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시완'은 이천 십구 년 구월 삼일 공삼 시 이십구 분에 지병인 동맥경화로 자택에서 수면 중에 숨을 거뒀다
그래서 내 혼령은 아내의 숨겨진 애인도 봤고 애인의 또 다른 애인도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의 분골은 태안반도 서해 앞바다에 뿌려지길 원했으나 이름 없는 충주호 산자락에 뿌려져 바람으로 스러졌다
비밀의 문이 열려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을 시작했다
보기 싫은 것도 다 보이기 때문에 세상 더러운 것은 다 봐야 하는 일이 고달프다
물론 아름다운 것들도 함께 본다
아내와 자식들과 형제들과 친구들의 今世를 보자니 더러 안타까울 때가 많다
딴살림을 해온 아내와 딴 애인을 둔 애인이 요지경 속에서 사는 모습도 신기하고
흥미롭다
영혼의 세상은 한없이 지루하고 무료하다
영혼의 세상은 오로라가 흐르는 저편 차가운 시공 어디쯤에 존재한다
어제는 염라에게 끌려가 호되게 욕먹고 중형 17년형을 받았다
요단강 수문지기로 17년을 복무해야 한다
저승은 밥은 안 먹어도 되고 말도 안 해서 좋고 잘 곳 없어도 되니 만사 걱정은 없다
휴무날 세상 내려다보고 그 세상 속 주말 드라마 보는 게 낙이다
죽어보니 세상 한없이 편하다
의식주가 필요 없고 욕정마저 없으니 무료하고 심심할 밖에 없다
죽어보니 알겠다 이승의 세상살이가 그래도 좋았다는 것을ᆢ
내가 도착한 곳은 외계 중간 세상이다
저승 가는 길은 요단강을 꼭 건넌다고 했는데 그런 강을
건넌 적이 없다
여기는 그냥 이승과 꼭 닮은 또 다른 세상이다
다만 사람들에게 내 존재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혼령임에 틀림없다
저승을 가다가 멈춘 중간계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길을 가다 보면 나와 비슷한 영혼들을 가끔 본다
우리는 그냥 본 척 만 척 스쳐 지나간다
자기만의 영역이 주어져 있어서
다른 영혼의 영역에는 관여하지도 참여하지도 않는 것이 우리들의 불문율이다
좋은 점은 언제든 시공을 마음대로 자유 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지구별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음 주 18일에는 '몽블랑'에서 '아츠코'를 만나기로 했다
만나서 우린 또 다른 세상으로의 8박 9일 여행 일정을 떠날 것이다
당신의 먼 섬은 아주 멀고도 가까운 섬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수연과 나와 연수는 서로를 늘 지켜볼 것이다
웬일인지ᆢ'몽블랑' 전망대에서 우리가 만나 나란히 찍은 사진 속에는 흩날리는
눈발과 차디찬 알프스 산 풍경만 공허하게 남겨져 있을 뿐
우리의 모습은 자취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갔습니다
저 언덕 넘어 노을 속으로 가버렸습니다
아침이 오면 슬픈 새의 소리뿐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떠나버렸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히고
사랑은 사랑으로 이별합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인연들을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내가 당신을 잊고 있는 동안 당신은 나를 위해 기도하였고
당신이 나를 잊고 있는 동안 나는 당신 닮은 꽃을 심었습니다
바람 부는 날엔 어쩔 수 없습니다
꽃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사랑이 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사랑은 갔습니다
그래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그래서 한결 가벼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