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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쵸의 와장창창 미국 서부 불나방 여행 1일 차

데이터 200메가 들고 떠난 미국 여행

by 재쵸

<미국 여행 1일 차:마리비앤비/LA 유니버셜 스튜디오/힙스터식당:Laurel Hardware>



<인생의 장르를 바꿀 수 있다면>

내 인생의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누구라도 시트콤이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내 인생이 로코 또는 멜로 같기를 바랐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인생의 장르가 바뀌지 않을까 기대에 차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4월에 미국에 가겠다는 말에 베가스 보이의 답은 '더 일찍 오면 좋을 텐데'였다. 그 길로 나는 당장 퇴사를 질렀고, 2달 뒤 예정이었던 여행은 2주 뒤로 당겨졌다. 정신없이 여행을 준비하던 와중에 자꾸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여자친구가 있는데 일회성 만남을 위해 만나는 건 아닐까?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베가스 보이에게 장난인 척 '혹시 결혼했거나 애가 있는 거 아니냐?'하고 물었다. 그에게서 '결혼 안 했고 아기가 있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애 엄마가 2월 8일에 베가스에 오니까 그전에 와야 만날 수 있어.'라는 개소리를 시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작년 12월에 아이 아부지가 된 몸이었고, 애 어머니와 산뜻한 육아 파트너로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이 $#@$^^........... 내 인생의 장르를 바꿀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부서졌다. 그렇게 기분이 상당히 잡친 채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4년 만의 공항>

리무진을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몰랐는데 공항버스 리무진을 타려면 어플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출국 며칠 전에 누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택시 타고 인천 갈 뻔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모바일 체크인을 했는데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어서 또 했다. 짐 부치는 곳에도 사람 대신 기계만 있어서 어리바리하게 있으니 누가 도와줬다.

미국 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이스타 비자, CDC 검사서, 백신 접종 증명서) 중 CDC 검사서만 준비를 못 했었는데 마침 공항 직원이 양식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CDC 서류를 잘 작성한 뒤에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왔다..^^..... 나중에 보니까 이스타비자도 한국어로 출력을 했더라.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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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내내 다리가 퉁퉁 부어서 힘들었다. 4년 전 뉴욕에 갔을 때는 입국 거부 당할까 봐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이번에는 밥, 간식, 밥... 때 되면 주는 음식들 덕에 사육당하는 것 같았다. LA에 도착하고 나서도 기대감 대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입국 심사를 대기하며 아이가 있는 가족을 직원이 불러 먼저 심사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장면을 봤다. 약자 보호에 관한 인식은 확실히 선진국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심사대로 향했다.

"How are you? 왜 왔어? 일하러? 휴가?"

"응, 휴가~"

"LA만?"

"아니, 베가스도 가^^"

"베가스 어떻게 가는데?"

"플릭스 버스 타고..^^.."

"너 직업 뭐야?"

"(무명) 작가야..^^" (석류가 쏟아지는 방 봐주세요 제발 (소근소근))

"뭐 쓰는데? 로맨스? 호러?"

"에브리띵~~"

"오우~ 에브리띵~~"

"웅.^^ 바이~"

참고로 나는 외국인과 1:1 영어 회화를 한 지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당초영어로나마 소통을 잘 끝내 기분이 좋아진 채로 짐을 찾았다. 한인 민박을 통해 택시를 미리 불러놨기에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공항에서 공사하는 인부들이 무척 잘생겼었다. 그 기점으로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여행의 킥, 마리 비앤비로>

택시 기사님은 민박집 남자 사장님(이하 남사장님)이었다. 춥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겨울옷만 왕창 챙겨 왔는데 창 밖으로 반팔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때 나는 기모 츄리닝 세트에 코트까지 입고 있었다. 여행 내내 겨터파크가 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가는 동안 남사장님은 미국 여행에 관한 팁을 많이 주셨다.

1) 요새는 포장이나 카페에서도 팁이 필수가 됐다는데 사실인가요? > 아니다. 포장/카페/패스트푸드점은 팁을 안 내도 되는 곳이다. 만약 팁 고르는 칸으로 넘어간다면 팁 지불 x를 체크하면 된다.

