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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Jun 26. 2024

스물한째 날 | 해냈다, I did it!

새벽 운동, 무작정 걷기 #21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I did it !


드디어 마지막 날, 스물한째 날이다. 무턱대고 시작한 21일 목표. 정말 21일이 오다니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나는 21일 동안의 새벽 운동을 '잘' 끝 마쳤다. 끝까지 반신반의하며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는데, 결국 해냈다. 해내고 말았다. 잘했다, 잘했어 Heidi!










사실 어젯밤 잠을 별로 자지 못했다. 두 시간 남짓 눈을 붙인 것 같다. 학창 시절에 방학식 전날 그 마음처럼 새벽 운동 마지막 날이 설레서였을까? (그냥 유튜브 보다가 늦게 잔 거잖아.... 아 쫌! 조용히 해, 진짜 잠이 안 온 것도 맞잖아! 자아분열)



어쨌든 새벽 두 시가 넘어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4시가 되기 전(거의 3시 반쯤) 눈이 떠졌다. 잠귀 밝고 예민한 우리 강아지는 내가 꿈틀대면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조금 더 자보려고 팔베개를 시도해 봤지만 내가 잠이 깼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 버렸다. 귀여운 자슥. 무한 뽀뽀 공격으로 혼내준 뒤에 벌떡 일어나 알람을 미리 꺼버린다.


잠시 멍 때리면서 머릿속으로 오늘의 코스와 동선을 그리며 나름의 계획을 짜 본다. 이제는 몸이 루틴을 기억하는 듯 나도 모르게 준비하는 게 익숙하다. 밖으로 나오니 건너편에 보이는 일출빛이 조금 특이하다. 


오늘 하늘은 푸르스름과 불그스름이 섞여있네, 이것도 나름 예쁜데? 













타임스탬프를 찍고 보니 4시 13분이다. 생각보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오늘은 분명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인지도. 그동안 지켜온 루틴에 오늘은 두 가지가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강아지 영양제 챙겨주기 - 가글 하기 - 고양이 세수하기 - 땀복 갈아입기 - 머리 묶고 똑딱핀 꼽기 - 동생 방문 열고 강아지 넣어?주기 - 엘리베이터에서 출발 타임스탬프 찍기 - 산책 어플 켜기 - 걷기 - 귀가 - 엘리베이터에서 도착 타임스탬프 찍기 - 샤워 후 옷 갈아입기 - 노트북 열고 기록하기


바로 '무인카페에서 커피 사 먹기'와 '고양이에게 츄르 주기'이다. 사실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보다 고양이와 커피가 더 설렌 것 같다. 그 정도로 왠지 많이 기대가 되었다.









원래 계획은 운동기구를 하려 내려가는 계단에 있는 검은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잽싸게 숨어버리긴 했지만, 아주 멀리 가지는 않고 근처에서 나를 쳐다보던 고양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따라 그 고양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된장, 꼭 가는 날이 장날이라니까. 일단 운동기구를 하고 나서 다시 고양이를 찾아보기로 한다. 역기 올리기와 내리기를 3세트씩 하면서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내 눈은 고양이를 찾느라 바빴다.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냥이 울음소리도 내본다.


'미야-아옹~ 먀-옹' 


1도 안 똑같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운동기구를 다 끝내고 아래쪽 길로 내려와 고양이가 자주 보이던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아니 다 어디 갔냐고, 왜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건데! 이 언니가 츄르를 사 왔단 말이다!



저 멀리 길 가운데를 휙-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놀래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본다. 너무 가까이 가면 확 도망가버릴 것 같아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닥에 앉아본다. 고양이 소리도 다시 내본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다.)


회색을 중심으로 여러 색이 꽤 화려하게 섞인 처음 보는 고양이었다. 사람 손을 잘 안 타봤는지 경계심이 엄청났다. 어디서 본 대로 눈도 천천히 깜빡여 보고 가만히 기다려 본다. 그런데 어째 점점 더 멀어진다. 카메라를 켰는데 계속 움직이며 멀리 가버린 탓에 사진도 한 장 찍지 못했다.









너무너무 아쉬웠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계속 시간을 끌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고양이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기로 한다그래도 혹시나 싶어 공원 밖으로 나가는 동안 계속 고양이를 찾았다.



너무 간절했는지 우습게도 오만 고양이로 보이는 아닌가. 칠이 벗겨진 페인트 자국, 잘린 나무 밑동, 뭉쳐 있는 뭉뚝한 돌 등등, 얼핏 보면 고양이인가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기대감의 불씨가 번이나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21일 동안 중간중간 불쑥 튀어나와 기대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간 허락도 없이 초상권을 박탈하여 마구마구 사진을 찍어간 죄, 츄르로 갚아야 마땅하거늘. 


