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아내는 것보다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
싸이월드 서비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할게요.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젊은 분들은 전설로 들었을지도 모를 그 서비스니까요. 우선 이동형 대표가 2014년도에 했던 이야기로 시작을 할까 합니다. 2014년은 싸이월드는 2003년 SK에 인수되어 정점을 찍었고, 2013년에 네이트에서 분사가 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이용자가 거의 없는 망한 서비스가 되었고요.
이동형 대표는 싸이월드를 처음 시작할 때 사이좋은 사람들의 서비스를 만들기로 합니다. 가치는 그랬지만 실제로는 ‘홈페이지 빌더’ 서비스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홈페이지 빌더 서비스로 12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이동형 대표는 12위의 점유율을 극복하기 위해 사이좋은 사람들의 특징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거리의 젊은 20대 여성들이 사이가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로 서비스를 만들기로 해요. 그래서 PM과 기획팀원을 여성으로 변경합니다.
이 결정을 통해 싸이월드는 점유율 4위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고민은 여전히 수익모델(BM)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사용자들이 어떻게 하면 싸이월드에 돈을 쓸지를 몰랐다고 해요.
그리고 여기서 이동형 대표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주요 사용자였던 10대, 20대 여성분들을 인터뷰했어요. 그래서 아바타와 배경음악, (특히) 마이룸 등이 기획되었고, 우리가 잘 아는 도토리로 이것들을 구매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결정을 통해 싸이월드는 연매출 600억의 기업이 됐다고 이동형 대표는 회고합니다.
이동형 대표를 만난 자리는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의 OT자리였고, 성공한 사업가가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싸이월드에 가지는 아쉬움을 논하는 자리는 아니었지요. 또 2014년은 싸이월드가 완벽히 망하기 전이기도 했어요. 그렇기에 결론은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매출을 만들었고, 그를 바탕으로 거액에 SK에 인수될 수 있었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쉬움을 느끼는 포인트가 이상하지요. 페이스북은 홈페이지 빌더 서비스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유사 서비스가 아니다라는 매우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상한 결론은 잠시 접어두고 흘러 또 다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2018년 저는 싸이월드의 공동창업자 중 한 분이 대표인 회사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초기 창업팀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입장이다 보니 대표님과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쭤봤지요.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싸이월드는 왜 망했으며, 왜 페이스북이 되지 못했을까요? 하고 말이죠. (커뮤 장애다운, 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질문!)
대표님이 하신 답변은 의외로 뻔했습니다. 싸이월드의 본질은 ‘홈페이지 빌더’였고, 직원들이 좋은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으나, 중간부터 그런 좋은 직원들이 떠났다고요. 대표님은 네이버에서도 초기 창업 팀원이셨는데, 그런 부분에서 네이버가 참 잘 이어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네, 참 재미가 없죠. 4년이 더 흘러 싸이월드가 완전히 망한 서비스가 됐음을 확인했기에, 다른 이유 말고, 서비스로 우리가(어쩌면 저만!) 알고 싶은 것은 왜 싸이월드는 페이스북이 되지 못했을까 인데요!(자극적인 제목을 보고 왔는데 기대와 다른 내용!) 홈페이지 빌더 서비스와 페이스북은 다른 서비스인데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이 되기를 바란 우리가 잘못이다… 라는 결론이 나올 판이니까요. 고객을 인터뷰했고, 고객이 어떻게 돈을 쓸지를 파악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결국은 망했고, 영역이 다른 서비스와 비교를 당하고 있어요. 거기다 서비스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좋은 직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라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지만,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언제나 그렇듯, 답은 사용자에게 있었을 거예요. 만든 사람들이 홈페이지 빌더로 생각했더라도 사용자는 싸이월드를 ‘홈페이지 빌더’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해요. 우리가 싸이월드가 왜 페이스북이 되지 못했는지 아쉬워하는 이유는 싸이월드가 우리에게 제공한 홈페이지 빌더로 기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페이스북을 통해 얻는 가치와 유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홈페이지 빌더로 인지했다면, 지금의 wix, 카페 24, 고도몰, 워드프레스와 같은 서비스와 비교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싸이월드가 제공하는 가치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가치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바로 ‘소통’이에요.(커뮤 장애가 소통의 가치를 말하고 있는 웃픈 광경...) 단지 소통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싸이월드, 페이스북,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가치는 전부 소통이라는 가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이 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지금부터 뇌피셜. 주의 필요!) 