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8월 6일 (화)
오늘은 프라하를 떠나 체스키크룸로프를 경유하여 빈으로 넘어간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사진 속 마을이 동화 속 중세 유럽 마을처럼 너무 아름다워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아침 8시 30분에 우리를 체스키크룸로프로 데려다줄 전용차량이 호텔로 온다. 기차가 아니고 픽업차량이라 역으로 나갈 필요도 없고 기차가 제시간에 올지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 호텔 로비에 있으니 잘생긴 청년이 다가와 체스키 가느냐고 묻는다. 바우처를 확인한 후 차에 짐을 싣고 출발!
우리가 이용한 전용차량은 CK셔틀로 체스키크룸로프를 중심으로 프라하, 빈,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등으로 가는 고객에게 미니셔틀버스를 제공한다. 우리가 이용한 여행사는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갈 때, 체스키에서 빈으로 갈 때 CK셔틀을 예약해 주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흰색 셔츠에 검정 바지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운전기사가 너무 어려 보여 차 안에서 많은 질문을 하였다.
"너는 어디서 왔니? 프라하에는 언제 왔니? 오늘 왔니?"
어제 체스키크룸로프에서 프라하로 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우리를 데리러 왔다고 한다. 전날 체스키크룸로프에서 프라하로 오는 손님을 태우고 왔다 다음날 체스키로 가는 손님을 태우고 가는 시스템인가 보다.
"이름이 뭐니?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되니? 너희 나라 군대는 의무니, 선택이니?"
이름은 제이콥, 스물두 살이란다. 체코는 예전에는 모두 군대를 가야 했었는데, 지금은 원하는 사람만 간단다. 처음엔 제이홉이라고 들어 BTS 멤버와 이름이 같다고 했으나, 제이콥으로 정정하였다.
"우리 아들이 스물한 살이야. 곧 군대를 가야 하는데, 걱정이란다."
"넌 어쩜 이렇게 키도 크고 잘 생겼니? 모델해도 되겠다."
칭찬을 하니 부끄러워한다. 가방에 있던 우리나라 젤리비타민을 선물로 주니 좋아하였다. 아직 아기다.
프라하 시내를 빠져나와 1시간 정도 지나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이용하였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달려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하였다. 3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진 후 이곳에서 다른 차량의 다른 드라이버를 만나 빈으로 간다. 큰 짐은 미니버스에 그대로 보관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다음 차량으로 인계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들 같은 운전기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마을 입구에서 들어가면 오른쪽에 가장 먼저 세미나르니 정원이 있다. 체스키크룸로프 박물관에 딸려 있는 작은 정원으로 성과 성탑, 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포토스폿이다. 사람들이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체코의 상징인 빨간 지붕이 가득한 동화마을의 시작이다. 눈은 즐겁고 손은 바쁘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에 교회가 보이는데, 성 비투스 성당이다.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성당과 이름이 같다. 광장까지 쭉 이어지는 길이 꼭 중세 마을 골목을 걷는 듯하다.
골목 끝에 스보르노스티 광장이 나온다. 13세기에 형성된 체스키의 중심 광장이다. 관광안내소와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근처에 에곤 실레 아트 센터가 있다. 광장 중앙에는 18세기 흑사병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세운 '마리아 기둥'이 있다.
광장 가까운 곳에 에곤 실레 아트센터도 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에곤 실레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한다. 빈 분리파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제자이자 후배인 에곤 실레는 사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했던 어머니와 예술가가 되기 원한 실레와 의견 충돌이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 어머니를 증오하기까지 했다는데, 이곳에 에곤 실레의 작품 전시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에곤 실레가 위대한 화가라는 방증 아닐까? 우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에곤 실레를 만날 계획이라 이곳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스보르노스티 광장에서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면 체스키크룸로프 성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끼고 S자로 커다랗게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다. 강에는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도 보였다.
