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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쿄킴 Jun 09. 2018

일단 시안 보내주시면 보고 결정할게요.

디자이너는 무얼 먹고 사는가?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막 프리랜서로 영업을 시작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서핑 샵의 연락을 받고 리플릿, 사진 작업 등을 진행하기 위해 서귀포에 갔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꽤 규모 있는 업체였고, 상담을 진행하신 운영자 분도 비교적 젊은 외지분이셨습니다.


이런저런 필요한 사항들을 이야기해주시고, 저도 그에 대해 대략적인 비용과 소요시간, 필요한 자료나 정보 등을 말씀드렸는데, 그때부터 약간씩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시안을 가지고 왔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시안의 이 부분, 다음 시안의 이 부분은 좋으니 비슷하게 해주시고, 나머지 면은 이렇게 구성해 달라.


심지어 인쇄소 수준의 비용을 이야기하면서, 비용은 이 정도로 생각하지만 잘하면 조금 더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제가 받아야 하는 최소 비용을 말씀드리며, 이 정도 비용이 안되면 작업을 시작할 수가 없다.라고 말씀드렸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일단 시안 보내주시면 보고 결정할게요.


저는 정중하게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시안 제출은 해드릴 수 없으며, 혹시 시안을 받아보시고 싶으시면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미팅을 마무리했습니다. 집으로 운전을 해서 돌아오는 길에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의 의미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고, 직업들마다 각각의 의미와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만들어 적정한 이윤을 받고 판매하는 생산자 형태의 직업들이 많았다면, 현재 대부분의 직업들은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고 그에 알맞은 비용을 받는 대행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전형적인 대행업 형태의 직업군인데, 디자이너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서  01. 제작에 필요한 디자인을 대행해주는 방식이나 02. 디자인한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 비율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전체 이윤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입니다.


아직 관공서나 소규모 프로젝트 등에는 인건비 혹은 디자인 비용으로 견적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생산비용에 일정 부분의 관리 혹은 이행 비용을 더해 디자인 비용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윤(혹은 인건비) = 매출 - 비용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는 무얼 먹고 사는가?


그렇다면 클라이언트가 시안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결제를 하겠다거나, 가전제품을 사는 데 사용해보고 만족스러우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이미 투입된 자원이나 노력에 대한 보상 없이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예상) 결과물을 받아보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물론 마케팅을 위해 맛이 없으면 환불을 해주거나, 얼마간 미리 사용해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환불하거나 사용 후 구입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비용을 결제를 하는 사람들이 나눠내고 있는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에 대해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입니다. 공산품처럼 정확한 용도와 수치대로 만들어지지 않을뿐더러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과 실제 효과적인 방법이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 작업 성패의 상당 부분은 클라이언트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원하신다면 그에 알맞은 비용을 지불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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