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케맨 Aug 20. 2024

미신: 불안을 먹고사는 신

17주 차

임신 초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아내를 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봤다. 임신 초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불안과의 싸움'이었다. 미신, 그것은 불안을 먹고사는 신이 아닐까. 미신이 너무 많아서 세세하게 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기록하는 마음으로 나열해보려고 한다.


1. 육아용품을 사두면 삼신할머니가 아기가 있는 집인 줄 알고 그냥 가버리신다?

임신 전에 아내의 중학교 동창이 아기 신발을 선물해 줬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할 때쯤 위의 미신을 듣게 됐는데, 나는 순간 "설마?" 하고 놀랐지만, 아내는 웃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아기가 그 신발을 신고 찾아온다고 침대 머리맡에 두는 거란다. 아마 그래서 선물해 준 거겠지. 또 어디선가는 남자 쪽 머리맡에 둬야 아기가 그걸 신고 찾아온다나?.. 또 어디선가는 현관에 놔둬야 삼신할머니가 아 이 집은 아기를 기다리는구나 하고 가져다준다는데,,,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이야기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우리 아이는 집을 잘 찾아왔다.


2. 음식과 관련된 미신들
- 닭발을 먹으면 닭살 돋은 아이가 나온다?
- 오리고기를 먹으면 오리 물갈퀴처럼 손가락, 발가락이 붙어서 나온다?
- 오징어, 문어처럼 다리 많은 음식 먹지 마라?
- 임신인 줄 모르고 마신 술은 아기가 봐준다?
- 임신 중 콜라를 마시면 아기 피부가 까맣다?
- 임신하면 2인분 씩 먹어야 한다?
- 등등

임신에 관한 미신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음식일 거다. 이런저런 미신을 들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몇몇은 아마도 임산부에게 조심하라는 의미나 괜찮다는 의미로 생기지 않았나 싶다. 닭발, 오리고기, 오징어와 같은 이야기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술에 관한 이야기는 작정하고 임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이상 임신 사실을 모르고 종종 술을 마시게 되는 산모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테다. 아내 역시 도쿄 여행 당시 (우리는 이때 이미 아이가 찾아왔다고 추측한다.) 신나게 걷고 마셨더랬다. 콜라는 임산부가 당이나 카페인을 조심해야 하니까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한잔 정도는 괜찮다고 내가 마시라고 해도 아내는 그 좋아하는 콜라와 커피를 멀리한다. 모성애는 아빠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인 가보다.


나 역시 산모는 2인분 씩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책이나 인터넷으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아기는 필요한 영양분을 '알아서' '잘' 가져간다고 한다. 그리고 임신 전 산모가 적정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데, 과체중이면 임신 후 저체중인 여성보다는 살이 덜 찌는 게 좋긴 하지만 살이 많이 쪘다고, 임신 기간 중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아내도 임신 후 체중이 많이 불어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안정기가 되면 부부가 같이 산책도 하고 같이 움직여야 한다. 혼자 하면 안 하게 되니까 말이다.


3. 관계 시 특정 체위나 부모의 상태가 임신을 잘되게 한다? 성별을 결정한다?

아내는 이걸 꽤나 맹신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서 임신이 됐다며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관계 후에 바로 씻으면 안 된다거나, 심지어는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좋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그리고 육류를 많이 찾으면 아들이고 과일을 많이 먹으면 딸이라는 이야기. 남편이 피곤할 때 관계를 하면 딸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예비 딸바보 아빠로서 딸 가지는 방법을 알려드린다. 믿거나 말거나.


 - 배란일 2일 전 : 딸을 결정하는 X염색체가 아들을 결정하는 Y염색체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배란예정일 2-3일 전에 부부관계를 하면 확률이 올라간다.

  - 아빠가 피곤할 때: Y정자는 몸이 피곤할 때 활동이 둔해지고 X정자는 활발해진다

  - 엄마 몸을 따뜻하게: X염색체는 열에 강하고 Y염색체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관계 후 몸을 따뜻하게 해 주면 Y염색체가 소멸될 확률이 높아진다.

  - 얕게 : 질입구는 약산성을 띄고 있어서 질입구 가깝게 사정을 하면 산성에 약한 Y염색체의 활동이 줄어들고 X염색체의 활동이 활발해져 먼저 난자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딸일 확률이 높은 의학적인 방법은 단 하나.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는 것뿐이란다. 실제로 의료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딸이 많다고.. (근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딱히 과학적 근거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무지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외에도

피임약을 너무 오래 복용하면 임신이 안 된다? 남자가 삼각팬티보다 사각팬티를 입는 게 정자생산과 활동성에 긍정적이다? 임산부는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된다? 임신했을 때 다른 신생아를 보러 가면 안 된다? 임신 중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된다? 임신 중 네일이나 염색을 하면 안 된다? ••••


쓰다 보니 손이 아프다. 아무튼 이런 미신들이 재밌기도 하면서 신경 쓰이기도 하면서 그렇다. 우습지만 당사자가 되면 쉽사리 무시하기가 힘든 게 바로 미신이 가진 힘이다.

자궁 경부 길이도 좋고 주수에 맞게 건강히 잘 크고 있답니다.



큰 공주에게

임신 기간을 초기, 중기, 후기 이런 식으로 나눠 놓은 게 사실 임산부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엄마의 몸과 마음가짐은 10개월 내내 똑같으니까요.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에 고생 많았어요. 도움은 안 돼도 방해는 말아야지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ㅎㅎ  잘 먹는 게 보기 좋아요. 살쪄도 이쁘답니다~


작은 공주에게

엄마가 너를 위해 조심한 것들이 정말 많단다. 네일 지워지면 전쟁 나는 줄 알고 주기적으로 받던 네일도 안 받고, 새치 조금만 올라와도 뿌리염색하던 사람이 새치가 너무 많다며 자존감 떨어진다고 아빠 앞에서 펑펑 울면서도 염색 안 하던 고집쟁이 엄마였어.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 마음 편한 게 최고니까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건 토 달지 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까 나중에 엄마한테 '고마워~' '사랑해~'라고 많이 말해줘!

이전 09화 두구두구, 우리 아이의 성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