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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나도 하고 싶기는 한데

더 찌지만 않아도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by 달리

키 176에 몸무게 78. 아주 뚱뚱하진 않지만 살짝 비만인 체형. 내 몸의 현주소다. TV와 인터넷부터 거리의 현수막까지 주변에 온통 다이어트 성공기가 차고 넘치지만 나는 아직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들어가기 전이다. 아내는 내 넉넉한 몸집이 좋다고 했다. 깡마른 사람이었으면 만나지도 않았을 거라고. 가끔씩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뚱뚱하다 툴툴거리는 내게 아내의 저런 말은 꽤나 큰 위안이 된다. 뭐, 내 아내한테만 좋아 보이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아내는 한편으로 공과 사가 분명하고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내 덩치가 커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다이어트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마냥 좋은 것만 보인다고 하던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 좋은 건 좋은 거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는 식이다.


억지로 운동을 시키지는 않는다.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하지도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작은 것 하나까지 간섭해야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성인 부부라면 서로를 크게 걱정시키지 않는 선에서 자기 앞가림은 이전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했으니 그래도 된다는 논리로 상대에게 내 짐을 떠넘기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결혼 생활의 만족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 몸, 내 체형은 온전히 내가 관리하는 것이 맞다.


억지로 지켜야 하는 규칙은 없지만, 아내는 내가 비만이라는 걸 주 3회쯤 꾸준히 상기시킨다. 나는 음식 남기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내 그릇에 담긴 음식은 물론 꺼내 둔 밑반찬까지 전부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다 먹고 부푼 배를 두세 번 토닥거릴 때쯤 돼서야 이번에도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패턴을 옆에서 몇 번 지켜본 아내가 한참 먹고 있는 내게 신호를 준다.


"이제 그만 먹을까?"


물론 먹고 싶으면 더 먹어도 된다. 내 체형은 내가 관리하는 거니까. 하지만 아내의 이 말은 다이어트가 필요한 내 몸매를 떠올리게 만들고, 한 번 주춤거린 식욕은 다시 불붙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아내가 저렇게 말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아내는 음식을 천천히 먹는 편이다. 내가 성장기의 청소년처럼 씩씩한세로 그릇들을 싹싹 비우고 나면, TV를 보며 느긋하게 밥을 먹고 있던 아내가 놀란다. '뭐야, 다 먹었어?'하고. 그제야 나는 아내가 다 먹고 남긴 게 아니라 아직도 식사 중이었다는 걸 스치듯 깨닫는다. 결국 아내의 '이제 그만 먹을까?'라는 말은, '나 아직 먹고 있으니까 정신 차리고 천천히 좀 먹어'라는 견제의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이걸 알기까지 대략 석 달쯤 걸렸다. 요즘은 나도 나름대로 천천히, 양도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먹는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음식 줄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최근 축구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밤 9시부터 11시까지 온몸에 땀이 흐르도록 뛰고 온다. 열심히 운동하고 돌아와서 반드시 치르는 의식이 생겼다. 몸무게 재기. 체중이 76kg대로 줄어있다. 물 한 컵만 벌컥벌컥 들이켜도 금세 올라갈 몸무게 건만, 뿌듯한 기분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76kg대로 돌아왔어. 간단히 맥주 한 잔 해도 되겠지?"

"응. 더 뚱뚱해지려고?"


물론 마시고 싶으면 마셔도 된다. 내 체형은 내가 관리하는 거니까. 하지만 아내의 장난기 어린 이런 말은 내 몸무게가 76kg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78kg으로 '돌아갈'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거실 한편에서 다시 스쿼트 숫자를 올린다.


한편으론 억울한 게, 저렇게 말하는 아내는 살을 찌우고 싶어도 좀처럼 찌지 않는 체형이라 야식의 기쁨을 양껏 누린다는 것이다. 아내는 밤에도 빵, 만두, 냉면, 과자, 콜라, 아이스크림을 제 몸에 대한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다. 혼자 먹으면 정 없으니 옆에서 같이 먹어준 것뿐인데 나는 왜 먹은 것마다 살로 가는지 모를 노릇이다. 그러니 아내도 내 체형이 약간의 비만 성질을 띠게 된 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뭐, 아니면 말고.


얼마 전 직장동료에게서 비만도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기준이 우리나라 사람 체형과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키 크고 날씬한 서양인에게나 쓰이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니 멀쩡한 사람도 비만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나 정도 체형을 두고 비만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외모를 자본으로 치환하는 시대의 병든 기준이 나를 포함한 많은 선량한 체형을 옥죄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내 배는 전보다 눈에 띄게 통통해졌고, 지금 보니 자기주장도 꽤 강해진 것 같다. 예전엔 내 배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동서양의 체형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지금 기준 따라 꾸준히 관리하며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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