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라는 섬 13

by 시인 화가 김낙필






"그리고 선생님을 뵈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치는 날 나고야 소재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개인 변호사에게 써놓은 유언장을 공개해 주면서 한국에 있는 선생님을 거론하셨대요"
"엄마의 유언장에는 현금성 자산 5억 엔 정도의 재산은 딸인 나 수연에게 상속하고 나고야 외곽 자택은 선생님께 드리라는 유언장에 서명을 해 놓으셨대요"
"그동안 제 신변의 잡다한 중요한 일 때문에 미루고 지내다가 엄마의 꿈 때문에 이젠 늦출 일 아님을 깨달았어요"
시완이 물었다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재산을 주시는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ᆢ 엄만 이미 돌아가셨으니 여쭤볼 수도 없고 선생님과 엄마 사이에 어떤 언약 같은 거라도 있으셨는지는 두 분이 더 잘 아시겠지요"
"조만간 한국어에 능통한 재일교포 변호사 한분이 선생님을 찾아 서울 자택으로 방문하실 거예요"
"혹시 전화가 오면 이상한 전화라고 끊지 마시고 그분과 만나 상의해서 상속 절차를 마무리해주시면 될 거예요"
"저도 이쪽은 제 소관이 아니라서 변호사의 자문애 따를 뿐 지금은 어떤 조언도 해드릴 수가 없네요"
"지금은 유언장에 근거한 법적 절차에 따르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돌아가신 엄마의 유언이시니 그 뜻대로 따라주시길 저는 바랄 뿐입니다"
"저는 엄마가 집안에 선생님의 그림이랑 문학 서적들이 있는 공간을 그대로 유지해 두고 싶으셔서 그런 생각을 하신 게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 볼 뿐입니다"
"언젠가 방학 때 엄마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순천만 갈대 습지를 함께 걸은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가 말했어요
선생님께서 이 길을 홀로 걸어가는 사진을 블로그에서 봤다고요"
"너무 가슴에 와닿아 가끔씩 그 사진을 봐 왔다고 했어요"
"그래서 선생님 사진과 같은 지점에서 엄마와 내가 셀카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어요ᆢ"
......
삼 년이 지난 후 수연은 나사를 퇴직하고 도쿄에 있는 동종 관련 업체로 이직을 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종종 국제전화로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엄마와 자기 집이었던(지금은 내 소유가 된) 나고야 집을 지금은 자주 왕래하게 됐다
도쿄에서 거리가 멀었지만 별일 없으면 늘 국내선 비행기로 주말이면 그렇게 쉬엄쉬엄 그 집을 드나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한 금요일 저녁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 비행기를 이용해 도쿄 자기 거처로 돌아가곤 한다
엄마의 살아생전 거처였으니 내 소유가 된 집일지라도 오지 말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수연과 엄마 연수가 살아왔던 집이었으니까 그에게는 잊을 수없는 정든 집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후로는 일 년에 반은 나고야 집에서 머물고 반은 서울 집에 머물렀다
나고야는 가을과 겨울철에 주로 머물렀다
도시 외곽이라 단풍이 아름다웠고 눈이 온 겨울 풍광이 더욱 아름답고 수려했다
나는 나고야 집에서 수연과 연수를 늘 볼 수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나와 연수는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고야 집주소
"2769-30 HIROMI KANI-SHI GIFU"에 오시면 주말에 수연만 오롯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수연만 알지요...




나 죽거든 슬퍼 마시오
이만큼 산 것도 축복이니 절대 서러울 일 아니오
묘비도 필요 없고 봉분도 물론 필요 없오
그냥 훌훌 태워서 '다불리'
개망초 언덕 바람 부는 쪽으로 뿌려주시오
이까짓 변방 촌부를 누가 기억하기나 하겠소
뒷전으로 한 세상 슬며시 왔다가는 가랑잎 같은 신세였으니 기억조차 있을 리 없오
더들 재밌게 놀다 천천히들 오시오
슬퍼도 말고 추억도 말고
그냥 낙엽 태우듯 태워서
바람결에 훨훨 날려 버리면 되나이다
들녘 바람이나 돼야지요
행여 다시 만나면 질펀하게 새로 한번 놀아 봅시다
나를 기억할 땐 나쁜 것만 기억하시오
그래야 쉽게 잊지 않겠소
나 죽으면 슬퍼 마시고 잘 갔다고 손뼉 쳐 주시길 바라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