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이 0원이었던 결제 앱 개발 스타트업 - 경험 있는, 성공한 창업자와
회사 생활 보고서 세 번째입니다. 두 번째 보고서에서 매출 중심의 사고 때문에 꿈을 잃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서 선택한 세 번째 회사는 꽤 성공한 창업가가 대표였고, 서비스는 스토리보드만 있는 정도의 결제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서도 한 회사에 입사했다가 나왔지요.
세 번째 회사는 사람인에 이력서를 올려놓았는데, 면접제의가 와서 면접을 보고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저에게 꽤 큰 권한을 약속했었고, 제 능력을 가장 인정해준 회사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저의 이력서를 꽤나 잘 이해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제 이력서는 일반적인 회사를 다녀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이력서입니다. 수상 경력은 꽤 있지만, 그저 '화려한 실패'의 나열이거든요. 한국 최초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만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는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화려한 실패'를 높이 평가받아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수상경력과 서비스 운영 실패의 경험은 회사에서 관심을 가지는 요소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제 이력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면접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질문을 해주셨어요.
그랬기에 이 회사에서 저의 역할과 직무는 조금 독특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당장 서비스를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서비스의 PM이었습니다. 시장조사, 마케팅(시장 진입) 전략, 서비스 개념/프로세스 정의, 서비스 프로토 타이핑 등이 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허 검토나 상표권 검토도 있었고요. 하지만 팀빌딩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팀빌딩을 위한 회사의 홈페이지를 혼자 만들고, 채용공고 작성부터 면접까지에 이르는 인사업무도 했어요. 그리고 대표님이 싸이월드의 공동 창업자 출신이셨기 때문에 꽤나 재산이 있으셔서 투자사를 운용하시는데, 투자 제안서를 검토하거나 M&A할 기업을 파악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뭔가 많다...)
이 회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잘 몰랐다면 괜찮았을 회사'으로 할 수 있을거 같은데요. 환경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외부적으로 보기에 문제없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회사에서 너무 넓은 직무를 맡다보니 너무 알게되는 것이 많지 않았나 싶어요. (까탈스러운 니가 문제야!)
이 회사의 대표님은 싸이월드와 네이버의 공동창업자 출신이셨고, 라이코스 한국 지부장을 지내기도 하신 경험 있고 성공한 창업자였습니다. 그랬기에 많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계셨고, 이는 저의 관점이나 시각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나누기 힘든 이야기들도 많았지요.
한편으로 스타트업 치고 꽤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인맥이나 직원도 꽤 있는 편이었습니다. 운영하는 회사도 꽤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개발 자금은 걱정하지 말라고 자주 이야기하시곤 했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이유 역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었습니다. 면접 시에 질문이 꽤나 수준이 있는 것들이었고, 많은 권한을 약속했으며, 초기 자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출이 없는 회사입니다. 저는 당시에 중간 관리자로 회사와 직원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이견이 컸던 것은 복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회사의 매출은 0원이고, 서비스도 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직원 분들이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서비스의 구조가 어떻게 되고, 이게 어떤 강점을 가지고, 어떻게 시장에 진입해야 할지는 이해하지 못하면서, 복지는 이야기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운명공동체의 '동지'로 보았던 것인데, 사실 동지가 아니라 '직원'이었으니까요.
좋은 복지가 좋은 인재를 입사하게 만드는 환경임에 분명하고, 당시의 저도 동의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좋은 인재를 입사하게 하는 환경은 성장에 대한 복지(교육형 복지)이지, 생활에 대한 복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 회사의 매출이 0원이라는 것을 다들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인데,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같은 배를 탄 동지로 생사를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직원은 그냥 직원일 뿐이라는 걸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지금에서야 직원으로서 당연한 요구였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연봉 대신 지분을 요구하는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겠지요.(이것조차도 나중에 다른 회사에서 얻은 깨달음. 당시에는 몰랐어요.)
