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작가 Dec 22. 2022

아무튼 일당백_ 두 번째 이야기

2. 초기 : 당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치사했던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몇 달 전 퇴사한 유아동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에서 스치듯 만났던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일할 생각이 없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일인지도 모른 채 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순간 오만가지 그가능성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아주 전문적이진 않지만 시키면 대략 80% 퀄리티 정도로 대부분의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인연의 시작이었던 이전 직장지에서는 브랜드 소싱 팀장, 그 전전에는 대사관에서 한국의 Food&Beverage 리포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또 그 이전에는 공공기관에서 영화와 게임 관련 진흥지원사업을 맡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동일한 업무를 맡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사실 그래서 살짝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거죠?”


나의 질문에 사장은 한국의 프랜차이즈 산업에 대한 비전과 동시에 성남시에 배달의 거점을 만들어 본죽을 넘어서는 거대한 프랜차이즈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먼저 밝혔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요식업 프랜차이즈이자 배달 대행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도미노피자 +배달의민족 같은 회사라고나 할까?


매장을 3개월 만에 4개 이상을 출점할 예정이고 매장 직원을 채용하는 업무, 그리고 마케팅 조금(?)의 업무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직원 채용은 매우 명확했지만 마케팅 조금(?)이라는 업무는 대체 뭘 말하는지 감이 전혀 잡히 않았다. 몇 초 고민하다가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곳들이 결국 한 사람이 이것저것 해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어쩔 수 없지라며 금방 스스로 타협했다.  




출근 첫날, 자리에 앉자마자 채용사이트인 잡플래닛, 사람인, 알바몬, 알바천국 총 네 군대 기업회원 가입 신청하라는 업무 지시를 받았다.


피자를 시켜 먹어보기만 했지, 매장을 운영해보지도 심지어 채용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새하얀 백지 같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수술을 집도해야 하는 의사도 또 로켓을 만들어야 하는 공학박사도 아닌 그냥 일개 미생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미생은 또 다른 미생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것이 난생처음 맡는 업무를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일테고 결국 완전 전문직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하고 있는 일 혹은 알고 있는 일일테니 내가 원하는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적시에 찾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 주위에 사람도 없이 나 홀로 앉아 컴퓨터를 켜고 채용공고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사업자등록증 상으로 우리와 비슷한 업종, 업태를 가진 회사의 채용공고를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대략, 파파존스, 피자헛, 도미노 그리고 알볼로 등이 나왔다. 한국 토종 피자 브랜드인 알볼로가 가장 우리와 흡사할 거란 생각을 했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알볼로 홈페이지 상에 나온 대표와 직원들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고, 만약 지금 내가 속한 이 조직이 순항한다면 알볼로의 홈페이지 상에 보이는 화목한 조직문화를 갖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채용공고에는 대략 하기와 같은 내용이 들어가야 했다.

업무내용

자격조건

근무시간

급여 수준

근무장소

채용 프로세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피자 그리고 채용 그 어떠한 카테고리에도 속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채용공고를 올리는 그 간단한 업무도 너무나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앞서 타사 채용공고를 모아둔 것을 취합해서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할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역시 나란 인간은 어떠한 업무든 맡으면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여기가 일당백의 시작 시점이었겠지..


대략 정리한 업무 내용과 근무 시간 등을 정리해 사장에게 보고했다. 이렇게 채용공고 올리려고 하는데 추가해야 하거나 수정해야 할 사항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사장은 내가 출력한 채용 기획(안)을 흘끗 보더니 그 위에 볼펜을 꺼내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매장직원 (점장급, 부점장급)  >>>> 추가 : 라이더 우대 

파트타이머 >>>> 추가 : 매장 파트타이머 외, 전단지 배포 파트타이머 추가

콜센터  >>>> 추가 : 콜센터 직원 외 바리스타 채용 축하


휘갈겨 쓰면서 아무렇지 않게 수정 사항을 설명을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드백을 받는다는 생각에 긴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손글씨로 휘갈겨 쓴 부분을 설명할 때 분명히 알겠다고 답했는데, 혼자 남아 채용공고를 다시 올리려고 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리스타?? 전단지를 배포하는 파트타이머?? 라이더를 우대한다고???


