐!!!!'라며 울리던 마음의 소리는 남편의 인정하는 한마디에 소리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인정... 이 녀석... 잔소리 흡입기였구만~~'


렇게 우리 부부는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잔소리를 앞두고 "내가 잔소리할 건데... 인정해줘!"라는 말로 물밑작업을 시작한다. 신의 옳은 말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며...


"그대여... 내 인정할 터이니 편하게 잔소리를 하라!!
그리고 인정에 그치지 않고 나 역시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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