앞선 두 회사와 다르게, 연봉 협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몇 년 전이지만 지금과 같이 IT 인력, 개발자 인력이 고평가 받는 시대였다면 어쩌면 더 쉬운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협상해 놓은 연봉을 이사님이 깎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잡고 싶었던 사람을 잡지 못한 적이 꽤 있었습니다. 아마 개발자 연봉에 대한 시각이 많이 차이가 났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발자를 참 까탈스럽게 뽑는다면서도, 그 까탈스럽게 뽑은 개발자들의 연봉이 협상되지 않을 때마다,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이 회사에서 채용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전에 언급했듯, 서비스가 최우선인 사람은 면접을 보러 오지 않았고, 연봉협상이 자주 결렬되었으니까요. 예전에 제가 팀원들에게 자주 구박하는 내용은 "얼마면 너희하고 일 안 한다! 야, 월급을 주면 마구 부려먹기라도 하지!"였는데, 실은 그 그 금액으로는 부릴(?) 수 없는 인력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모두 대기업에 갔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도 증명되었지만, 개인적으로 평가해도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열정도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환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적당한 돈만 있으면 가지고 있던 단점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대기업만큼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생활이 불가능해서 스타트업을 관두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금액을 줄 수 있으면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돈만 있으면 같이 일해줄 것 같은 친구들은 이 회사에서 '비전'과 '공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대기업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요. '비전과 공감'이 부족하다면, 결국 좋은 환경이 좋은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임을 깨달은 것이죠. 비전과 공감보다 환경을 갖추는 것이 더 쉬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복지를 원하는 직원들을 까내리기 바빴던 것은, 제가 많이 모자랐다는 증거겠지요.
이 회사는 투자에 높은 관심을 가진 회사였습니다. 회사가 희망에 차있는 시기에 초치는 사람답게, 첫 투자가 유치되자마자 퇴사했습니다. 약속과 달랐던 것들, 투자 유치 과정에 대한 실망... 이런 것들이 퇴사의 이유였습니다. 많은 것을 약속했기에 제 자신의 신념과 기준을 접었는데, 이렇게 진행되어 닿는 곳은 제가 원하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퇴사했습니다. 원래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정말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곤란한 부분이 많네요. 대표님조차 다시 창업하는 것으로 오해하시기도 했고요. 퇴사하는 길에 팀원들을 두고 도망치는 기분이 들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회사에서 평가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회사는 제 능력을 가장 높이 평가해주었고, 가장 스타트업스러운 운영, 그러니까 매출보다 성장에 관심을 둔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운명공동체라는 느낌을 가진 마지막 회사이기도 합니다. 아주 강렬하게 '직원'이 아니라 '동료'라고 인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경계선 상에 서 있다고 느낀 회사였습니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지향하는 태도와 서비스를 우선하는 방향이 이 회사에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전과 공감을 찾는 능력이 떨어지니 환경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환경뿐만이 아니라 제가 일할 환경도요. 환경이라는 부분은 같이 일할 사람, 사무실, 업계 인식 등... 돈 외에도 많은 부분을 포함하는 이야기지만요.
아마 이 회사에서 '꿈'이라는 말에 많은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회사의 투자 유치 금액은 꽤 높았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이 단계에 필요한 금액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높은 금액으로 투자를 받고, 높은 금액으로 엑싯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꿈'이라면, 저는 그 꿈에 동의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진짜 서비스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돈을 합리적으로 받고, 그 돈으로 최대한 계획대로 일하고, 멋진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의 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게 멋진 서비스를 만들면,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꿈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높은 금액의 투자와 엑싯을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요. 어쩌면, 대표님은 그것이 '적당한' 금액으로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했고, 이 합의가 어렵다고 느꼈지요. 그래서 이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회사에서는 정말 '매출'만으로 돌아가는 회사, 그리고 정확하게 내가 매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자라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네 번째 보고서에서!)
이 회사에서 자신다움을 잃었기에, 돈 없이도 모을 수 있었던, 서비스가 최우선인 팀원을 모으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자신다움이 없으니 그냥 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도 그 당시의 저는 비전, 꿈이라는 말보다 환경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돌려 이야기해보려 노력했는데, 결국 좀 직설적이 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투자'라는 이름의 횡령, 사기를 치는 스타트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이 회사 그랬다거나, 제가 다녔던 회사들이 실제로 횡령, 사기로 고소를 당한 것은 아닙니다.(사실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소송을 치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느끼기로 그랬다는 겁니다.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엑싯을 이뤄내는 많은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유명 기업 중에서 대표만 엑싯으로 큰돈을 벌고, 직원들은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투자의 예는 아니지만 머지 포인트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최근에야 문제가 되긴 했습니다만, 제가 이 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조 자체가 사기라고 여겨지고,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런 이유로 퇴사한 회사도 있었습니다.
매출이 0원인 회사, 투자유치에 관심을 가지는 회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내가 정말 세상에 기여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가? 사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많은 사용자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 회사가 꼭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았으면 합니다. 반대로, 스타트업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 한국은 성숙한 스타트업 문화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회사들에서 일하며 자신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극단적인 예들로 들었지만, 작고 사소하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회사들은 꽤 흔하니까요.
이렇게 매출이 0원이면서 투자에 중심을 뒀던 회사를 뒤로하고, 다음 회사는 '그래도 한 분야에서 국내 최고였던 디자인 회사'입니다. 그럼 네 번째 보고서에서 다시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