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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 Dec 08. 2023

2. 우리가 살아서 이 산을 내려갈 수 있을까?

동생이 건강이 좋아지자 동생은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6학년이었던 동생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죠. 1988년 2월 28일, 교회에선 중등부 신입생 환영회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중등부 신입생 환영회 프로그램으로는 겨울 덕유산 등반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지역에서 두 시간쯤 차를 타고 가면 무주 덕유산이라는 산이 나옵니다. 해발 1600여 미터의 꽤 높은 산이었습니다. 중등부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과 재학생 78여 명, 선생님 8명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관광차 2대에 나눠 타고, 2시간을 달린 끝에 덕유산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시간이 정오 정도였는데, 덕유산 등반 전 식사를 하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눈싸움을 편을 나누어하는 동안 시간은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밥 먹는 것보다 눈싸움에 더 관심이 있어, 식사도 하지 않은 채 눈싸움만 했던 학생들이 꽤 되었습니다.


높은 산을 , 그것도 겨울 산을 등반하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부장 선생님은 여기까지 왔으니 등반을 하고 가야지 않겠냐며 등반을 강행했습니다.

부장선생님은 등산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여러 번 덕유산 등반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며, 아이들에게 덕유산을 등반 장소로 소개하신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겨울산도, 덕유산도 처음이었지만, 그분 말씀만 믿고, 86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덕유산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올라가다가 내려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중등부 학생들은 그저 신나는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동생은 중등부 신입생으로 신입생 환영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2학년에 올라가기 때문에 중등부 재학생으로 동생과 함께 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산에 오르기 며칠 전, 큰 눈이 내려 산엔 눈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당시 완등까지 할 줄은 모르고 저와 동생은 (한창 사춘기 때라) 두꺼운 점퍼는 둔하기도 하고, 뚱뚱해 보일 것 같아 봄 점퍼 같은 얇은 옷을 입고 갔었습니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덕유산은 생각보다 넓고, 높았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허벅지까지 푹푹 빠졌습니다. 깊은 눈으로 인해 바지가 젖고, 점퍼까지 축축해졌습니다. 장갑도 없었고, 운동화도 얇은 천 운동화라 금방 젖었습니다. 손과 발이 금방이라도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겨울산은 금방 추워지고 어두워졌습니다. 4-5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이미 지치고, 날은 어둑어둑 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이끄시던 부장 선생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학생들 인원이 많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2~3팀으로 뿔뿔이 나뉘어 오르게 된 것 같았습니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도 잘 몰랐지만, 일행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기에, 그냥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 이어 었습니다. 우리 중엔 축구나 운동을 잘하는 남학생들도 많았지만,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겨울 산을 오르는 것은 여간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학생들이고 등반은 처음이라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신발이나 로프 같은 등산 장비도 없이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고 위험 했습니다.  

처음엔 선생님들이나 부장 선생님께서 보이지 않아 그냥 앞으로 걸었는데, 나중엔 선생님들도 길을 모르시는 것 같아 계속 앞으로 걸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까. 이 추운 날씨에 가만히 있다간 동사할 수 있으니까

덕유산 설경


어느덧 시간이 저녁 7시를 넘었습니다. 86명의 인원들이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제 주위엔 10여 명의 학생들 밖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은 깜깜했고, 하얀 눈들이 깊은 곳은 허리까지 푹푹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중3 언니, 오빠들이 우리가 발걸음을 멈추면 추위로 인해 죽을 수 있다며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케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이제 막 중1이 되려고 하는 신입생 아이들은 진이 다 빠져 움직 일 수 없는 아이들이 생겨 나기 시작했습니다. 추위와 피로로 인해 쓰러지는 아이들도 발생했고,  아이들을 억지로라도 끌고 가려는 중3 언니 오빠들을 피해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쉬다가 졸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겨울 산에서 잠이 든다는 것은 곧 동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조금이라도 건강이 괜찮은 학생들은 자려고 하는 학생들을 깨우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들은 끝에서 낙오하는 학생들을 업거나 부축하여 올라오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분들 중 일부는  겉옷도 모두 추위에 떨고 있는 학생들에게 벗어주어 내복만 입고 계신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기막힌 현실에 눈물만 흘러내렸습니다. 호기롭게 덕유산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던 부장 선생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길을 잃어 그 넓은 산을 헤매는 85명의 조난자들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곧 암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모두가 동사하더라도 아무도 구하러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슬펐습니다. 지금 모두가 쓰러져 동사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이었습니다.여기 저기서 살려달라는 학생들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발에 감각이 없다며, 집에 갈수는 있는 거냐며 친구들은 울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잠이 든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 환자를 도와 달라는 소리, 울먹이는 소리가 섞여 여기가 살아있는 지옥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눈을 감으면 저와 제 동생이 관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뒤엔 관을 따라가면 서 울고 계신 우리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아, 이렇게 우리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건가...'