머리를 마구 돌리다가, 사장과 친인척 관계인 회계재무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님께 이 바리스타는 왜 뽑아야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장은 또 한편으로 순대국밥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샵인샵으로 있는 커피숍의 인력이라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 다른 업체를 또 운영하고 있구나. 그쪽 인력도 내가 뽑아야 하는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식당의 인력도 턴오버가 생기면 내가 뽑아야 하는 상황이구나 재빠르게 인지했을 텐데.. 그때는 지금보다 더 순진했던 것이다. 마치 식탁 위에 밥숟가락 하나 더 올려놓으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 알겠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업체의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니, 회원가입도 두 번, 채용공고도 각각 두 개 씩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구인기간도 각기 달랐기 때문에 마감하고 다시 구인공고를 재업로드 해야 하는 것도 각 두 번씩 더 해야 했다. 그렇게 채용공고를 내면 사람이 절로 뽑혀 매장에서 일하게 되는 게 아니었다.


채용사이트에 기업회원으로 가입하고 채용공고를 낸 다음, 면접을 보고 합격 불합격 공지를 하고 또 합격한 인력에게는 업무 교육을 해야 했다. 그 인력이 입을 유니폼의 재고 관리를 해야 했고  그들이 퇴사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불만을 상시로 들어주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해야 했다. 1인매장을 추구하는 탓에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며 매장 방문 손님 주문을 받고 피자를 만들고 때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배달을 해야 하는 업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속가능한 업무 조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장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정을 갖고 장기근속하면 창업비용금융지원을 해주겠다고 어디 가서 이런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러다가 수습기간 3개월은 임금의 90%만 주라고 지시했다. 이미 최저시급인 그들에게 90%의 시급을 지급한다는 것은 그 수습기간 동안은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당시에도 나는 불편하면 그 상태가 온전히 겉으로 드러나는 특유의 비조직형 인간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사장은 3개월을 버티지 못할 사람들이 어차피 많을 테니 조직의 이득을 위해서는 이런 급여시스템이 맞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상했다.


장기근속을 직원한테 강조하며 3개월 동안 최저시급 미만 급여를 지급하고 많은 수의 직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얘기하고 있는 사장의 부조리함이 당시에는 도무지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도 연봉협상을 하며 급여를 13개월로 나눠 급여기준 50% 상여금을 년 2회(설, 추석)에 지급한다고 했던 자였다. 결국 내가 온전히 받을 연봉으로 상여금을 주겠다는 생색을 내는 거라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 번의 상여금 중 설 하나만 받은 나는 온전한 연봉의 한 달 급여를 다 받지 못하고 퇴사했었구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너무 뒤늦게 찾은 나의 감정의 언어는 “치사”였다.


치사했다.




직원이 채용되고 일주일 교육기간을 지나서 바로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연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근무하면서 휴게시간은 2시간밖에 안되었고, 심지어 급여도 90%만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채용된 사람들이 교육기간을 끝내지 못한 채 그만뒀다고 보고하면 사장은 젊은애들이 근성도 없고 열정이 없다면 혀를 찼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직원들에게 지적 자극과 사는데 진정으로 필요한 태도를 가르쳐주기 위해, 독후감 쓰기 과제를 내겠다고 했다. 책은 자신이 가장 인상 있게 읽은 <인성이 실력이다>라는 책이라 했다.


책의 내용은 인성은 타고나기도 하겠지만 결국 교육을 통해 가꿔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책은 긍정적인 말이 중요하며, 갑질이 잡아지면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없고, 미래에는 인성이 리더십에 필수적인 요인이 될 거라 예언하고 있었다.
욱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다고 상대방에게 버럭 화를 내고, 욕하고, 폭행하게 된다면, 한 가지 자극에 예측 가능한 한 가지 행동만 하는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2022년 현재 그 사장과 두 번째 일을 하고 헤어진 마당에 2016년도에 사장이 독후감 과제라고 내준 책의 내용을 보다 보니, 소름이 끼친다.  정확히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타인에게 읽으라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12시간 동안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말이다.  


To be continued


지금 글을 쓰며 찾아보니 수습기간 최저시급이라도 90%만 지급해도 가능한 직종은 도제식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직종만 가능하다고 한다. 최저임금 감액이 불가능한 직종은 주방보조원, 패스트푸드 준비원 및 주유원 등 판매관련 단순 종사자는 불가하다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수습기간 최저시급 감액에 불가한 직종임에도 최저임금을 다 받지 못하면 체불 임금을 노동부에 신고하여 지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단, 3년까지만 유효.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22년. 당시 매장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일당백_ 첫 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