싸이월드의 창업자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가치, 서비스의 본질을 ‘소통’에 두지 않았고, 이 소통을 통해 어떻게 수익구조를 만들지 고민하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자신들이 찾은 수익구조에 만족하고 새로운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소통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험을 더 많이, 더 빠르게 해봐야 했지 않았을까요?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의 기능이 아니더라도 소통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소통의 가치가 대부분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서 해결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싸이월드를 쓰지 않지만, 여전히 방명록을 남기는 싸이월드의 소통방식에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싸이월드의 부활을 바라면서도 실질적인 사용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싸이월드라는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싸이월드의 소통방식, 내 미니홈피와 방명록 남기기라는 소통방식을 그리워하는 거죠. 마치 여전히 손편지의 낭만이 남아있듯 말이죠.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의 자세, 에티튜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봐요. 이 문제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제가 지금 사람인이라는 기업에 와 있는 이유 기도하고요.
창업자로 산 시간이 꽤 많았고 스타트업의 일원으로 많은 사람을 뽑아봤습니다. 제 뜻대로 진행된 채용, 그렇지 못한 채용,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던 채용, 그렇지 못했던 채용... 많은 채용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정말로 좋은 사람을 뽑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기업에서 채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채용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나라면 어떤 서비스를 만들까. 내가 추천하고 싶은 구직자는 어떤 사람일까. 채용이라는 문제가 제게는 너무 사랑스러운 문제였습니다. 채용은 뚫어야 하는 관문,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절대 피할 수도, 즐겁기만 한 과정은 아니겠지요.
만약 채용을 진행했던 경험들이 없었다면 사람인이라는 기업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는 서비스지만 내가 일하고 싶은 서비스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채용의 경험들이 언젠가 한 번쯤 채용 서비스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어요. 이러한 마음과 에티튜드가 서비스를 만드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해요.(그러니까 기획서 좀 못써도 괜찮아)
참고
문제를 사랑하기 :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사랑하고 계속 시행착오를 반복하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다.
PM/PO의 업무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정답을 찾아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PM과 PO를 예로 들었지만, 이 마음은 직무를 넘어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유지 보수형 프로젝트나 외주 프로젝트와는 분명히 다른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요.
참고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기획자인가요? : 프로젝트에 따른 기획자의 핵심 역량
다시 싸이월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사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러 결과가 나와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당시의 저는 '소통'의 가치를 아주 소홀히 봤어요. 싸이월드나 카카오톡이나 없어도 살 수 있는 것, 페인킬러가 아니라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서 유행에 따라 없어질 서비스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사람에게 '소통'은 매우 큰 욕구고 절대 없어지지 않을 욕구라고 바뀌었어요. 사람의 '소통'의 욕구를 채워주는 서비스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당시의 저는 소통의 문제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지금이야 커뮤 장애자로 소통의 욕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의 소통의 욕구를 인정하기에 소통의 문제를 사랑하고 있기에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당시의 저는 소통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해요. 싸이월드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문제 자체를 사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필요'와 '사용자의 목소리'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요?
IT, 최근에는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라는 말을 쓰죠. 번역하면 정보통신기술, 사람 사이에 무언가를 전달하는 기술이고요. IT에서 일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을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라 생각해요. 결국 '사람'과 '무엇'이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IT에서 일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을 만들어내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조금 과장된 걸까요?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저는 IT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더 많은 IT인들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을 더 사랑하길 바라요!(하지만 사랑이 밥 먹여 주지는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