그때 중등부 학생들을 말씀으로 교육하시는 전도사님께서 학생들과 교사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몰라 계속 전진만 하던 우리에게 무언가 결단이 필요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당시엔 휴대폰도 없을 때라, 우리의 조난당함을 어디에 신고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가야 할 길을 잃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분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 19-20



우리는 하나님께 이 상황을 말씀드리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온 산이 떠나가도록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려갈 수 있을지, 이미 여기저기에 환자들이 생기는데,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내려갈 수 있을지, 정말 막막했습니다.

눈 쌓인 곳에 발을 헛디뎌 다리 골절이 의심되는 학생, 추위와 체력 고갈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린 학생, 열이 펄펄 끓는 학생, 동상으로 힘들어 하는 학생 들이 속출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저녁 9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은 바로 그때, 갑자기 깜깜하던 하늘에서 구름이 가리고 있던 달빛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동그란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보름달만큼이나 밝은 빛이 우리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달빛은 눈으로 덮인 산을 비추어 주어, 하얀 눈으로 인해 주변이 더욱 환하게 빛났습니다.


우리는 달빛으로 인해 더욱 힘을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을 하나님을 믿으며,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달빛으로 인해 우리 주변의 지형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골짜기,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자.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반드시 마을이 있을 거야"


그분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골짜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까지 체력이 남아 있는 선발대 2~3명을 뽑아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미끄러운 산 중턱을 한 발 한 발 내려오며 골짜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내려오는 길 또한 위험천만했는데, 하얀 눈에 가리어져 급경사 낭떠러지로 빠지는 길로 헛디디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또래 중에 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평소 너무 키가 작고 왜소하여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급경사에 20미터가량 미끄러지던 중 나뭇가지와 풀 등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훗날 그  아이는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간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며 감사했습니다. 그가 만약 키도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갔다면 나뭇가지와 풀이 그의 몸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시 일행이 있는 곳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눈 밑엔 얼어붙은 바위들이 있어 미끄럽고 위험한 길을 한발, 한발 내려오며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티셔츠에 봄 점퍼같이 얇은 옷만 입고 간 우리 자매는 더 이상 추위에 버틸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동생은 중환자에서 나은지 얼마 되지 않는, 아직 체력이 약한 아이였습니다.  동생은 손과 발에 생긴 동상으로 힘들어했고,  선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정신을 잃은, 혹은 체력이 소진된 학생들을 번갈아 가며 업고 내려오시느라 젖 먹던 힘까지 내셔야 했습니다.   


드디어 선발대 중 한 명이 "여기 골짜기가 있다. 우릴 따라 내려와!"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가 밤 12시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조심조심 골짜리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산이 워낙 높았기에 산을 내려오는 데도 2~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학생 환자들이 여럿 있어, 그 학생들부터 데리고 내려가고, 마을로 내려갔던 선발대 들은 마을에서 전화로 경찰에 조난 신고를 하였습니다.


늦도록 학생들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부모님들 또한 경찰에 신고를 하셨다고 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근 군부대가 덕유산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이 워낙 넓어 조난당한 우리를 찾지 못하다가, 먼저 내려간 선발대를 발견하여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와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내려오지 못한 학생들을 업거나 부축하여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86명이나 되는 이들은 이렇게 새벽 4~5시쯤 전원이 하산하여 아래 대기 하고 있던 군인 버스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그분 들이 준비해 주신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하루를 온종일 굶은 친구들이 상당히 있어 우리에게 컵라면은 세상 그 어느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꿀맛과 같았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고, 나머지 친구들은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국 뉴스에도 나왔던 유명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제 동생 역시 병원으로 실려 갔던 학생들 중 한 명이라 뉴스에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겨울 덕유산에서 살아서 내려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무모한 등반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 까지도 선한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전문가도 꺼린다는 겨울 덕유산 등반을, 이제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이들과 중학생들, 비 전문가들이 오후 2시 넘어서 등반하게 된 사건은 누가 봐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에 충분했습니다.

잘못된 장소 선택과 준비의 부족, 겨울의 추운 날씨, 그리고 그 넓은 산에서의 조난과 고립 등  여러 잘못된  환경이 우리를 겹겹이 싸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후 우리 중등부는 더욱 끈끈한 동기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환경에서 서로를 위해 자신의 아픔도 참아가며  약한 학생들을 도와 부축하고 내려왔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겉옷까지 모두 학생들을 위해 벗어주시고, 자신들도 에너지가 바닥나 지쳤을 몸으로 학생들을 업고 내려오시기까지 하셨던  예수님을 닮은 선생님들의 섬김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자칫 최악의 신입생 환영회가 될 뻔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하심을 경험하고, 선생님들과 동기들의 섬김과 헌신을 경험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

다른 말로 "하나님을 찾을 시간"입니다.






 사진 출처: 국립공원공단 경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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