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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케맨 Jul 30. 2024

당근마켓과 베이비페어

15주 차

지난 주말에는 베이비페어에 다녀왔다. 그리고 요즘 우리의 주요 일과는 당근마켓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느낀 점은 육아는 장비빨이라는데, 그 장비는 한없이 저렴하게 (심지어는 나눔으로) 구할 수도 있고, 한없이 비싸게 구매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이것저것 갖추고 있다. 어쩌다 보니 신혼부부와 아이가 많은 동네에 살게 되어 당근마켓에서 육아용품 구하는 게 동네 작은 골목시장이 아니라 화개장터 수준이다. 볼거리가 많으니 그만큼 재밌다.


아내는 마치 여기가 동남아의 한 시장인 양 네고를 한다. 옆에서 나는 "아니 가격을 그렇게 깎는다고?" 하며 걱정을 하지만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거절당하면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식이다. 아내의 네고 실력이 대단한 건지 아이를 키우는 상대방의 넓은 아량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높은 타율을 보여준다. 그러면 나는 싱글벙글 차를 타고 거래 장소로 가서 물건을 가져온다. 한국은 참 좋은 나라다. 물건을 문 앞에 놔둘 테니까 가져가라는 식이라니. 내가 놀란 점은 낯선 사람에게 집주소를 말해주는 것과 돈을 받기도 전에 물건을 밖에 놔두는 것이다. 아니면 이것도 서로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는 연대감에 나오는 친절함일까. 당근을 자주 이용하진 않았어서 확신이 없다.


육아용품을 갖추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1. 새 제품을 사기, 2. 주변에서 받기, 3. 당근에서 사기. 운이 좋게도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지인과 가족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받았다. 아이를 낳는 것도 다 때가 있다고 젊을 때 나아서 키워야 편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여기서 말한 '때'는 부부의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아이를 많이 키울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이 감사한 시대다. 예전에는 육아를 도와줄 방법이 대를 이어 내려오거나 가까운 지인과 동네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해진 것 같다. 밀도는 예전 같지 않을지라도 시간적, 공간적 제약은 사라졌다. 아직 내가 육아의 매운 맛이나 소위 못된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면식 없는 당근마켓 판매자조차도 나의 육아를 도와주고, 인터넷과 책을 통해 전문 지식도 쉽게 접근 가능하고, 이것저것 나서서 챙겨주는 주변 사람들까지 온 세상이 나를 돕는 기분이다. 우리 아이가 생기니 거리마다 아이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지금 내 마음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충만해서 염세적인 마음이 차지할 틈이 없다.


다시 베이비페어로 돌아오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를 키우는데 이렇게 다양한 물건이 필요하다니. 가장 중요한 카시트와 유모차 쪽을 자세히 봤는데,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다. 비싸보여 망설여질 때면 우리 아이를 위해서 이 정도쯤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튼튼하고, 효율적이고, 편해 보인다. 그러니 꼭 최근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과 같이 가기를 권한다. 옆에서 아주 논리적으로 잘 말려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많은 곳에서는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산모에게 친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뉴스에서 빈번하게 다루는 아이 학대 사건이나 아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험이 너무나 잦다. 눈에 잘 보이게 임산부 배지를 달고 배도 불러와 있는 아내가 버스를 탔는데, 급 출발하여 넘어질 뻔한 이야기.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본체만체하는 이야기. 임산부 마미콜을 불러 탄 택시에서 천천히 가 달라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위험하게 운전하던 택시 기사 이야기. 조금 더 아이와 산모에게 친절한 사회가 되어주면 좋겠다. 출산 장려를 위한 많은 정책과 지원 제도가 나오고 있지만, 그만큼이나 배려하는 사회가 더 절실하지 않을까.


인식이라는 것은 생각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요즘 젊은 층의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 낳아 키우기 어려운 사회라는 인식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지고 보니 세상이 생각처럼 '헬조선'은 아니다. '헬'이 맞지만 내가 온 세상을 아름답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더운 여름에 일도 힘들고, 걱정하려면 한없이 걱정거리가 많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즐거운 것은 우리 아이와 아내 덕분이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 가기 전에 나만의 습관이라면 계획 같은 것은 짜지 않고, 여행지와 관련된 책과 영화를 보고 간다. 그중에 좋아하는 책은 역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이다. 거기서 읽고는 너무 좋아 인생의 나침반이 된 문장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여행에도 적용되지만 인생에도 딱 들어맞는 문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이 여행이라 그런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보면서 나 먼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따스하게 사람들을 대하기로 했다. 항상 감사하고고 배려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러면 우리 아이에게도 조금은 좋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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