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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1일 슈테판 대성당과 링 슈트라세

[DAY 11] 8월 7일 (수)

by 채숙경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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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여행 11일차이다. 오스트리아 빈 1일차. (물론 어젯밤 도착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오늘이 1일) 영화 '비포 썬라이즈'의 도시, 왠지 빈은 파리 느낌이 물씬 난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완벽한 유럽의 도시랄까 그런 느낌. 오늘부터 그 도시를 찬찬히 돌아볼 거다.


  빈 여행의 출발지, 슈테판 대성당에서 시작한다. 호텔에서 가까운 U1 케플러플라츠 역에서 3일권을 구매했다. 빈에 있는 동안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할 계획이다.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티켓 펀칭을 하고 지하철을 탔다. 펀칭이라고 하면 티켓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데, 개시 날짜와 시간이 찍힐 뿐이다. 지하철을 타고 슈테판플라츠역으로 갔다.


  슈테판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화재로 소실되고 이후 14세기 초부터 200여 년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새로 지었다. 성당은 무료로 입장 가능하지만 가이드 투어나 황제와 가족의 시신을 안치한 성당 지하의 카타콤베, 성당 전망대는 유료로 이용한다. 인기 있는 유럽 도시의 관광 일번지답게 아침부터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슈테판 성당은 왕가의 영묘로 쓰였으며, 이곳에서 종교 행사와 국가 의전이 이루어졌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 그런지 내부에 쭉쭉 뻗은 기둥이 많았고 거대한 오르간도 있었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 성당과 느낌은 비슷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가 많지 않아 그런지 엄숙하지만 차분한 느낌이다.

  체코공화국의 모라비아 출신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안톤 필그림이 중앙 설교단을 비롯한 내부 장식을 설계하였고, 성당 내 자신의 모습을 조각하여 넣기도 하였다고 한다. 마치 <아테네 학당>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가 그림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처럼.


  붐비는 성당 내부를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북탑 전망대, 일명 독수리탑으로 올라갔다. 136미터로 가장 높은 남탑 전망대는 슈테플로 불리며 34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입장료는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엘리베이터 정원이 5~6명 정도라 안내원과 다른 승객이 타면 한 번에 우리 네 명이 다 타기는 힘들다. 소진언니가 짤렸다.

  "위에서 기다릴게요~"


  예전에 이곳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침략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도시 전체를 둘러싼 대성벽을 축조하고 바깥에 외성벽을 한 겹 더 쌓았다고 한다. 대성벽은 오스만제국의 공격을 두 차례나 막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 재위 시 이 성벽은 허물어지고 링 슈트라세로 불리는 넓은 길을 만들어 오늘날 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저 너머에 대성벽이 있었겠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길, 링 슈트라세를 오늘 트램을 타면서 돌아볼 예정이다. 오스만제국의 군대가 철수하면서 두고 간 청동 대포를 녹여 만든 18톤짜리 종, '품메린'을 독수리탑에서 볼 수 있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와 손자가 뽑기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기념주화 같은 것이 나오는데,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하고 싶다고 조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기계를 이리저리 보시더니 뽑기가 나왔고, 손자가 매우 기뻐하였다. 아들, 손자 3대가 함께 빈으로 여행온 모양이다. 우리 엄마와 우리 애들도 함께 와봤으면 좋았을걸...

 

슈테판 대성당슈테판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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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필그림 자화상 조각상(왼) 카타콤베 입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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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메린 종(왼), 슈테판 성당에서 가장 높은 첨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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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광장 앞에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돌아보면 그 시절 유럽 귀족이 된 것 같을까? 상상만 해 본다. 그러고는 성당 옆에 있는 마너웨하스와 모차르트 초콜릿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오스트리아의 기념품으로 사 갈 과자들이다. 가게를 본 김에 사기로 하였다. 오늘 종일 들고 다녀야 하므로 몇 개만 사기로 하였다.


  슈테판 성당 뒤쪽으로 가면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가 살았던 생가가 있다. 지금은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운영되는데, 이곳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여 '피가로 하우스'라고도 불린다. 음악의 천재는 음악의 도시 빈에서 성공을 바랐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35살의 젊은 나이에 가난과 질병으로 쓸쓸히 죽어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천재의 비운일까?

