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이 미워지기 전에...
팀장이 된 지 이제 4년 차.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다양한 불만들이 있다. 아무리 다니기 좋은 회사여도, 복지가 좋아도, 연봉이 높아도 불평불만은 나오게 되어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스낵바의 종류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같이 일하는 동료의 행동이 불만스럽다는 불평까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하는 걸까? 이런 불만들 가운데에서도 팀원들이 믿고 지지하는 팀장님들은 있기 마련. 이런 종류? 의 팀장님들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몇 가지를 끄적여 보려 한다.
어느 날 다른 부서의 팀원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ㅇㅇ님, 저 퇴사해요.."
"그래요? 제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렇게 그녀의 퇴사 이유를 듣게 되었다. 팀장님이 너무 바빠 팀원들의 커리어에 대해 신경 써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 팀원이 하는 일도 우리 서비스에서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업무의 특성상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고 다른 팀과 협업을 해야지만 본인이 원하는 업무 생산성이 나오는 일인데,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데일리 업무만 진행하는 것 같아 업무에 프라이드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분명 ㅁㅁ님이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인데.. 너무 아쉽네요. 팀장님에게 이런 이야기로 면담을 했었나요?"
2차례나 면담을 했지만 팀장님에게 돌아온 답변은 "지금은 ㅁㅁ님이 알아서 업무를 진행해줘야 하고 현재 개발팀 인력이 부족해 기획한 시스템을 다 구현할 수 없어요."라는 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참 아쉬웠던 점은 팀원에게 현재 현실에 대한 상황만을 이야기한 팀장님의 태도다. 상황은 알겠으나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은 벽에 가로막힌 사람에게 벽만 더 높이 쌓는 꼴이다.
"그런 생각이 있었군요.. 제가 요새 일이 너무 바빠서 ㅁㅁ님의 커리어에 대해 소홀했던 것 같네요. 일단 개발팀 인력이 부족해서 시스템 부분을 개선할 수는 없지만 우리끼리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ㅁㅁ님은 자기 일에 욕심도 있고 미리 생각하고 정리도 잘하는 게 장점이니 어플 개선안 기획안부터 작성해보면 어때요?"라고 얘기해줬으면 어땠을까..
현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에 대해 공감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다음 step에 대한 방향성을 알려줘야 하며, 동시에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회사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거기에 장점까지 얹어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어찌 보면 팀장이 갖춰야 할 리더십이란 팀원들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설정해주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로드맵을 계획해야 하는데 그 팀장님은 업무가 너무 바빴으므로.. 이해는 되나 참 아쉬웠다. 하지만 그전에 위의 원칙이 잘 지켜지려면 이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기 위해서는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에 대화할 대상이 내가 믿을만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그러면 대화를 하면서 신뢰는 어떻게 쌓는 것이냐 묻는다면,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라고 답하고 싶다.
회의 중에 누군가가 내는 의견을 싹둑 자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팀장이 되고 나서 초반에는 팀원들이 의견을 제시할 때 자주 그랬었다. 내 시간은 한정적인데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잘게 쪼개어서 쓰게 되고 더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이 말을 계속 듣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팀원이 지나가듯 했던 아이디어들이 효과를 보게 되었던 사례가 있었고 나는 팀원들이 냈던 아이디어들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는 맞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좋은 의견들도 있었고, 내가 시도했었지만 지금 다시 하면 좋았었을 법한 의견들도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팀원들의 의견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자세를 버리고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팀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 이야기하게 되었고 우리 팀은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너무 자유로운 의견이 오고 가서 지금은 좀 피곤하지만.. 에휴)
추가로,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나서 나의 의견을 제시할 때는 아래와 같은 단어로 시작하는 건 피하고자 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부정적이라는 견해가 깔려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아니, 내 생각은~". "근데, 내 생각은~"
입사한 몇몇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ㅇㅇ님이 제가 면접 보러 왔을 때 응대해주셨는데 진짜 인상 깊었어요."
"ㅇㅇ님은 제가 면접 보러 온 날 저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회사에 방문하는 누구이든 간에 내가 문을 열어줬다면 친절하게 응대하고 물이나 커피를 가져다준다. 심지어 물을 달라고 하면 차가운 물, 미지근한 물, 뜨거운 물 중에 무얼 원하는지까지 물어본다. 그렇게 내가 응대했던 면접자분들이 입사를 하게 되면 내가 팀장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팀장님이 커피까지 가져다준다고요?라는 꼰대 문화에 길들여진 반응들.. 속상하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데 말이다. 우리 회사에 방문했던 사람은 언제든지 우리 서비스의 고객이 될 수 있다. 심지어 UX세미나에 가서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본 사람도 알고 보니 우리 서비스 고객이었던.. 참으로 좁은 세상이다.
그리고 궂은일, 예를 들자면 무거운 걸 드는 일이나 편의점에 가서 택배를 부치는 일들. 우리 팀은 그게 자기의 일이면 본인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물론 너무 무거운 짐들은 모든 팀원이 도와서 하지만) 그게 팀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내가 발주 넣었던 책자들, 브로슈어들 퀵이 도착하면 나는 내가 내려가서 양중하고 옮겨 놓는다. 그러다 어깨가 빠지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나 내 일인 걸.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 내가 믿고 따르던 팀장님이 있었다. 그분은 항상 먼저 나서서 보여주셨고 나에게 싫은 일을 주는 사람이 아닌,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알려주신 감사한 분이다.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팀장이 되고 보니 더 좋은 팀장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어 여러 방법들을 시도해 봤었다. 그렇게 내가 배운 대로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경험을 물려주고 싶다. 지워야 되는 레거시가 아닌 좋은 레거시?로.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도 팀원들이 믿는 팀장님들은 다 위와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까지 끄적인 글들은 자랑 아닌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저도 실패한 적은 많아요..
세상 모든 팀장님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