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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왓피 Jun 01. 2021

03. 태명이 필요한 이유

우리 부부는 사물에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한다.

집에 새로운 물건이 생기면 항상 이름을 붙여준다.

그렇다고 그럴듯한 멋진 이름을 짓는 작명 센스는 영~~ 없는 편이라 모든지 직관적인 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 집 로봇청소기 이름은 깨끗이다. 외출하기 전 항상 AI에게 ‘오케이 구글, 깨끗이 시작해줘!’ 하고 나가면 AI가 ‘깨끗이를 시작할게요~’라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게 좋다.


아이가 오기 전에 어떻게든 가사를 줄여 보겠다고 식기세척기를 장만했다. 당연히 식기세척기에도 이름이 붙었다.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려면 이 녀석도 ‘깨끗이’라는 이름이 매우 잘 어울리지만, 이미 로봇청소기에게 주어진 이름이라 다른 이름이 필요했다. ‘세척이’는 너무 발음이 세니깐 이번엔 영어식 느낌으로 ‘척’ 어때? 라며 내가 물었다. 신랑은 맘에 든다며, 그다음부터는 식세기를 돌리기 전, ‘Hey, Chuck! R U ready?’ 라며 전원 버튼을 누른다.


하찮은 미물에게도 이름을 붙여주는데, 결혼 십 년 만에 생긴 아기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태명을 말했을 때 2차적인 뜻을 묻지 않을 직관적인 이름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태명에 여러 의미를 담아 예쁘게 짓던데, 고심해서 짓게 되면 꼭 문제가 태명의 뜻이 뭐냐고 한번 더 묻게 되기 때문이다.


팀원 하나는 애기 태명이 슈슈였다. 발음도 귀엽지만 뜻은 더 대단하다. 애기를 갖기로 마음먹고 바로 아이가 생기는 마법을 보게 되어 슈퍼 정자와 슈퍼 난자의 만남이란 뜻에서 슈슈라고 지었다고 했다.


또 다른 팀원은 태명 짓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손발이 오그라들어 태명을 아예 짓지 않았다고 했다. 아가라고 부르고 태명이 없는 것도 나름 신박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은 있다.


육아 선배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출생 시와 산후 조리원까지는 아이가 태명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당연히 산모 역시 태명과 함께 어머님 호칭을 붙인단다. ‘슈슈 어머님, 슈슈 모유 시간입니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된다고 한다.


당연히 태명이 없던 팀원의 아기는 역으로 엄마 이름을 기준으로 불렸다고 한다. 신생아 침대에 다른 아이들은 태명이 써져 있는데, 그 팀원의 아들만 ‘김영희 산모님의 아이’라고 써져있었단다.


우리 아기가 이름이 없는 건 싫어서 태명은 짓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스타일대로 간단명료하고 직관적인 이름으로 말이다.


아기가 생겨 우리 부부가 행복하듯이 우리 아기도 늘 뱃속에서 즐거운 생각 하며 280일을 지내다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행복이’라고 지었다.


사람은 이름대로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뱃속에서 행복아~~ 라는 말은 적어도 만 번은 듣고 나올 테니, 우리 아기의 삶도 태명처럼 늘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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