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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혜 Apr 30. 2017

당신의 본질을 알리기 위한 노력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이란 어쩌면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것 이외에 다른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 보통의 존재, 이석원


3년 전 수사학개론 수업에서 팀별로 둘러앉아 '내가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너'를 키워드로 적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학생에게 나타난 특징은 '내가 보는 나'와 '세상이 보는 나'에 크고 작은 간극이 있었다는 점이다.

수강생 50여 명 중 유일하게 내가 그 간극이 없는 특이 케이스였다. '독립적인, 완벽주의인, 차분한, 분석적인, 현실적인, 부끄럼이 많은'. 교수님께서는 내가 '타인과의 상호작용, 관계 맺음 속에서 건강하게 사회화를 마친 자아 케이스'라며 사례 설명까지 붙여주셨다.

지난주, 3년 만에 다시 물어본 내 이미지는 '노력하는, 강인한, 끈기있는, 독립적인, 논리적인'.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를 세상의 시선에 의해 규정해왔다. 외부로부터의 시선이 틀렸다고 내가 판단하는 내 모습이 진짜 나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애초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받고 규정지어질 것을 의식해 '본질의 나'를 만들어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마다 사람들이 내게 가진 이미지가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태생적 이유로 타인의 시선을 항상 받아야 했던 어린 '나'는 분기점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겠다'는 다짐부터 수정했고 거기에 맞춰 생활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에겐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가 정확히 일치하는 특이 케이스가 된 것이다. 나는 늘 보통의 존재가 되길 소망해온 사람이기에 이는 참 슬픈 일이다.


지난주 내내 '이 사람은 어떠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묻는 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호기심이었겠지만 사람의 성격은 복합적이어서 타인을 한 가지로 규정지어 말하긴 곤란하다. 한 가지 성격만 가진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크레파스가 8색이건 12색이건 36색이건 색이 하나뿐인 크레파스 묶음은 없듯.

물론 '좋죠', '불친절해요' 등등 간단히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어려운 사람도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받고 규정지어지기 마련이지만, 타인에 의해 쉽게 규정되어온 자로서 뭐든 단정 짓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착한 사람, 누군가는 나쁜 사람이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자신이 편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착할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이기적이고 답답한 사람일 수도 있다. 때문에 '이 사람 어떠니'가 아니라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그런 질문만 듣고 싶다.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고.
-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금 나에 대한 평판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구나. 물론 저런 평가들도 분명히 내가 가진 모습 중에서 나온 것일 테지만 그것은 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이렇게 인정해 버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일까. 인정하고 실제 어떤 사람인지는 그다음 노력으로 함께 알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예로 실상은 이렇다고. 나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기보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마음을 열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오히려 외롭다고. 직설적인 구석도 있지만 주변인을 누구보다 지키고 싶어서인데 그런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아 섭섭했다고.

그러니까 얘기 좀 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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