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주 차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힘차게 시작했던 출산일기다. 하지만 요즘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쉽게 글을 시작하지 못하겠다. 매일매일 행복한 게 사실인데,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서 글감이 없는 걸까. 안정기에 접어들어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시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예고도 없이 복잡한 감정이 몰아친다. 아내에게 내색하지는 않고 있다. 아내도 그런 게 아닐까. 내 감정이 전염되지는 않을까. 괜히 나 때문에 심신 안정을 해칠까 걱정되는 탓이다.
이 불안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 너무 많이 찾아본 탓일까. 생명이 원래는 굉장히 무겁고 귀하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걸까. 처음에는 마냥 신나고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아내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고, 살아 있는 생명이 뱃속을 요동치면 이제 나조차도 그걸 느낄 수 있다. 아내는 몸이 무거워지니 부쩍 힘들어하는 게 느껴진다. 지나온 시간이 더 긴데, 출산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하게 느껴진다.
건강히 잘 태어나줄까. 아내는 아프지 않을까. 벌써부터 이렇게 걱정인데, 낳아 기르면서 이 험난한 세상에 초보 부모가 우리 사랑스러운 딸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뛰어놀다가 무릎이라도 까지면 가슴이 철렁할 것 같은데, 나가서 아이들과 싸우면? 왕따를 당하면? 못된 짓을 하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기분이 잠식되어 불안한 감정이 불청객처럼 찾아왔나 보다.
기쁨은 한계효용이 있다. 매주 로또에 당첨되면 매주 기쁠까. 돈이 끝이 없다면 무한히 좋은가. 반면에 매주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면 슬픔이 없어질까. 슬픔에는 한계가 없다. 세상 논리가 무 자르듯이 정확하고 명료하다면 좋을까. 뉴스를 보면 댓글부터 보는 습관이 생겼다. 기사는 읽지 않아도 된다. 정보를 찾기 위한 검색이 아니라면 사회면은 헤드라인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튼 양쪽이 싸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가자지구의 젊은 청년이 불에 타 죽었다. 댓글에는 전쟁과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게 1년 전 음악 축제를 즐기던 무고한 이스라엘 청년들을 학살하고 납치, 강간했느냐며 인과응보와 자업자득을 외치는 이들도 많다. 무엇이 맞을까. 죽은 가자지구 청년은 하마스 대원인가. 그가 하마스 대원이었을 거라거나 하마스가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글들도 보인다. 죽은 청년이 1년 전 이스라엘에 침투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했는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떤 뉴스는 여와 야로 어떤 뉴스는 남이냐 북이냐 아니면 미국이냐 중국이냐 그깟 이념 따위로 그깟 종교 따위로 그깟 돈 따위로 누가 잘했니 못했니 바쁘다. 정말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둠은 끝이 없다. 불안은 끝이 없다. 슬픔은 끝이 없다.
뉴스를 그만 봐야겠다. 안 좋은 글도 그만 봐야겠다. 우리는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게 아닐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마치 불행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서운 건 나에게도 일어날 것만 같아서 슬픔이 전염된다는 점이다. 나는 타인의 슬픔으로 내 인생이 더 낫다는 위안을 받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아내 역시 요즘 부쩍 온라인상의 글을 많이 찾아본다. 임신은 처음이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사람들 글을 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와 유용한 정보들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너무나 좋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시대다 보니 장점만 쏙쏙 빼가기는 어렵다. 똑똑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내는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