  헨델이 죽고 난 후 영국의 궁정음악가 섭외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수락했다면 모차르트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신 하이든이 영국왕실의 궁정음악가로 화려한 인생 후반을 살았다는 것도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박물관 내부 관람을 생략하고 대신 영화 '아마데우스'를 떠올리면서 모차르트가 살았던 공간을 그려 보았다. 집 앞 길을 걸으며 '모차르트도 이 길을 걸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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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하우스


  모차르트가 걸었을 골목을 나와 그라벤 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거리 초입에 하스하우스라는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띈다. 중세 건물들 사이에서 유리로 지은 건물에 슈테판 성당이 비춰 그 자체로 작품이다.

  그라벤 거리 한가운데에는 금박을 씌운 삼위일체상이 있다. '페스트 조일레'라고 불리는 기둥으로 1679년 유럽 전역에 창궐한 페스트의 종식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이 전염병으로 상주 인구의 절반인 1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페스트가 다시는 찾아들지 않기를 바람을 담은 조형물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절망과 공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몇 년간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힘들게 지냈는데, 공중위생 개념이나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 사람들은 질병 그 자체로 얼마나 공포였을까?


  레스토랑, 카페, 각종 기념품 숍으로 가득한 그라벤 거리의 한 기념품 가게로 갔다. 오스트리아와 빈을 상징하는 컵, 텀블러, 인형, 옷 등 각종 기념품이 가득하다. 그중 오스트리아 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황후 엘리자베트, 시씨 관련 기념품들이 유독 많았다. 실제로 그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기념품에 소진언니와 윤지가 유독 관심을 보였다.(시씨는 초상화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굉장히 날씬하고 미인이였다고 한다.)


  그라벤 거리를 나와 슈테판 성당 남쪽으로 가면 케른트너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는 쇼핑 천국, 명품 천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디저트 오리지널 '자허 토르테'를 맛볼 수 있는 카페 자허를 방문하였다. 빈에는 카페 센트럴, 카페 데멜 같은 황가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유서 깊은 카페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중 우리의 이동 동선 내에 있는 카페 자허를 선택하였다. 오전부터 줄을 서 있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허 토르테아인슈페너를 맛보았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예멘과 메카를 거쳐 이스탄불로 갔고 빈을 경유해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오스만제국 군대가 두 번의 공격에 실패하고 철수할 때 청동 대포뿐만 아니라 커피 콩자루도 두고 갔다.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군인들에게 카페인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스탄불의 커피를 아는 귀족이 그것을 불하받아 최초의 커피전문점을 열었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자 이웃나라로 퍼져 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고 한다.

  우리 동네 빵집에도 자허토르테가 있고 아인슈페너도 마셔봤지만 현지에서 직접 먹어봤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나와 같이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가 나올 때 보니 줄은 엄청 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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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하우스와 슈테판 성당(왼), 페스트 조일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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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자허


  카페 옆에 빈 국립 오페라극장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을 지나면 이제부터 링 슈트라세(Ring straße)의 시작이다. 케른트너 링 오퍼역에서 출발해 트램을 타고 시계 방향으로 가다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구경하고 다시 또 트램을 타면 된다.


  빈 미술사 박물관, 호프부르크 왕궁을 지나 제일 먼저 내린 곳은 국회의사당 역이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건물로 의사당 앞에는 왼손에 창, 오른손에 승리의 신 니케를 들고 있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 조각상이 있다. 아테네 동상 아래에는 책을 든 입법부, 칼을 든 행정부를 상징하는 조각상과 오스트리아의 주요 강을 의미하는 물줄기가 나온다.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건물 앞 코린트 기둥에 기대앉아 재정비하는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다. 내부 관람은 하지 않고 외관만 보았다. 사진 찍기 딱 좋은 건물이다.


  그다음은 시청사(Rathaus)이다. 시청 건물이 무슨 궁전 같다. 시청 앞 라타우스 광장은 공원처럼 꽃과 나무로 잘 가꿔져 있고 넓어 산책하기 좋겠다. 한 편에는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는지 커다란 스크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 맞춰 오면 맥주나 음식을 먹으며 공연도 볼 수 있겠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고 한다.

