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치킨 먹고 싶다고!"
"그럼 배달시켜"
"오래 걸리니까 나가서 사와!"
"지금이 몇 신데 나갔다 오라는 거야! 그리고 먹고 싶은 사람이 사러 가야지. 겨울에 여자 친구한테 치킨 셔틀시키는 거야?"
씩씩거리며 눈을 부라리던 승민은 은지를 향해 다가오더니 그녀가 베고 있던 베개를 발로 차 버렸다. 은지는 누워서 TV를 보던 중에 깜짝 놀라서 일어나 앉았다.
" 지금 뭐 하는 거야?"
" 뭐!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 왜 누워있어. 잘 시간도 안 됐잖아! "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왜 발로 차냐고!"
" 말했잖아. 가는 길에 있어서 발에 걸린 거라고!"
은지는 요즘 회사일로 한참 예민했던 승민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의 말들을 삼켜버렸다. 상견례도 마친 마당에 싸워서 어쩌자는 거야. 또 한 달은 삐쳐서 말 안 하고 지낼 것이 분명한데. 그냥 무시하자. 나를 위해서. 다음번에는 안 그러겠지.
이사날짜도 다가오고 모처럼 승민이와 시간이 맞아서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2월이 되니 날이 풀려서 걷기 좋은 날이었다.
"오늘 가전제품 보러 S플라자에 가려고."
"뭐? 인터넷으로 싸게 살 수 있는데 쓸데없이 왜 비싼 돈 주고 매장에서 사는데. 난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인터넷으로 사면 가짜도 있고 반품된 것도 섞여 있어서 얼마 쓰지도 못하고 반품하는 경우도 많아. 그리고 혼수 가전인데 직접 보고 사고 싶어."
"너를 누가 말리겠어! 니 멋대로 해라. 하여튼 돈 아까운 줄 몰라요!!"
"너는 돈이 제일 중요하구나. 필요한 데 쓰려고 돈 버는 거잖아!"
"이렇게 헤프게 쓰니 우리는 수도권에서는 못 살겠다. 지방에 가서 살아야겠네."
"혼자 결정하지 마라. 그리고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오니?"
"왜! 또 니 맘대로 하려고! 결혼하면 지방에 가기로 했잖아."
"우리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데. 내가 너 비서가 되는 기분이 들어."
"뭐야! 이제는 결혼하기 싫다는 거야. 으이구 씨!"
승민은 그때의 그 화난 눈빛을 번쩍거리며 은지에게 달려왔다. 그러더니 그녀를 넘어뜨리고 두 손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은지는 힘껏 조여 오는 힘에 눌려 숨구멍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또각거리며 지나가는 발소리들이 지나가는 자동차소리에 섞여서 들려왔다. 하지만 은지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승민이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데이트폭력이 심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인가 보다.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눈을 떠보니 곁에는 아무도 없고 혹시 잃어버릴까 단단히 메고 있던 크로스 가방의 키링이 먼저 손에 닿았다. 고릴라야 넌 다 봤지? 승민이가 진짜 나한테 그런 거 맞니? 지난여름 여행 가기 전에 사서 늘 메고 다니던 가방이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승민이가 달라진 것 같다. 다리가 후들거려 겨우 일어나서 근처 벤치에 앉았다. 거울을 꺼내어 목을 비춰보았다. 붉은 손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눈물이 흘러서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승민아 너 진짜 왜 그래...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결혼을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청첩장도 다 돌렸고 전세 계약도 마친 상태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프로젝트 처리하듯이 기한에 맞춰서 다 준비를 해 두었을까. 정말 이대로 결혼해도 될까. 무섭고 두렵다.
띠리리리
승민이다.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전화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