2) 우버도 팁을 내야 하나요? > 아니다

3) 모하비 사막(바그다드 카페가 있는 곳)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나요? > 민박 사람들 모아서 차 빌려서 가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많이 다닌다.

4) 새 지폐는 구겨서 사용해라. 겹쳐져있으면 돈을 더 많이 내게 될 수 있다.

5) 치안은 어떤가요? > 버스는 타도 괜찮지만 전철은 절대 타면 안 된다. 걸어 다녀도 되지만 골목은 절대 가지 마라.

안 그래도 미 서부는 치안이 안 좋다는 말이 많아서 무조건 우버로 이동하려 했었다. 그런데 때마침 어떤 미친이가 도로를 걸어 다녔고, 다시금 우버만 타리라 결심했다.

가는 길에 멀리 헐리웃 사인이 보였고, 남사장님은 숙소 근처에서도 잘 보인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장창창 초스피드 준비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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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사장님(여성)은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10시가 좀 넘었을 때인데 방이 다 차 있어서 얼리 체크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유니버셜에서 12시에 보기로 동행과 약속이 되어있었고, 긴 비행으로 머리는 떡진데다 몰골은 초췌했다. 게다가 면역력이 최저로 떨어진 상태였기에 샤워가 간절했다. 약속을 한 시로 미루고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언제 체크인을 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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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거실에서 마리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마리 사장님은 유니버셜 안에 파는 음식들은 비싸고 맛이 없으니 기다리는 시간에 김밥을 사러 가라고 하셨다. 내 유심으로는 전화, 문자 사용이 불가능해서 마리 사장님이 대신 전화 주문을 해주셨다. 얼레벌레 포장을 하러 가는 길, 하늘이 맑고 날씨는 따사로웠다. 역시 캘리포냐...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김밥 두 줄을 8불에 구매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 사이 퇴실한 사람이 있어서 11시에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씻고 나왔더니 동행으로부터 12시 20분쯤에는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36분. 마음은 급한데 드라이기 바람은 너무 약했다. 차라리 입김으로 말리는 게 빠르겠네 싶을 정도로. 머리 말리다 말고 화장을 했는데 배가 고파서 손이 벌벌 떨렸다. 젖은 머리에 고데기하고, 물건을 챙기려는데 어디에 쌌는지 몰라서 모든 짐을 다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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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버를 불러야 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나는 우버를 써본 적이 없다. 뉴욕에서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시도한 적 있지만 인증이 안 돼서 결국 못 썼다. 그때 쫄딱 젖은 채 겨우 전철역을 찾아갔지만 카드 판매기가 창살 안 쪽에 있었고, 카드를 찍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무원 통화 버튼을 눌렀으나 영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도 내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서로 본인 할 말만 하는 환장의 불통쇼를 지나가던 한국인 여성분이 듣고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거기 계속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버만큼은 미리 등록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었지만 가입이 되지 않았다. 다른 우버 앱을 깔아서 회원 가입을 마쳤더니 기사용 어플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 가서 하지 뭐.' 라며 그대로 덮어두었는데 이렇게 빨리 우버를 쓰게 될 줄이야. 똥줄이 타들어가며 우버 가입과 카드 등록을 했고, 차량을 불렀다.

숙소를 나오며 급하게 뿌린 향수 때문에 차에서 멀미가 났다. 동행에게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했고, 동행에게서 차가 막혀서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다고 답장이 왔다. 긴장이 풀리며 안도감이 들었다. LA에 도착 이후 정신없이 몰아치는 상황에 어느새 애 아부지 생각은 흐릿해졌다. '그래, 그저 파더에 불과해..'


