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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Aug 06. 2022

독립 후 새롭게 알게 된 나

나 이런 사람이었어?!

독립하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부모님 집에 있을 때랑은 사뭇 다른 모습이라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놀랄 정도다. 혼자 살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모습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알아갈 모습이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1. 나는 생각보다 깔끔한 사람이었다.

어렵게 맞이하게 된 첫 자취집은 항상 깔끔하게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각종 청소용품을 많이 구비해뒀다. 종류별로 다른 솔들은 물론이고 베이킹 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 그리고 세탁기 세척제도 샀다. 창틀부터 화장실 천장까지 눈에 띄는 모든 곳은 아직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한다. 엄마에게는 참 너무 죄송하지만, 부모님 집에서는 아무리 청소를 해도 다른 가족들의 물건과 흔적들이 금방 한데 섞이게 되니 청소를 거의 안 하고 살았다. 그런데 혼자 사는 집에서는 청소한 티가 팍팍 나고 내가 노력한 만큼 깨끗해지니 더 공들여서 청소를 하게 됐다. 부모님 집에서의 내 생활을 보고 가족들은 내가 집안일도 잘 못하고 더럽게 살 줄 알았다고 했다(그렇게까지 청소를 안 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2년째 아직도 깔끔한 내 집을 보고 다들 놀란다. 나도 그동안 몰랐지만 나는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이었다.



2. 나는 그다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독립을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내 공간에서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싶었다. 독립을 준비할 때의 나는 1년 치 전화영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혼자 중얼거릴 공간이 없으니 전화영어를 자꾸만 미루게 됐다. 그렇다고 카페나 길거리에서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을 널리 알리는 것은 부끄러웠다. 무언가를 한 번 끊어두면 무조건 뽕을 뽑는 나인데, 결국 전화영어만큼은 태어나 처음으로 기부천사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 이유가 나만의 공간,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와 열정은 충만한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나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립을 하면 많은 일을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부지런함은 의지의 문제였다 ^_^ 부모님 집에서건 혼자 사는 집에서건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것은 똑같았다. 다만, 부모님 집에서는 아주 좋은 상황적 핑계가 있었을 뿐이다. 물론, 부모님 집에서보다 지금이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은 맞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의 50% 정도 수준이라 아쉽다.(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빈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혼자 살고 나서 가장 많이 늘어난 시간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프로그램 시청 시간이다. 부모님 집에서는 다른 가족들에게 스포나 소음이 될 수 있어 나 혼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에어팟을 끼고 봐야 했다. 침대 한 구석에 웅크려서 노트북으로 보는 게 꽤나 불편해서 그동안은 뭔가를 집중해서 보기가 참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사운드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과 술을 앞에 두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드라마 한 시즌을 정주행한다.

나는 나를 '의지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게으름 피우는 나를 보니 그동안 다른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 가끔 엄마가 '그 집에서는 좀 알차게 살고 있니?'하고 물어볼 때 뜨끔하며 다른 이야기로 대화 주제를 돌리곤 하는데 이제는 당당히 뭔가를 말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과 의지를 기울여봐야 할 것 같다.


3. 나에게도 집순이 기질이?

20살이 지나고 나서부터 엄마가 나를 밖에서 만나면 무조건 물어보는 말이 있었다.

"잘 사니?"

워낙 밖순이인지라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한 집에 사는데도 가족들이랑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다. 오죽하면 부모님은 나를 보고 하숙생을 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독립을 한다고 했을 때도 '집에서 잠만 자면서 혼자 사는 집이 왜 필요해?'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 집에서 반강제적 밖순이었다. 집에는 가족들, 공부방 학생들로 북적거려서 공부를 할 수도, 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독서실보다 아늑한 집에서 더 집중이 잘 됐는데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별일 없는 주말에도 집에서는 괜히 나른해지기만 해서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은 좋았지만 그 시간을 위해 씻고 준비하는 과정은 아주 귀찮았다.

독립을 하고 나니 차분히 집에만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편안하게 늘어져서 먹고 싶었던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는 소소하지만 대단한 행복을 처음으로 누려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 후에는 가능한 주말 중 하루는 집에 있을 수 있도록 일정을 짜고 있다. 외부와 차단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재충전하거나 나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소중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4. 고독이란 이런 거구나

부모님 집에서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다 같이 살았기 때문에 손 닿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외로움이나 고독을 느껴본 적이 없었고, 때로는 외롭고 싶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혼자 사는 집은 정말 나 혼자밖에 없다. 하루 종일 집에 있을 때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좋았으나 이후에는 심심했고 점점 외로워졌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마침내 나는 고독해졌다. '아, 이런 게 고독이구나!'

이 감정이 제일 심해졌을 때는 올해 초, 코로나 유행으로 계속 재택근무를 하면서 친구들과 약속 잡기도 힘들어졌을 때쯤이다. 그나마 조심스럽게 잡은 약속들도 파투가 나니 고독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독립하고 집순이 기질이 조금 생겼다고는 하나, 나는 기본적으로 밖순이에 외향적인 사람이라 이 시기가 못 견디게 힘들었다. 부모님 집에서는 거실로 나와서 가족들과 티비를 보며 수다라도 떨었을 텐데 이 감정을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결국 갑자기 짐 싸들고 본가로 가서 주말 동안 지내다 올라오기도 했다. 혼자 살다가 룸메를 구해서 살게 된 친구, 일찍 결혼을 결심한 친구, 외로울까봐 독립하지 못하겠다던 친구들이 이해가 됐다.

나는 이제 종종 찾아오는 고독 예방을 위해 적당한 약속과 이벤트를 매주 중간중간 끼워준다. 고독을 경험한 덕분에 나는 어쩔 수 없는 E라는 것을 깨닫고 사람과 관계에 더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또, 사람들과 신나게 부딪혀 놀다가도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일정을 고루 섞으며 나에게 맞는 고독 수치를 유지하는 루틴을 익혔다. 결과적으로 혼자서 산다는 것 자체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전에 혼자 산다는 건 집과 생활을 가족과 분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혼자로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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