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방향을 합의하고, 그 방향을 향해 선순환을 굴린다.
저는 스타트업에 미쳐있던 사람(it와 스타트업은 다릅니다. 흔히 ‘우산을 팔아도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즉, it = 스타트업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우선 생략하고 다음에 하기로 해요!)으로, it의 3대 직무 기획, 디자인, 개발 외의 다른 일도 많이 했습니다. 아마도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적 특성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쨌건, 제가 ‘직무’로가 아니라 ‘직원’으로 해야 할 일의 본질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어려울 때는 떠나지 않는다’라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나쁠 때가 아니라 회사가 희망에 가득 찬 시기에 퇴사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 한 회사 이야길 해볼까 해요.
혹시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한글로는 ‘거꾸로 교실’이라는 교육방법에 대해서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네요. KBS에서 다큐로 방영된 적이 있는데 요약을 하자면
1. 선생님은 15분 내외의 수업자료를 녹화하여 배포한다.
2. 수업 시간에는 기존에 숙제이던 문제풀이를 학생들과 함께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기존의 1시간 수업 강의 > 숙제로 이어지던 교육 방법을 15분 정도의 강의를 미리 듣고 오거나, 15분짜리 녹화자료를 보여주고, 남은 시간에 숙제를 선생님과 같이 푸는 교육형태로 바꾸는 걸 말해요. 그래서 거꾸로 교실이라고 말하고요.(플립러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흔히 말하는 자기 주도형 학습의 일종이죠. 당시에 전 세계 교육 1위 국가 핀란드에서 채택한 교육법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참고로 한국이 2위였고,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을 참고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개념 때문에 선생님들이 강의 자료를 녹화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연구되었는데, 제가 다녔던 회사가 핸드폰과 태블릿으로 간단하게 강의 자료를 녹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였어요. 플립 러닝이라는 좋은 개념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스터디도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는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 개념을 너무너무 좋아했고, 플립 러닝이 한국에 자리 잡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한 교수님이 자신의 수업 방법을 정부에 제안하고 파트너 사로 저희를 선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정부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보통 작은 스타트업 회사는 매출보다 정부 지원금과 투자금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회사에서 잡은 ‘플립러닝’의 수업방식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매우 흔한 온라인 수업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9명의 원격 학생이 1명의 선생님의 강의를 받는 구조였지요. 네, 지금, 코로나 시대에 보편화된 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플립러닝’의 핵심은 미리 ‘녹화된 강의’ 였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 콘셉트와는 좀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서 서비스의 형태가 변경되었고, 이를 제안하신 교수님의 요구 사항에 따라 서비스가 개편되었어요. 다른 사항도 있긴 한데, 어쨌든, 외부의 기회를 잡기 위해 처음에 가지고 있던 개념과 다른 서비스를 하게 됐다 정도로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서비스의 근간이 외부의 기회로 인해 흔들리는 회사라면, 어차피 크게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요. 플립러닝과 상관없이 당시에 전 세계 2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는 회사였음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예상이 맞긴 했지만, 씁쓸하네요.
참고
프로덕트 매니저가 제품을 관리하는 방법 : 백로그에 아이디어를 수집해 두었다가 우선순위를 정리하여 피드백을 전달한다.
pm이 제품을 관리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달리 말하면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골라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골라내는 방법, 기준이 서비스의 로드맵이 아닐까 해요. 우리 서비스는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떤 모습이 될 거야!라는 로드맵이요. 그래서 링크의 글을 주목하게 된 거고요. 사실 스타트업에서는 어떤 로드맵을 그리냐에 따라 같은 서비스라도 매우 다른 투자금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걸 pm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일까 싶습니다. pm이 왜 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가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팀원들의 열정에 매일 찬물을 붓는 게 될지도 몰라요.(그거 제 얘기 맞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커뮤 장애는 대화가 어려우니까요!) 무엇보다, 그 로드맵은 혼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같이 그려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로드맵조차 결국 서로 공감하고, 동의하는 기초 가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로드맵이 어그러져도, 멋진 서비스가 될 수 있다면, 멋진 서비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어그러져도 괜찮으니까요. 로드맵을 어그러트릴 수 있는 용기가 오히려 pm의 자질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우리는 똥을 만들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래고 욕을 먹을 용기.) 중요한 것은 로드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공유된 인식과, 함께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 두 가지니까요.
결국은 어떻게? 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요.
참고
대표님, Lean 하려다가 훅 갑니다 : Lean의 본질은 속도보다 방향이고,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방향을 정하고, 빨리 실행하고, 고객의 반응을 분석해 다시 방향을 수정하고… 이런 것들이요. 실제로 이를 잘 적용한 예제가
참고
스타트업에서 성장하는 제품 만들기 : 고객을 유입하고, 다시 방문하게 만드는 과정의 실무적 예시
이렇게 되겠지요. 반응을 분석해서 다음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1. 방향을 설정하고 2. 빨리 실행하고, 3. 분석한다. 그리고 이 사이클을 빠르게 굴린다,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라는 것인데요. 이게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기초이고,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 역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회사에서도 이것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퇴사하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일은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나태하게 진행해서는 안되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일들이 진행되어도,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하고, 그걸 증명하는 것이 선순환이 아닐까 싶어요. 망한 서비스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이 있던 서비스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을 굴려서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사용자와 함께 만들어 간다’… 라는 이야기가 이어져야 할거 같은데요. 요즘에 아마 ‘당근 마켓은 내가 키웠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 같아요. 다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쓰다 보니 정해지는 다음 주제, 그리고 자꾸 늘어지는 이야기와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