<별 거 없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폐장을 곁들인>

유니버셜은 놀이공원과 시티워크로 나뉘어 있는데, 놀이공원 입구에 유니버셜 로고인 대형 구가 있다. 우리는 놀이공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버 기사가 내게 말을 걸었는데 몇 차례 되묻고 나서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디에 내리냐기에 테마 파크에 내려달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내린 곳은 시티워크였다. 다행히 유니버셜 LA는 규모가 작아서 10분여간 걸으니 놀이공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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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만 소통하던 동행을 드디어 만났다. 짐 검사 후 입장하려는데 직원이 내게 계속 말을 했고 당연히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영어 회화 9개월 차) 알고 보니 여권을 보여줘야 입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영어개노답관광객이었기에 직원은 '다음에는 니 진짜 이름 보여줘..^^'라며 나를 들여보내주었다. (유니버셜 표는 보통 1+1으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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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리는 심슨라이드를 처음으로 타려고 했다. 왜냐? LA에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계획 없을 무, 길치였기에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그러다 해리포터 테마 파크를 발견했다. 놀이기구를 탔는데 아주 재밌었다. 롤러코스터처럼 기구가 많이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바람 등의 효과와 생생한 영상 때문에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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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서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우리는 나이가 같았기에 공통 관심사나 고민들이 겹쳤다. 30대로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혼, 해외 살이 등... 그런데 관심사가 같아도 세부적인 갈래나 그 이유는 많이 달랐다. 가령 동행은 단기 해외 살이는 좋지만 이민은 싫다 했고, 나는 따뜻한 나라로 이민 가고 싶어 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내 생활 반경 속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수준이기에, 평소에 접할 일 없는 계통의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생각을 교류하는 게 신선했다. 어찌 보면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완벽한 사람도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동행은 정서적,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어서 내가 동행이면 마냥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행도 막차로 워홀을 떠나는 나를 신기해했다. 도전은 쉽게 할 수 없다는 거라며 말이다. 물론 나는 진짜 앞길이 막막했고, 동행은 창창하다는 점은 달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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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안고 심슨라이더를 탔는데 범퍼카만도 못했다. 티비 화면 하나 틀어주고 우리가 탄 통이 움직이는 방식의 놀이기구였다. 알고 보니 해리포터 빼고 다 그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해리포터를 한 번 더 탔다. 두 번째는 크게 감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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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날씨가 추워졌다. 몸을 데우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피스타치오 라테를 시켰는데 우유에 향만 첨가한 수준이었다. 한 시간 정도를 거기 앉아서 수다만 떨었던 것 같다.

우리는 쥬라기 공원과 마리오 테마파크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쥐라기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연히 둘 중 아무도 팸플릿을 챙기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간 2월 6일에는 둘 다 개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내내 작아서 볼 게 없다는 말이 맞네요,라고 했으나 폐장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13만 원의 값어치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헤매느라 못 본 것도 많지만 나름대로 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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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맛집:Laurel Hardware>

우버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유니버셜에 있는 내내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여기가 고지대라서 그런가? 전파가 방해를 받나? 답답함과 의문에 휩싸인 채 검색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동행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 핵인싸였던 동행은 우버기사와 10년 절친처럼 대화를 나누며 화장을 고쳤다. 와중에 미국 여행 카페에 글을 올려 식사 파티원도 모집했다. 그의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당할 즈음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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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좌석 / 실내 좌석 / 실외 좌석

식당은 요새 트렌드인 모르고는 절대 못 찾아올 것 같은 외관이었다. 처음에 여기 맞아? 하며 두리번대다가 막상 안에 들어오니 오, 맞네. 싶었다. 가게는 실내 좌석과 외부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외부에 착석했다. 거기가 더 멋있으니까...^^ 다행히 커다란 난방기구가 있었다. 천장이 뚫려 있어서 아무 소용없었지만, 멋만 있음 되니까 괜찮아!

나는 동행의 휴대폰을 빌려서 유심 구매처에 연락을 했다. 다행히 그때 한국이 업무 시간이었기에 바로 소통할 수 있었다. 대체 이게 왜 안 되나, 유니버셜이 문제인가 유심 카드가 불량인가!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 상담원은 내가 200M 유심을 샀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200M 유심..!! 미국 온 지 두 시간 만에 161M를 써버려서 먹통이 된 유심..!!

