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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힝맨 Jun 15. 2021

유튜브는 600페이지 검색결과 스샷으로 소송을 걸었다

추상적인 브랜딩과 현실의 상표권

1. 어느 날, 구글/유튜브의 대리인 김&장으로부터 소송이 들어왔다.


 오늘은 흥미로운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죠.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크리에이터 광고 중개 플랫폼을 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 서비스의 이름은 ‘튜버’였습니다. 그리고 이 서비스명으로 상표권 등록을 진행했었어요. 상표권 등록은 꽤 날짜가 필요한 일이고, 상표권 등록을 여러 차례 진행을 해봤기 때문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김&장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게 됐어요. 상표권 등록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내용으로요. 저희가 ‘튜버’라는 상표권을 등록할 수 없도록 약식 소송을 건 거였습니다.


 김&장은 법적인 일을 대리하는 대형 회사로 한국의 대기업 소송을 가장 많이 맡는 기업이고, 구글 코리아의 대리인으로 저희 회사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메일을 읽으면서 굉장히 쫄렸습니다 (나대지마 심장아... 아 이건 아닌가?). 김&장이 좀 무섭거든요. 저는 법학과를 전공했는데, 입학 OT에서 교수님이 ‘너희는 이제 입 밖으로 김&장을 말하지 마라.’라고 할 만큼 법조계에서 무서운 회사예요. 차라리 몰랐으면 그렇게 쫄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내 인생에 김&장에게 소송당하는 일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메일에 첨부된 소송 서류를 읽어보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었는데, 실은 3종의 상표권이라 똑같은 내용이 3부가 온 것이고, 200페이지가 1부였어요. 더 놀라운 건 2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의 80%는 네이버에서 ‘유튜브’를 검색해 스샷을 찍은 것이었다는 점이에요.   


2. 한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김&장이?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김&장이 보낸 내용으로는 너무나 부실하다고 생각했어요. 미팅 한 시간에 천만 원을 받는다는 기업이 이렇게 일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 쪽 변리사 분에게 연락해 이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게 됐습니다.


 변리사 분은 태연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별거 없고, 김&장이더라도 몇 차례 이겨봤으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무슨 이런 내용을 600장씩 보내냐고 물어봤더니, 장당 작성비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3.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


 이 이야기도 사실 술자리에서 한 번 한 이야기입니다. 그냥 돈 벌려고 김&장이 그런 거다 하고 웃으며 끝났지만, 실무적으로 그냥 넘길 이야기는 아닙니다. 검색 결과 스샷이 완전히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면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기서 상표권에 대한 포스트 하나를 인용할게요.


참고 : 상표권의 구성과 원리 


 사실 너무 변리사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라 이해가 잘 안 되실 수도 있는데요. (BI 개념으로 설명한 글을 찾아보려 했는데, 못 찾았어요.) [다. 확장되는 상표의 권리범위는 유사범위 (혼동 가능성 발생 범위)]와 [3. 결론 - 상표권 행사 가능 범위]을 참고하시면 됩니다만, 더 IT 쪽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겠습니다.


 상표권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로고와 상표 이름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BI(Brand Identity)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에요. BI를 흔히 로고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은 추상적인 BI를 응집해놓은 것이라 로고가 BI로 불리는 것이지, 로고 = BI는 아니라는 겁니다.


 즉 김&장에서 고작 검색 결과를 그렇게도 많이 보내온 것은 자신들의  BI가 추상적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검색 결과로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유튜브’의 검색 결과 ‘유튜버’가 이렇게 많이 내용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유튜브의 BI에 유튜버가 포함된 것이고, 저희가 사용한 ‘튜버’라는 이름은 유튜브의 BI를 침해한 것이다… 라는 논리예요. 사실 이런 논리를 주장하려면 ‘유튜버’에도 상표권을 등록해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은 간단하게 저희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이런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계속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이 이어졌어요. 우리 같은 작은 스타트업이 계속 소송을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았기에 몇 가지 조건은 논리적 반박을 하고, 몇 가지는 수용하겠다는 합의를 해서 원만하게 해결했습니다. 그 조건 중에 한 가지가 유튜브의 붉은색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어요.

 다시 정리하면, BI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보호하는 것이 상표권이라는 것이고, 단순히 상품명이나 로고뿐만이 아니라 BI를 상징하는 색이나, 문구 같은 것도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4. 카피캣은 분명히 나쁜 것이지만…


 스타트업이 카피캣을 당했고 여기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워요. 큰 기업에서 카피캣하는 것은 정말 비판받을 일이고, 잘못한 것입니다만, 자신의 브랜드,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상표권을 등록하고, 상표 내에 분명하게 구분되는 BI가 형성되었다면 법적인 대응이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어떤 방법, 어떤 법을 통해 대응할 것인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스타트업의 관점에서 카피캣을 당하는 것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고, 그래서 자신의 BI를 명확히 하고, 이를 상표권 등록하는 노력은 아주 기본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런 것을 등한시하는 스타트업을 많이 봐오기도 했고요.  


5. 그렇다면 우리는 보호받을 수 있는 확고한 BI를 성립하고 있는가?


 MUST의 기획자답게,  MUST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개인적으로 MUST는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다른 경쟁사와 차별화될 수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확고한 BI가 형성되어 보호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에요. 그래서 결론은 브랜딩이 필요하다...라는 것인데요.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또 자세하게 할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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