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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Jul 21. 2022

나 혼자 잘 산다!

혼자 살기에 누릴 수 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행복

입주 첫날의 몽글몽글하고 아련한 감성은 얼마 가지 않았다. 입주 후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채워 넣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먼저, 친구들이 독립 선물로 준비해준 책상을 설치했다. 창가 앞에 책상을 두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로망(?) 덕분에 오랫동안 고민하다 고른 타원형 책상이었다. 생각한 대로 창가 앞에 책상을 놔두니 뭔가 벌써 멋진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송과 설치 문제가 은근히 복잡하던 침대도 셀프 조립 가능한 것으로 주문하고 설치했다. 실용성을 위해서는 서랍형 침대가 좋긴 한데 설치 기사 아저씨와 배송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고, 좁은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아직 무서워서 최대한 전문가의 설치가 필요한 가구는 고르지 않았다. 혼자서 땀 흘리며 수동 드라이버로 낑낑거리며 1시간 정도 침대와 싸움을 했지만 튼튼하게 완성한 결과물을 보니 뿌듯했다. 입주 초반엔 딱히 가구랄 게 없었는데 점점 가구가 채워지니 제법 집 다운 느낌도 났다.


입주 후 며칠간은 텅 빈 냉장고에 물과 술(?)만 넣고 지냈다. 조리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밥은 사 먹거나 즉석밥, 냉동식품을 돌려 먹었다. 요리에도 (또) 로망이 있던 나는 퇴근 후 마트와 온라인 쇼핑을 전전하며 필요한 집기들을 샀다. 프라이팬, 조리도구, 수저통, 음식물 쓰레기통. 이런 것들이 갖춰지니 진정한 자취생이 되었다. 조리도구와 함께 이것저것 식재료도 잔뜩 사서 그동안 해 먹어 보고 싶었던 요리의 로망도 맘껏 펼쳤다. 엄마 취향의 꽃무늬 접시 위 대충 올려놓은 밥이 아닌, 내가 고른 깔끔한 식기에 내가 좋아하는 재료만 골라 넣은 브런치도 해 먹었다.


가구를 채워 넣고 집밥을 잘 해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생활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자잘하지만 디테일한 물건들이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마트나 다이소를 들리면서 집에 필요한 건 더 없을지 살펴봤다. 멀티탭, 의자/책상다리 커버, 고리형 자석, 물기제거기, 행주 걸이 등등.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있어서 더욱 편하고 만족스러운 나의 다이소 추천템이자, 자취하는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가장 많이 뽐뿌가 온 물건들이다.


나는 전시를 다니며 엽서나 포스터 모으는 걸 좋아했는데, 그동안은 붙일 공간이 없어 서랍 구석에 처박아 놨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곳 여기저기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벽지 위 뿐만 아니라 냉장고, 현관 등등에도 나의 취향과 색깔을 붙였다. 집안 곳곳에 나의 손길과 노력이 더해지니 나도 집과 더 친해졌고, 애정도 생겼다.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는 컴컴한 암막 커튼을 떼고 직접 손품을 팔아 사이즈를 맞춘 화사한 쉬폰 커튼을 달았다. 매일매일 집을 살피고 청소를 하면서 깨끗한 집으로 꾸몄다.


독립 후 한 달 정도는 모든 관심사가 집 정리와 꾸미기에 쏠려서 거의 집을 위해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정성들여 꾸미고 가꾼 집을 보고 있으면 괜히 흐뭇하기도 하고 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앞으로 혼자 살아갈 날들이 더 기대되면서 역시 독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포근한 새 매트리스에서 일어난다. 가족들 깰까봐 조심스러울 필요 없이, 화장실 겹칠까봐 걱정할 필요 없이 노래를 들으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부모님 집보다 30분 더 가까워진 출근길이라 생각보다 빨리 회사에 도착한다. 퇴근하고는 리모컨과 저녁 메뉴 싸움 없이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본다. 혼자 먹을 것만 하니 준비도, 정리도 간단하다. 식사 후에는 운동이든, 독서든 누군가의 방해 없이, 원하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잘 시간이 되면 아침에 잘 정리해둔 침대 위에 다시 눕는다. 맞은편 벽에 붙여둔, 지난주 다녀온 전시회의 포스터를 보면서 기분 좋게 잠에 든다.


나, 생각보다도 더 혼자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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