  길 건너에는 부르크 극장도 보인다. 부르크 극장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건립되어 1918년까지 황실 전용 극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 곳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면 시청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지은 빈 대학교가 나온다.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 2>를 읽다 빈대학교를 얼핏 보고 '뭐? 빈대 학교? 그게 뭐지?'라고 읽었다 바로 '아~ 빈 대학교' 하면서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유럽의 대학교는 우리나라 대학처럼 넓은 캠퍼스에 여러 단과 대학 건물이 있는 종합 대학교가 아니라 단과 대학별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보았다. 대학이 배출한 대단한 학자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의 흉상이 쭉 있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천장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대학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 잔디밭에 다른 대학생들처럼 앉아서 쉬었다. 소진언니는 한숨 자는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1853년 요제프 황제의 동생이 모금하고 설계를 공모해 지은 보티프교회가 보이는 트램역에서 다음 트램을 타고 도나우 운하로 갔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아니라 도나우 강물을 도심으로 끌어온 운하다. 벽면에 온갖 그라피티 작품으로 가득하다.

  윤지는 배가 고팠는지 슈베덴 플라츠에서 파는 피자를 점심으로 먹었다. 기다리는 동안 운하와 운하 옆 건물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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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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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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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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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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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램을 타고 빈 시립공원으로 갔다. 1862년에 조성된 오스트리아 최초의 시민공원이라고 한다. 다양한 조각상으로 꾸민 조경이 아름다워 산책하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현지인과 여행객의 휴식처인지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뭐 하나 했더니 요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 온천천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모여 라인댄스 수업을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건가 보다. 소 고양이 자세를 하는 아빠 등에 올라타는 아기를 보니 우리 애들 어릴 때가 생각났다. 서양 애들이나 우리 애들이나 아빠가 엎드려 있으면 얼른 아빠 등에 올라타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가 앉은 의자 옆에 무궁화 꽃이 피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오케스트라 콘서트 홀 '쿠어살롱'에서 공연을 봐도 좋겠지만 우리는 다른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어 지나쳤다. 그 앞에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동상이 있다. 그 시절 왈츠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도 하고 지휘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25년 1월 11일 부산문화회관 신년음악회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with 조수미' 연주회에서 왈츠를 지휘하던 지휘자가 바이올린을 가져나와 연주를 하면서 지휘를 하였다. 그런 이유가 있었네.

 

  공원을 빠져나와 인근의 베토벤 공원에서 '음악의 성인' 베토벤 동상을 만났다. 모차르트와는 달리 베토벤은 궁정음악가가 되지 않아도 1827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생활하였다. 독신으로 생활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고 많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지지자이자 계몽주의자였던 베토벤에 이런 일화가 있다. 1808년 빈을 함락한 나폴레옹군 장교들을 위한 연주회에서 자리를 뛰쳐나와 자신을 후원한 리히노프스키 공작에 모욕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당신과 같은 공작은 수백, 수천명이지만 나 베토벤은 한사람 뿐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음악 천재의 대쪽같은 자존심이 현재의 베토벤을 있게한 이유 아닐까?

  선천성 난청으로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54세의 나이에 완성한 제9번 교향곡 '합창'은 부산시립오케스트라 송년음악회에서 연주된 적이 있었는데, 오케스트라와 백 명이 넘는 합창단의 연주에 압도된 기억이 있다. '역시 베토벤'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베토벤을 기억하는 공원에서 지현언니는 나의 인생샷을 찍어 주었다.

  오스트리아는 예술의 도시이긴 한가보다.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건축이면 건축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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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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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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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 슈트라세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트램을 탔다. 빈을 한 바퀴 쭉 둘러본 셈이다. 다시 어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케플러플라츠 지하철역 바로 옆에 케밥 전문점이 있었는데, 맛집으로 소문 났는지 줄이 엄청나게 길다. 만드는 걸 구경하고 있으니 직원이 "안녕하세요?" 하고 우리말로 인사했다.

  "오~ 안녕하세요? 엄청 맛있는 케밥인가 봐요."

  오늘은 줄이 너무 길어 못 기다리겠으니 내일 먹어보자 생각하였다. 어제 가보려 했던 식당은 오늘도 문을 닫았다. 여름휴가를 갔나 보다. 그 옆에 다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옆에 있는 마트에 가니 오전에 샀던 마너 웨하스와 모차르트 초콜릿이 있었다. 가격이 더 저렴했다. 몇 개 더 구입을 하고 저녁에 호텔에서 먹을 물과 과일을 더 샀다.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마트 들렀다 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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