당시 나는 날짜와 가격만 보고 '오, 이게 제일 싼데 왜 남들은 비싼 걸 살까? 바보들~'이라며 몇천 원짜리 최저가 유심을 샀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알게 된 것이다. 바보는 나란 것을... 상담원은 충전식 유심이니 충전을 원한다면 15,000원을 지불하라고 했다. 처음 구매 비용+충전 비용=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더 비싸게 구매한 셈. 쓸데없는데서 가성비를 따지는 나는 충전을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사면되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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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물가는 미쳤지만 여긴 유독 미쳤었다. 손바닥만 한 연어 누룽지 같은 게 팁 포함해서 3만 원 정도였다. 맛도 그저 그랬다. 그런데 왜 여기가 LA 맛집이냐? 그건 우리 담당 서버가 너무 맛.. 아니, 멋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흑인이었고 담백한 얼굴이었지만 언뜻 장난기가 엿보였다. 너무 마르지도 과하지도 않은 탄탄하고 길쭉한 몸은 유니폼이 무척 잘 어울렸다. 귀여운 사람은 많다, 섹시한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면 큐트하고 섹시한 사람은 얼마나 소수인가. 나는 그곳에서 소수 중 소수를 본 것이다. 정말이지 욕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우리 추워서 난로 좀 가까이 옮겨줄래?"

그는 흔쾌히 야자수만큼이나 커다란 난로를 옮겨주었다. 나는 난로를 옮기는 그의 팔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치를 마친 그가 내게 "니 쪽으로 더 가깝게 못 옮겨서 미안해."라며 웃어주었다. 흑흑흑. 흑흑. 난 잘 생긴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나더라. 흑흑흑. 흑흑.. 그리고 현재 나는 더없이 건조하게 살고 있다.


<재쵸가 만난 사람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하며 특히 남자랑 있는 건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술도 싫어하고 성격도 내향적인 편이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혼자서 우버 타고 돌아다니다 일찍 숙소로 복귀하는 거였다. 그런데 첫날부터 많은 변수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저녁 식사에서 즉석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예비 공무원인 남자분이었다. 다음으로 엔지니어 일을 하는 어린 여자분, 마지막으로 출장 오신 남자분이 도착했다.

미국에 와서 열린 마음이 된 건지 이런 만남이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미국에 오게 된 건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엔지니어 친구는 성격이 활달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 친구는 혼자 차를 렌트해서 베가스까지 몇 시간씩 드라이브를 했다고 했다. 나는 면허가 있지만 해외에서 운전을 하는 건 겁이 나 시도를 못 했기에 그 친구가 참 대단해 보였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변수가 없었더라면 이런 신선한 충격도, 즐거운 수다와 저녁 시간도 없었을 테지. 평소 하지 않던 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구나, 어떤 즐거운 일로 돌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하늘이 뚫려 있어 추웠지만 덕분에 별을 볼 수 있었다. 별이 촘촘히 박힌 하늘이 아름다웠지만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다. 어떤 순간은 그저 온전히 즐기는 방법밖에는 없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담는다고 해도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으니까. 그때 나는 참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애 아부지? 그게 누구죠?>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10시가 넘었다. 더 있다가는 돌아갈 때 위험할 것 같아서 우리는 큐트섹시보이에게 결제를 요청했다. 잘생겼으니 팁 좀 더 챙겨주죠?라는 동행의 제안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나는 마음이 몹시 조급해졌다. 큐트보이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너무나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히 공책을 찢어서 악필을 갈겼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쪽지를 건넸다. 그는 쓰레기를 줬다고 생각한 건지 뭐라고 내게 이야기를 했는데 놀랍지 않게도 알아듣지 못했다.ㅠ... 내가 그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그가 내쪽으로 허리를 숙여주었다.

"내 말은 너 귀엽다구~ ^.~"

"오우, 고마워, 너도 되게 큐트해~ 정말 감동이다, 나 이거 간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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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스러울 정도로 스윗한 몸짓과 함께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 한국 못 가, 결혼으로 책임져!

아직도 나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물어보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행복해라, 큐트섹시보이...


<첫 만남과 첫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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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셜 동행은 우버가 일찍 도착해서 먼저 갔고, 우리는 주차장까지 같이 걸어갔다. 달이 아주 환하고 커다랬다. 엔지니어 친구가 나를 태워준다고 했지만 그 친구 숙소는 한인 민박과 너무 멀었기에 거절했다. 주차장 앞에 세븐 일레븐에 들렀지만 유심을 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빈 손으로 나와 엔지니어 친구와 작별 인사를 했다. 마지막까지 그 친구는 나를 숙소까지 태워주고 싶어 했다. 정말 그러고 싶었지만 여자 혼자 늦은 시간에 돌아가는 건 위험했기에 불가피했다. 우리는 내일 저녁에 시간이 맞으면 놀기로 하고 진짜로 작별을 했다.

