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 장사 없다
벌써 다음 주로 다가왔네.
이번 주말에는 책 읽기를 시작하자!! 꼭!
독서모임에서 한강작가 수상 소식을 듣고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회원들과 얘기해 본 끝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선정했다. 은지는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어두운 소설 분위기와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불합리한 점에 대해서는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한강 작가의 책을 멀리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함께 눈발 날리는 제주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펴면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 덮인 섬을 걸었고 책을 덮고 나면 눈보라의 싸늘한 기운에 코끝이 시렸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력이 좋을까. 신형철 교수님이 추천사를 쓰신 이유가 있었다.
읽다 보니 어느새 글자들이 겹쳐 보인다. 낱낱의 글자들이 구분이 되지 않고 마치 검은 점을 어지럽게 뿌려놓은 듯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디 있더라.
안경을 꺼내어 쓰니 마치 큰 글자 책을 읽는 듯 시야가 환해지고 글자들이 바르게 정돈되어 있다.
그래. 이제는 안경을 써야 할 나이지.
이렇게 쓰다가 시력이 나빠지면 도수를 넣어서 안경을 다시 만들면 됩니다.
눈동자 위치 확인할게요. 이 안경 써 보세요. 편하신가요?
가까이에 있는 글자를 보세요. 이번엔 멀리 있는 글자를 읽으세요.
안경테는 어떤 걸로 할까요? 귀 높이가 다르시네요. 맞춰드릴게요.
건강 검진을 마친 뒤 병원 앞에 있는 안경점에 들렀더니 병원 협찬 안경점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사장님이 친절했다. 40대가 되니 한해 한 해가 다르네. 눈도 나빠지고. 책을 덜 읽어야 하나.
며칠 동안 봄날과 연락하며 전남친을 떠올리고 괜히 맘이 뒤숭숭해져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은지는 휴일이지만 하루 종일 눈보라가 날리는 제주 배경의 소설을 읽고 주인공의 고민에 빠져들다 보니 덩달아 맘이 차분해지고 조금 우울하기까지 했다.
당이 떨어진 게야.
냉장고를 열었더니 <쫀득 참붕어빵>과 <비요뜨>가 자리를 잡고 손을 내민다. 칼로리가 얼마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지!!
은지는 우울증 약보다 몇 배는 효과적이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요거트 용기를 꺾어서 초코볼을 눈처럼 하얀 요거트에 부었다. 숟가락으로 저어 한 입 먹으니 보물 찾기를 하는 듯 입 안에서 초코볼이 바삭하게 씹힌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기분이 좀 나아진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몸이 피로하면 신경도 날카로워지고 우리 한강 작가님의 이야기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테니.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책과 함께 하고 싶다.
은지는 자기 전에 벽에 붙여 둔 메모를 한 번 읽고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책은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