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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 Jan 26. 2024

8. 가족들이 모두 떠나다 1

부모님의 인생 2막 - 미얀마 

*** 최근 2~3주 동안 어려움이 있어 마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를 마음으로 걱정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작가님들의 정성 어린 댓글과 기도에 큰 힘을 얻습니다. 또한 가지고 있던 문제들도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더 선한길로 인도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지면을 통해 글로 함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작가님들께 감사드리며, 늘 주안에서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



저희 친정아버지는 목사님이십니다. 평생 가난했지만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시려고 애쓰셨던 아버지 이셨고, 정말 본받고 싶은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교회 개척을 하셨습니다. 아파트 상가를 얻어 아직 인테리어도 안되었을 때부터 시멘트 바닥에 은박 돗자리 하나 가져다 놓으시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시며 늘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 세 딸은 부모님과 함께 인근 아파트로 나가 전도지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전도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와 주택에 음료와 함께 전도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교회 개척 후 약 3년 동안은 거의 주말도 없이 전도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힘들고 고단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성도님들도 많아지고, 지역에선 젊은이들이 많은 행복한 교회로 소문이 났습니다. 저도 남편과 함께 교회에서 차량 봉사도 하고, 찬양대도 하고, 청년부 지도도 하며 한창 신앙생활을 재밌게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2004년 어느 날,  미얀마로 해외봉사, 비전트립을 여러 번 다녀오셨던 아버지께서 주일날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 제가 미얀마라는 나라를 여러 번 다녀오면서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면 좋겠다는 꿈을  주셨습니다. 저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그 일을 실천해 보고 싶습니다. 제 아내나 아이들과 의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오랫동안 기도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를 미얀마로 보내주십시오. 한국은 목회자들이 넘쳐 나고 있지만, 그곳엔 목자 잃은 양과 같은 수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저를 보내 주시면, 남은 인생, 선교하며 복음 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말씀에, 저와 가족들은 너무도 기가 막히고, 놀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엄마께서도 많이 놀라시고 걱정하시고, 힘들어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의논 한마디 없이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미얀마로 가겠다고 선언하시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저야 일찍 결혼을 했지만, 아직 동생들은 대학 졸업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엄마 역시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가 58세 셨습니다. 


아직 한창 한국에서도, 아버지로서도 해야 할 일이 많으셨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셨습니다. 교회는 지역 노회에 말씀드려 새로운 목사님을 보내주십사 부탁을 드려 놓았습니다. 얼마 후 노회에서 파견해 주신 새로운 목사님이 오시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셔서 미얀마로 들어가게 되셨습니다. 인생 2막으로 선교사의 삶을 사시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미얀마에 대한 정보도, 아는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국민 90%가 버마족이며 국민 대부분이 불교인 나라, 군 부 ㄷ ㅗ ㄱ ㅈ ㅐ의 나라 정도로만 알고 가셨을 뿐이었습니다. 막상 가 보니,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고, 모든 것이 다 느리고, 외국인은 무엇 하나 허가를 받기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물도, 음식도 적응 안 되는 그곳에서 복음 그 하나의 이유로 모든 것을 견디며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벌써 20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작고 가냘픈 체구로 현지인 신학교를 짓게 하시고, 고아원과 어린이집, 여러 교회를 짓고, 많은 우물을 파서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방과 후 교실, NGO기관 연계를 통해 가난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곳에서 배운 신앙생활과 장학금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일부는 다시 고아원으로 와서 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현지인 사역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아버지는 미얀마에 한국인 선교사들이 늘어나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학교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버지는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들을 묵묵히 수행하셨습니다. 

교회들을 세우고, 병원을 세워 운영하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현지인 사역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작은 교회엔 돼지나 닭 같은 가축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몇 년간 빈민촌을 돌보다가 한 마을 전체가 주님께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부끄럽지만 저희 부모님은 인간적으로 보면 연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버지는 보통 키에 48Kg, 어머니는 39Kg의 왜소한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가지고 계신 지병은 없지만, 미얀마에 가셔서 말라리아, 뎅기열로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도 넘기셨습니다. 의료시설도 온전치 않은 그곳에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몸으로 하나님이 그때그때 보내주시는 동역자들과 함께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인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20년 전 미얀마에 가겠다고 하셨을 땐 사람들이 모두 말렸습니다. 왜 이제야 안정을 찾은 교회를 놔두고 그 고생스러운 곳에 가서 또 고생을 하려느냐고. 자녀들도 모두 결혼시켜야 하고, 이젠 손주들 보며 남은 인생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백이면 백 모두 말렸습니다. 

저희 자녀들도 부모님이 가시지 못하게 얼마나 간곡하게 부탁드렸는지 모릅니다. 


예배드리는 수상 마을 어린이, 청소년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그 열악한 곳으로 가시기로 했던 아버지의 선택이 지금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은 이들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때론 우리의 믿음의 선택이 많은 이들의 만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좋은 선택을 했으나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묵묵히 순종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생각지 못했던 많은 열매를 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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