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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 꽃 한 송이가 어때서?

나의 프로포즈 이야기

by 달리

프로포즈 날이었다. 미로 같은 건물에서 미리 체크해둔 길로 여자 친구를 안내했다. 장소는 꼭대기층 레스토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미세하게 달라지는 기압에 적응하려 귀가 약간 멍해졌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벌써 까마득해지는 걸 보니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그런데도 내게는 그 시간이 길었다. 여자 친구에게 아내가 되어달라 말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 순간을 실수 없이 맞기 위해 나는 전날 이곳에 먼저 왔었다. 근처 유명한 가게에서 케이크와 꽃다발을 샀고, 레스토랑 직원에게 하루만 보관해달라 부탁했다. 직원은 웃으며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좋은 창가 자리와 저녁 코스 메뉴를 예약하고 나왔다. 그러고는 주차 위치와 동선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일주일쯤 전에는 반지를 준비했다. 프로포즈 날 꽃과 함께 건넬 반지였다. 엄마가 결혼할 때 할머니께 받았던 금 장신구들을 녹여 만든 반지였다. 엄마는 이렇게 하면 부부가 잘 살게 된다고 했다. 프로포즈를 장식할 선물로 좋을 것 같았다.


준비를 하다 보니 뜬금없이 몇 년 전 어느 술자리 장면이 떠올랐다. 그 날 대화 주제가 프로포즈였는데, 그땐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우리 두 사람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프로포즈할 때 장미꽃 한 송이를 준비할 거야. 우리 둘만 있는 조용한 장소에서 꽃을 건네면서 결혼해달라고 말할 거야.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진심을 담아 말해줘야지. 나는 프로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게 진심을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때 나는 프로포즈의 형식은 진심을 담는 그릇으로 쓰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 다 하니까, 두고두고 바가지 긁힐 게 두려워서, 안 하면 안 되니까 마지못해 하는 프로포즈는 아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가장 특별해야 할 둘만의 프로포즈에 남들의 시선이나 눈치가 끼어드는 게 못마땅했다. 이런 프로포즈는 대단하고 저런 프로포즈는 조금 부족하다는 남들 얘기보다, 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밀도 있게 오가는 진심이 중요하다고 나는 믿었다. 그건 내게 일종의 낭만이었다.


"꽃 한 송이로 프로포즈를 어떻게 해.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야지."


그때 아내는 여자가 좋아할 만한 걸 찾아서 그걸로 프로포즈해야 한다고 다.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이 남았다. 어째서 꽃 한 송이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하다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걸까. 진심을 담은 아주 특별한 꽃 한 송이가 풍선과 촛불 이벤트, 결혼반지와 명품 구두 옆에 나란히 서지 못 이유가 뭘까. 남에게 보여주거나 사진으로 남길 만큼 화려하지 않아서?


친구가 말했다. 결혼식 자체가 하나의 요식행위나 전시용 이벤트에 불과한데 그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프로포즈는 왜 그러면 안 되냐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프로포즈에 대한 낭만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내 취향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결국 그러지 않았다.


전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프로포즈 편지를 쓰면서 생각했다. 대단한 걸 준비하진 않았지만, 둘만의 장소에서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낭만을 포기한 이유는 뭐였을까. 여자 친구가 실망할까 봐, 사람들이 그게 무슨 프로포즈냐고 타박할까 봐, 뭔가 부족한 느낌에 혼자 꺼림칙해서. 결국 알맹이 없는 생각들에 가장 많이 흔들린 사람은 나였던 것 같다. 정말 꽃 한 송이론 부족한 걸까. 왜? 꽃 한 송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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