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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목 Aug 12. 2020

카우스피라시, 장마 그리고 개봉에 즈음하여

어쩌다보니 시작된 일 … ②

새벽녘 요란한 빗소리에 잠이 깼다. 정말 이렇게 매일 매일 비가와도 괜찮은 걸까? 이건 우리가 해마다 겪는 그 장마가 아니라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넷플릭스를 켰다. 가벼운 영화나 한 편 보다 잠이 다시 들고 싶었지만 눈에 들어온 건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다. 제목은 ‘카우스피라시’. 혹시 싶어 보니 맞다. COW + CONSPIRACY의 조합이다. 

오프닝 크레딧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에 참여한 모양이다. 헐리웃 배우 중에는 그처럼 환경운동가로 활약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아무튼 다큐는 제목에서 의미하듯 축산업과 관련한 음모론(?)을 다룬다. 사실 음모론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도 모른 척 외면해온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까 숲이 사라지는 이유, 그로 인한 기후 온난화와 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의 주범이 흔히들 이야기해 온 화석연료의 무차별한 남용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실은 축산업에 있다는 주장이다. 단지 인간들이 먹을 고기를 좀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우리는 숲을 없애고 그로 인해 지구는 하루가 다르게 병들고 있다는 이야기. 굳이 나비의 날개짓을 끌어다 쓰지 않아도 어쩌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장마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렇게 시의적절한 다큐라니.


다큐의 끝자락에서 누군가 말한다. 우리는 저마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행복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알면 실천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 당연한 말이 참 어렵다. 일단 안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고 설사 알게 됐다고 해서 실천할 수 있을지 여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개발 지역에 사람들이 떠나면서 단지 버려졌을 뿐인 개들이 (사나운) ‘들개’로 호명되는 걸 왠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그게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까? 그냥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넘겼음 그만인데 …)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가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 시작한 시점으로 계산하면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완성한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이 이달 말 개봉한다. 주위에서는 축하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축하받을 일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지금 이 과정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아서일 거다. 아무튼.


그 와중에 지금은 또 어쩌다보니 개식용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고 편집 중이다. 하다 보니 이번 다큐는 이전 작업과는 좀 달라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그게 재밌기도 한 걸 보면 이 일을 내가 좋아하기는 하나 보다.) 덜 감성적이 됐다고 할까? 진실을 전하려면 좀 더 차가워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아무튼.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어느새 과거의 것이 됐다. 최종 상영본을 확인하고 예고편을 만들며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또 달라졌음을 느낀다.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 달라져봐야 내가 내가 아닌 건 아니니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또 생각한다. (이런 슬픈 예감은 좀 틀려도 좋으련만)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비가 그쳤고 대신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그래도 하늘이 맑지는 않다. 2020년은 참 이상한 해로 기억될 거 같다. 대신 새해가 됐을 때 가졌던 희망, 계획은 아주 먼 기억처럼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아주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려 한다. 시간을 겪으며, 참아내며 알게 된 무언가가 있고, 그렇게 알게 된 무언가가 촘촘하게 연결된 이 세상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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