이건 비밀인데 그 친구가 내게 '언니 너무 예뻐요. 아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여.ㅎㅎ.'라고 해주었다. (이런 말 잘 못 듣는 사람 특징:어쩌다 예쁘다는 말 들으면 사골처럼 우려먹는다) 아직도 종종 그때 차를 탔더라면 여행이 다른 쪽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순간의 선택이 쌓여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해 여행 내내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좀 더 친해졌더라면 한국에서도 인연이 이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대신 다른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 본다.

출장 오신 분은 차를 외진 곳에 대서 주차장까지 같이 가주면 우리를 태워준다고 하셨다. 걸음을 옮기는데 어떤 외국인이 우리를 불렀다. 미국 치안에 대해 상당히 겁먹은 상태였기에 '총으로 쏘는 거 아냐?' 싶었다. 알고 보니 외국인은 심 카드 파는 곳을 알려주려고 부른 거였다. 머쓱... 세상엔 좋은 사람이 참 많다.

길거리에 아무도 없었다. 가는 내내 남사장님이 해주신 치안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절대 골목길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여행 첫날부터 금기를 깨고 있었다. 칼이면 피할 수라도 있지 총은... 만약 총에 맞더라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자는 생각을 하는데 주차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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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먼저 내려준다고 하셔서 숙소명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자꾸만 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울렸다. 우리는 모두 벨트를 매고 있었다. 뒷 좌석 가운데 자리까지 벨트를 채우니 경고음이 멈췄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왔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민박 픽업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했다. 일행들은 50불이란 금액을 듣고 우버는 30불이라며 기겁을 했다. 공무원분이 공항 바로 앞에서 무료 셔틀을 타면 우버 픽업 존에 내려주는데 왜 우버를 안 탔냐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우버 픽업 존이 따로 있는지 조차 몰랐다. 진짜 하나도 안 알아봤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패키지여행을 하려고 했다. 계획 짜는 것도 귀찮고 길 찾는 것도 스트레스라서. 그 모든 귀찮음을 이겨내고 자유 여행을 택한 것은 순전히 애 아부지 때문이었다. 쓰앙럼...^^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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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비앤비 근방에 도착했지만 차를 세울 수가 없어서 천천히 주행했다. 출장 오신 분이 여기가 맞냐고 물었다. 밤이라서 아침이랑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886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그마저도 확실치가 않았다. 인터넷은 안 되고, 어두워서 집에 적힌 숫자도 안 보이고. 하는 수 없이 대로를 쭉 타고 내려가 어느 주택가에 들어간 뒤에 다시 돌아왔다. 결국 공무원분이 잘 터지지도 않는 로밍 연결해서 마리 비앤비 주소지를 다시 확인해 줬다. 886 숫자를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잊을 수 없다. 헤어지기 전 공무원 분은 내게 "민박 픽업 부르길 잘하셨어요..^^"라고 했다. 네, 제가 말했잖아요. 제가 저를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거였어요.


<마리 비앤비에서의 첫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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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룸메 엘사

아무도 없는 거실을 지나 방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있었다. 자거나 조용히 휴대폰을 하고 있어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뉴욕 한인민박과 다르게 굉장히 정숙한 분위기구나. 씻을 때 보니 배에 치마 자국이 선명했다. 살금살금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바그다드 카페에 미련을 못 버려서 데이팅 앱을 돌려봤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어느새 애 아버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집이 최고인데 굳이 LA까지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게 무색하게 웃음이 실실 났다.

출발 전에 몇 가지 바라던 것들이 있었다. 즐거운 이벤트가 가득하길, 유튜버 친구가 생긴다면 재밌겠다, 잘생긴 남자 구경 실컷 하고 싶다 따위의 시답잖은 것들. 계획도, 의욕도 없었기에 이뤄질 리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첫날부터 즐거운 일들이 가득했다. 영어가 부족해 큐트섹시남에게 더 집적거리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지만, 답답한 2층 침대도, 침대 천장에 붙은 엘사 스티커도 더할 나위 없었다. 당장 내일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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