하긴 내가 츄르를 준비했다고 해서 당연히 고양이가 나타나리란 보장은 없지. 생각해 보니 실현 가능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어리석은 계획이었다. 나는 평소에 '기대'를 하지 않으려 무척 노력하는 편이다. '기대'란 늘 끝간대를 모르고 부풀어서 항상 나를 실망케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처럼.









공원을 빠져나와 도로변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가 고양이를 만나지 못한 실망감 때문인지 몸이 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내겐 '커피'가 남아있었다. 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그림의 떡처럼 쳐다만 보던 그 무인카페에 드디어 입성했다. 안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는 '아-아'보다 '따-아'를 선호하지만 오늘은 아묻따 시원한 '아아'를 선택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얼음들이 와르륵-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다. 옆에 마련된 빨대와 컵 홀더를 챙겨서 끼우고 바로 한 모금 들이킨다. 캬~


원래 공복에 커피를 마시면 고소한 원두 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목구멍으로 넘어온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쫙- 퍼지면서 '짜르르'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느낌은 없었다. 아 이런, 샷 추가할걸...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다가 맛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직 오르막길이 반쯤 남았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산책하듯이 걸었더니 확실히 힘이 덜 들었다. 아 좋다. 아 참, 무인 카페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내 불변의 뻬이보릿 '페레로 로쉐'도 샀더랬다. 바로 한 알 까서 한 입에 쏙 넣는다. 부드럽고 꼬~소한 초콜릿에 커피 한 모금 쪼-오옥. 아... 겁나 행복하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만끽해야지, 어떡해 너므 좋아.


그나저나 커피는 이 커다란 한 컵이 2천 원인데 '페레로 로쉐'는 요 3알이 3천 원이라니. 하지만 이 대체불가한 매력적인 맛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돈이 좀 많다면 '페레로 로쉐'와 '코카콜라' 회사의 주식을 살 것이다. 나 계속 먹을 수 있게 망하지 말라고...)


달콤한 순간은 너무 짧다. '페레로 로쉐'를 한 알 더 까서 입에 넣는다. 이건 100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한 알은 아껴뒀다가 집에 가서 마지막 기록을 남길 때 먹기로 한다.









마지막 새벽 운동을 끝내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 타임스탬프를 찍는다. 아까 고양이를 찾는다고 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는지 오늘은 1시간이 넘었다. 그러고 보니 1시간을 넘긴 것은 처음이네. 




땀복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들을 노트북 위에 꺼내 놓았다. 페레로 로쉐 한 알, 물티슈, 츄르.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동물 털에 살짝 알러지가 있어서 물티슈까지 야심 차게 준비해 갔는데... 자주 보았던 그 검은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남은 이 츄르 때문이라도 새벽 운동을 한 번은 또 나가야 할 것 같다.







뜬금없이 시작한 새벽운동을 통해 나는 '오롯이 자의로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경험'을 해보길 원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억제해 감정과 생각을 풀어놓고 정리'도 해보고 싶었다. 



21일이 모두 끝난 지금, 돌아보니 꽤 만족스럽다. (물론 모두 완벽하게 정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내게 필요한 경험이었고 좋은 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사실 '성공'이라고 쓰려다가 '만족'으로 바꾸었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썩 달갑지 않다. '성공'이라는 결과만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해냈다'로 충분한 것 같다. 굳이 덧붙이자면 '잘' 해냈다.


그리고 '자족'한다. 적어도 '나'로 '자족'할 수 있음을 배운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자족'의 경험을 더욱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아마도 '성취감' 혹은 '효능감' 아닐까? 솔직히 이런 느낌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21일의 이 기록들을 '증인' 삼아서 앞으로 조금씩 '성취감'이나 '효능감'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 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브런치에 이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게다가 추가로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겼다. 다시금 도전하고 싶은 것부터 꾸준하게 하고 싶은 것이나 언젠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까지 다양한 열정?이 샘솟는다. 가령 영어공부, 모닝페이지, 수영 배우기, 조조영화 보러 가기, 조깅? 등등. 그래,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자. 


확실히 이번 21일의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해볼 있는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고 할까나? 그렇지만 일단 내일은 늦게까지 침대를 만끽할 것이다. 움하하하.







+ TMI를 남발하는 개인적인 기록인 저의 '고군분투기'를 읽어 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시고, 좋아요로 표현해 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정말로 큰 힘이 되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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