이 다리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합스부르크 왕가의 서자 루돌프 2세가 정신병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뒤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자, 여인의 아버지인 이발사가 마을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여 희생되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이발사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다리를 만들고 '이발사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라트란 거리를 따라 걷다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오면 체스키에서 가장 큰 체스키크룸로프 성을 만날 수 있다. 체스키 성은 프라하의 흐라드차니, 즉 프라하 성 다음으로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이라고 한다. 13세기에 성이 세워진 이후 1302년 독일계 로젠베르크 가문이 이곳의 주인이 되어 성을 확장했고 이후 1602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로젠베르크는 독일어로 '장미의 동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장미꽃잎 5개로 된 가문의 문장이 많다.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시기별로 지배자에 따라 건물의 증축과 함께 건축 양식이 혼합되었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으로 진입하는 다리 아래에 적의 진입을 막고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해자가 있다. 그런데 이 성에는 해자에 물이 없다. 대신 곰 두 마리가 있었다. 로젠베르크 가문의 전통으로 해자에 곰을 키워왔으며, 지금도 곰 두 마리가 해자에 서식하고 있다. 성 입구에 있는 두 마리의 곰이 생뚱맞기도 하였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오히려 성보다 곰이 더 인기인 것 같았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의 입구이자 경사진 성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과거 성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 역할을 한 곳으로, 15세기에 목조 다리로 지어졌으나 재건하면서 석조 기둥 위에 3층의 규모 아치를 덮은 것에서 망토 다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다리는 현재 성 안의 바로크식 극장과 정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발사의 다리와 마을을 바라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성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아주 예쁜 정원이 나온다. 자메츠카 정원이다.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조성된 정원으로 넓은 정원에 화단과 분수, 조각상이 섬세하게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깔끔하게 관리된 정원을 따라 걸으면서 산책하는 재미가 있다. 가장 안쪽에 들어가면 예쁜 연못이 나온다. 벤치에 앉아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연못에 떠다니는 오리를 보면서 잠시 쉬었다. 초록초록 정원이 선사해 주는 힐링타임이다.
성 문을 나오기 전에 가판대에 기념품을 팔고 있어 구경하였다. 체스키크룸로프의 전경, 장미 문장과 함께 체스키의 전성기를 이끈 빌헬름 폰 로젠베르크의 얼굴이 담긴 예쁜 컵이 눈에 띄어 하나 샀다. 값을 흥정해 보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이컵은 모양이 예뻐 지금도 아주 잘 쓰고 있다.)
성을 나와 부데요비츠카 문을 보러 갔다. 체스키크룸로프를 둘러싸고 있는 9개의 성문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문이라고 한다. 동화책을 보는 듯하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의 뒷모습도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요기를 하고 시간 맞춰 미팅포인트로 갔다. 아침에 만났던 기사와 비슷한 모습의 훤칠한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회사는 외모 보고 기사를 뽑니? 다들 키도 크고 잘 생겼구나."
여기서 빈까지 3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한다. 가는 내내 체코 시골의 넓은 옥수수밭, 밀밭 그리고 허허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날씨가 엄청 좋았다. 초록 들판에 새파란 하늘 영화 속 한 장면같다. 차를 타고 체코-오스트리아 국경을 건너는 것도 이색적이다.
2017년 가족과 함께 베트남 갔을 때 호치민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는 국제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은 적 있다. 그때는 모두 버스에서 내려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통해 입국 심사를 받고 캄보디아 비자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곳 국경검문소에는 사람도 없다. 그냥 지나간다.
체코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들어서니 마을 풍경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스위스 시골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시골 마을을 지나면 오스트리아 빈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가 나올 텐데, 잠이 들어 보지 못했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빈 중앙역 근처에 와 있었다. 우리 호텔이 있는 곳이다.
친절한 피터는 우리 짐을 모두 내려 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피터라고 기억하나, 확실하지 않다.) 피터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뭐가 없다. 독일에서 샀던 과자가 몇 개 있어서 선물로 주었다. 피터는 오늘 빈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체스키로 가는 손님을 태우고 가겠지?
빈 중앙역 근처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구글지도에서 평점 좋고 가격 좋은 식당이 있어 가려했는데, 문을 닫았다. 다음에 다시 가기로 하고 다른 식당을 찾았다. 콜럼버스플라츠 인근에 있는 식당이다. 오스트리아 슈니첼, 굴라시를 맛보았다.
이곳 슈니첼과 함께 나온 사이드는 저며 썬 감자를 삶아 소스와 함께 간을 하였는데, 차라리 감자튀김이 나왔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프라하에서 맛보았던 매시드 포테이토와 슈니첼이 좀 더 맛있는 것 같다. 굴라시는 소고기 스튜처럼 국물이 있어서 좋았는데, 함께 나온 -밥도 아닌 밀가루도 아닌 뭔지 모를- 사이드 메뉴 식감이 입에 맞지 않았다. 밥하고 먹으면 완전 잘 어울릴 듯. 닭봉 튀김은 짭조름하였다. 100% 만족하진 않았지만 배부른 오스트리아 첫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