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형성된 팀이 애자일 해진다.
정말 좋아하는 주제이면서도 정작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낭만이고, 두 번째는 애자일 방법론입니다.
무엇이 낭만이고, 무엇이 애자일인지 논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못하고, 애자일 하지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자일하자고 애자일 해지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늘은 애자일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애자일 방법론'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은 이렇게 설명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애자일은 프로세스나, 진짜 방법론이 아니라,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와 '관점'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오해, 애자일의 핵심은 '빠르고 민첩'이 아니라 '유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가장 애자일 한 것은 프로세스가 없는 겁니다. 애자일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짧은 구간의 스프린트가 이루어진다는 점이죠. 굳이 프로세스로 이야기하자면, [킥오프 > 실행 > 회고] 세 단계 외에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가 정확한 것 같습니다.
앞선 링크에서 이야기하듯,
-개인과 개인 간의 상호작용이 프로세스 및 툴보다 우선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포괄적인 문서보다 우선
-고객과의 협업이 계약 협상보다 우선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계획을 따르는 것보다 우선
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고, 이 가치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가 애자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많은 회사에서 애자일을 도입하려 하지만, 실제로 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워터폴 조직은 특히 최근 애자일을 도입하려 많은 노력을 하고, 실패하곤 합니다. 애자일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은데, 대체 애자일은 왜 실패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적은 듯싶습니다. 그 좋은 애자일이 왜 도입되지 못하는 걸까요?
우선 애자일은 프로세스, 방법론이 아니라 '가치'와 '관점'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치와 관점이 일치해야 애자일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위에서 애자일의 대표적인 가치를 제시했는데, 사실 이조차도 팀들마다 다르고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개인과 개인 간의 상호작용이 프로세스 및 툴보다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매 프로젝트마다 툴을 변경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을 과연 '애자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킥오프 : 기존의 방식대로 PPT를 이용해서 제품 설계를 하자!
실행 : PPT를 통해 제품 설계를 하다 보니 클릭마다 이동하는 플로우와 뎁스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어.
회고 : 우리 앱은 설계보다 사용자 이동 플로우가 더 중요한 것 같아. 이동 플로우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는 피그마를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 애자일 팀은 업무를 공유하기 위해 툴을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툴은 영원히 사용될까요? 네, 예상하시듯이 아닙니다. 애자일 조직이란, 이러한 의사결정을 논의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새로운 툴, 혹은 새로운 상황에 맞는 툴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할 수 있는 조직이 애자일 조직입니다. 즉, 우리가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은 다시 논의될 수 있고,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변경될 수 있어!라는 관점의 일치가 필요한 겁니다. 이미 정했으니 다시 논의하지 않으면 좋겠어! 가 아니고 말이죠. (PPT도 PPT 나름의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업무 공유 툴조차 구성원에 따라 적합한 툴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애자일 관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애자일이란, 프로세스가 없어 무계획적이고, 매 번 바뀌어 적응할 수 없는 이상한 체계로 보일 수 있어요.
관점의 일치만 이루어지면 될까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관점의 일치는 목표인 것이고 그보다 선행되야하는 것은 구성원 간의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킥오프에서 합의한 사항이 나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그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이라 여기고, 일하는 방법과 절차가 서로 다르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구성원이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팀이 될 수 있다는 신뢰, 우리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아도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해요.
만약 이러한 신뢰가 없는 팀이라면 서로의 일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일정에 없던 일을 만들어내고, 성과까지 좋지 못한 사람이 구성원으로 있다면, 아마 누구나 그 사람의 업무방식이나 업무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여겨질 거예요.
검증된 프로세스, 검증된 툴은 기본적인 성과를 뒷받침해요.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에 애자일 조직은 때론 더 좋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어요. 다만 여기에 '민첩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대응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과 신뢰가 필요한 것이죠.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애자일을 도입하는 것이지, 매 번 새로운 방법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애자일이 고안된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가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서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애자일은 고려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전통적으로 검증된 프로세스와 툴이 있는데, 굳이 다른 방법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한편으로, 서로의 대한 신뢰가 없으면 진실된 회고도 어렵다고 봐요. 우리 팀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것이 개인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면, 누구도 회고에서 진실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팀워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합이 잘 맞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자신의 잘못을 빨리 고백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팀워크라고 생각해요.
애자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이게 전부냐? 라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애자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합의할 수 있는 관점을 만들 수 있다는 신뢰, 우리는 기존의 프로세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우리 팀은 그렇게 뛰어난 구성원이 모인 뛰어난 팀이라는 신뢰라고 생각해요. 이것 외에는 전부 합의 가능한 '유연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애자일이라고 생각해요.
'~방법', '~가이드라인'이라는 말을 제목에 넣으면 조회 수가 뛰어오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물론 그런 노하우들을 공개하시는 분들이 많은 고민을 거쳐 결론을 낸 것이고, 많은 인사이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동의해요. 실제로 저도 참고하는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저는 '관점'과 '에티튜드'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머지는 실무 속에서 자신이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고, 더 나아가 사안과 환경마다 답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일을 받아들이는 자세, 관점과 에티튜드가 중요하지 각각의 사안에서 결정한 부분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공식만 알려준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 해결력!)
그리고 이것이 제가 스스로를 '애자일 하다'라고 생각하는 이유예요. 사안에 부딪칠 때마다 경쟁사나 일반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험, 생각, 관점까지도 버려야 한다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점이 중요한 것은 일관성을 갖추기 위함이에요. 사안마다 너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면 일관성이 흔들리고, 이는 나와 팀에 장기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관점을 포기해야 하는 일들도 종종 있고, 단기 스프린트를 목표로 하는 애자일 조직은 생각보다 꽤 잦습니다. 일관성과 효율을 취사선택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일관성과 효율을 선택하는 기준과 관점도 형성되어야 하겠죠.)
프로젝트, 팀원, 상황과 환경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애자일한 태도야 말로 애자일의 근본이라 생각합니다. 개발자가, 디자이너가 없어서, 주어진 리소스가 없어서, 시장환경이 좋지 않아서, 팀원과 합이 맞지 않아서... 를 따지는 태도가 애자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애자일이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일하는 것. 그래서 안 맞는 옷을 그렇게 입으려고 노력하는구나? 그 애자일한 태도가 없으면 별 볼일 없는 기획 자니까! 그런데 요즘 애자일 조직이 아니라서 스스로 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애자일 조직은 KPI보다 OKR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까지 쓰자니 길기도 하고, KPI와 OKR의 차이를 잘 설명한 글이 있어 인용하고 마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