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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May 26. 2022

수심 5m, 안전정지 3분(16)

#브런치 #소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위로 #감동 #여행

세상이 작은 어항이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지구는 외계인이 가꾸는 하나의 작은 어항이라고. 우리는 어항을 떠나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작고 작은 한 마리의 물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아는 양수에서 자란다. 아가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궁 속 양수 속에서 폐호흡을 하지 않고, 열 달을 안전하게 자라다가 세상으로 나와 첫울음을 터트리며 첫 호흡을 한다. 비로소 인간으로서 첫 호흡을 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숨을 쉰다는 것은 축복의 시작인 걸까. 시련의 시작인 걸까.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한평생 일 하는 물고기가 있다. 외계인은 수많은 물고기를 기르기 때문에 고작 한 마리 물고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고기는 매일 몸단장을 하지만, 시선을 끌기는 쉽지 않았다. 외계인은 고작 한 마리의 이상한 숨소리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뻐-끔 뻐-끔. 물고기가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거나 배를 뒤집고 수면 위로 둥둥 떠 오를 때가 되어야 어항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릴 것이다.


은수는 작은 어항 속 세상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아가미를 가지고 태어나 물고기가 되는 뻔하디 뻔한 어항 속, 울고 울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슬픔을 부여잡고 어항 속을 빙빙 돌 수밖에 없는 물고기의 삶.


어항 속 물고기들의 한탄이 술상에 펴졌다. 이쯤 되면 무엇인가는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이뤄낸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의 안주였다. 정작 무엇을 이뤄내야 하는지,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는 물고기는 알 수 없었다.  


은수와 함께 수능을 본 60만 명의 응시자. 은수는 어느새 함께 훌쩍 자라나 버린 물고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중학교를 졸업했고, 실업계와 인문계를 고민하다 사회적 시선으로 인한 부모님의 강압 아닌 강압에 못 이겨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을 가려면 인문계를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의견은 갓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학생의 개인의 고집으로는 넘을 수 없는 크고 높은 벽이었다. 수능을 보고, 누구는 재수를 선택했고, 몇몇은 점수에 맞춰 대학에 입학했다. 낭만은 스펙에 가려졌고, 추억은 대외활동에 묻혔다. 기껏해야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기억과 그나마 캠퍼스 안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었던 쓸데없는 낭만. 그 속에서 막연하게 취업이라는 꿈을 꾸었다.

 

대통령, 과학자, 국제 변호사. 크고 찬란하고 반짝였던 어린 시절 꿈은 벌써 잊은 채 서른 넘어 은수는 회 한 접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하루만 새벽에 깨지 않고, 푹 잠들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물고기들의 술자리에는 작고 소박한 꿈이 낭실낭실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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