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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bblr May 28. 2024

직업

발리에서 만난 점성술사는 내 손금을 보고 8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분은 내 인생의 큰 행운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왜 ‘아 인생 피곤하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발리에서는 직업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공항에서 2시간 넘게 나를 기다렸던 뇨만씨는,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목공 예술가가 되려다가 정원사, 하우스매니저, 일본 관광객 담당 가이드, 영어권 관광객 담당 가이드를 거쳐 현재 여행가이드 사업을 운영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여정이 감탄스러웠던 이유는, 이 모든 직업이 마치 단계처럼 그 시기의 일에서 만난 사람들과 상황이 인연이 되어 다음 직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원사로 일했던 집의 일본인 부부가 자신의 집 전체 매니저를 맡기게 되었고, 그분들께 일본어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인 상대로 여행 가이드하게 된 식이었다. 이런 과정을 듣다 보니 마치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깨듯 자연스럽게 연결된 우주의 화살표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뇨만씨의 목소리에서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화살표를 믿고 따라가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8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왜 부담스러웠을까. 아마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미리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나도 이제까지 네다섯 지의 스테이지를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각의 변화의 시점에서는 사실 두려움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열망이 자연스럽게 더 컸고, 그 열망을 따르느라 두려움이 두려움인 줄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서너 개 직업을 더 거치더라도 그렇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여정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공유하게 될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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