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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Jul 03. 2022

입주 둘째 날, 나 잘 살 수 있겠지?

엄마의 인정과 걱정과 사랑

입주 둘째 날은 엄마랑 같이 독립할 집으로 떠났다. ,  전역한 뒤 집에서   없이 빈둥대고 있는 막내까지 데리고.


 독립을 꾸준히, 그리고 강하게 반대해왔던 엄마인지라 내가 독립할 집을 보여주는 게 어딘가 모르게 긴장이 됐다. K-장녀답게 이렇게  일을, 그것도 부모님이 극구 반대했던 일을 상의 없이 질러본 적이 처음이라 그런지 겉으론 당당한 척했지만 나도 모르게 살짝 쫄았던  같다. 게다가 집을 보러 다니는 것부터 결정, 계약 진행까지 모두  혼자 진행했기 때문에, 집을 보여준다는  그간 혼자 준비해온 일을 엄마한테 검사받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엄마는 줄곧 내가 독립하는 집을 보러 가게 된다는 것이 어이없는지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도 청소 용품을 잔뜩 꺼내 차에 실었다. 뭔가 어색해진  안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눈치를 보며 계속 나의 자취방을 셀링했다.


'자취방이 집이랑도 오가기 편한 거리라서 자주 갈 거예요.'

'회사랑은 또 얼마나 더 가까워지는데!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자기 계발에 투자해서 성공할게요!'


자취방 근처 도착해서는 종량제 봉투나 다른 생활용품 살 것들이 있어 집 근처 대형마트에 들렀다. 마트에서도 나의 영업(?)은 계속되었다.


'여기 마트 진짜 크다. 살기 진짜 좋은 동네 맞죠?'

'여기 건물 음식점이랑 카페도 진짜 많아서 너무 좋다. 그쵸?'


하지만, 나의 많은 말속에서 엄마는 언짢은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마치 나는 집을 내놓은 간절한 집주인 같았고, 엄마는 깐깐한 임차인 같았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점심으로 엄마와 동생   좋아하는 햄버거를 샀다. 우리는 거의 침묵 속에 햄버거를 먹었다. 엄마가 가끔 내뱉는 말들은 전부 불만에 가까웠다.


'여기 상가는 공실이 많네. 다들 이쪽으로는 잘 안 오나?'

'집 가서 언제 다 정리하니. 에휴, 그러니까 왜 힘들게 집을 나와서는...'


엄마 말에 반박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참았다.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나의 독립을 완전히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드디어 엄마와 집으로 들어섰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엄마의 표정을 살폈는데, 엄마는 눈으로    훑더니 '깔끔하네'  마디 하고는 짐을 풀었다. 전날 청소를 얼추 해두어서 크게  일은 없었는데도 엄마는 닦은 곳을 닦고  닦았다.


그리고서 더 깨끗해질 것도 없는 바닥에 새 매트리스를 깔았다. 부모님 집에서 쓰던 매트리스는 거의 20년 전에 샀을 법한 오래된 스프링 매트리스였는데 사실 계속 불편했었다. 그간 매트리스를 새로 살 만도 했는데, 왠지 부모님 집에서는 대충 있는 대로 살게 되기도 했고 내 돈으로 생필품을 사는 것이 뭔가 아까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열심히 손품을 팔아 좋은 매트리스를 샀다. 매트리스를 찾아보면서 느낀 점은, 이 전에는 침대와 매트리스의 차이점도 모를 정도로 수면과 수면 생활에 무신경했다는 것이다. 나는 (침대 = 침대 프레임+매트리스)라고 생각했다. 침대를 사려고 단어를 여기저기 검색해보고 나서야 침대와 매트리스는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침대는 집 구조를 보고 나중에 주문하기로 해서 매트리스만 우선 깔아 두고 짐 정리를 마쳤다. 엄마의 집안일 30년 경력 손길로 집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엄마는 청소를 하면서도 계속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잔소리가 점차 짜증에서 걱정으로 부드럽게 바뀌어가는 것을 느꼈다.


'싱크대 하수구는 항상 닫아놔야 해.'

'화장실 문은 항상 열어둬라.'

'집에 물은 있니?'

'밥도  챙겨 먹어야 하는데.'

동생의 도움으로 높은 선반장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니 드디어 엄마 눈에도  손댈 곳이 없어졌다.   퇴근한 아빠도  자취방에 들렀다. 엄마와는 다르게  독립을 그리 싫게만 보지 않았던 아빠는 어딘가 신나 보였다. 미식가답게 주변 맛집들을   훑어보더니 집에 가기 싫으면 여기 와서 지내야겠다는 농담도 했다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이사 기념을 위해 짜장면을 먹었다. 앞으로 자주 먹게   같아서  바로 앞의 중국집에서 주문을 했다. 아직 책상이 없어서 좌식 테이블을 펴고 옹기종기 바닥에 붙어 앉아 밥을 먹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나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집에서 이사 기념이랍시고 부모님과 밥을 먹는 게 낯설었다.


밥을  먹고 가족들은 다시 본가로 돌아갔다. 청소와 정리 때문에 쓰레기가 많아서 나가는 길에 같이 분리수거도 했는데 경비 아저씨가 오셔서 도와주셨다. 엄마는 아저씨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갑자기  부탁드린다며(?) 연신 인사를 했다ㅋㅋㅋㅋㅋ 어린이가  기분에 창피해서 엄마를 말렸는데 엄마는 진지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비 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하면서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며 나에게도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러고는 건물을   둘러보더니 살짝 울컥한 목소리로 " 살아" 외치며 떠났다.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거창하담.  살라는 말은 보통 결혼하는 딸에게 하는  아닌가 싶어 웃기다가도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나의 독립은 엄마한테 생각보다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이기적이게도 '나 혼자 준비해서 독립하는데 엄마가  힘들지?'싶었다. 그런데 저 말을 듣고 나니 평생 가족들이 한 집에 살다가 이제 다신 서로 같은 집에 지는 을 거라는 것을 엄마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같다. 나는 가족과 같이 산다는 소중함을 생각보다 잘 몰랐고, 엄마는 너무나 잘 알았다.



가족들을 보내고 다시 집에 들어오니 괜히 쓸쓸한 마음이 커졌다. 갑자기 혼자가 되니 집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책상은 없는데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다거나)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취방에서 잠을 자는 첫날이었다. 그리고 그날들이 계속되겠지 싶어 설레는데  무섭기도 했다. 집에서 처음으로 샤워를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  매트리스는 뽀송하고 부드러웠다. 촉감은 너무 만족스러웠는데 싱숭생숭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잠은  오지 않았다. 밤에  집에 있어본   처음이라 겁 많은 쫄보인 나는 살짝 무섭기도 했다. 고요함 속에서 멍하니 하얀 천장을 바라보면서 가끔 들려오는 이웃집 인기척에 놀라며 밤을 보냈다.   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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