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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Jun 11. 2023

비조직형 인간의 기묘한 조직 생활 이야기 1편


들어가며

개인경험은 필연적으로 이기적 편향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영지'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솔직하게쓰되 너무 이입해서 편협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영지"는 누구람? 하는 분들께 미리 양해말씀 전합니다. 



이전 직장 사장을 다시 만나 새로운 일을 제안받았을 때 영지는 전 직장을 퇴사한 지 3개월 차였다. 당시 영지는 서울에서 2시간이 나떨어진 ‘고마워서 그래'라는 가게에서 취미로 끄적이던 그림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동안 영지는 전업작가로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마치 상상 속동물인 해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생전 만나기 힘든 존재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사실그림만 그리는 삶을 살기 위해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속이 시끄러울 때마 다스트레스해소용으로 그렸을 뿐이었다. 



왜 또 같이 일한다고 했을까?

영지는 세상에 ‘그냥’이라는 일은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설사 ‘그냥'처럼 보이는 일도 아직 당사자가 그 이유를 찾지 못한 단계일 뿐이라 생각했다. 이토록 “왜”가 중요한 영지는 정작 직업과 직장을 선택할 땐 ‘그냥’에 가까울 정도로 즉흥적이었다.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자칫 난잡해 보이는 경력이지만 영지는 그간의 선택이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눈치껏’이라는 능력과 ‘어떻게든’이라 불리는 적응력을 갖출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퇴사가 빈번했던 영지에게도 이번 퇴사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어려웠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한 번 일해봤던 그와 다시 일하겠다는 애초의 결정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다. 과거 함께 일했던 경험이 결코 쉽지 않았는데도 다시 일했기 때문이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흔 넘어 후회라는 감정에 이렇게 쫓겨 다닐 줄은 몰랐다. 애매모호하고 찝찝한 느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던 그때, 이왕 이렇게 지질할 거라면 대놓고 하자는 대범함이 싹텄다. 그래서 영지는 2016년에 같이 일하기 쉽지 않았던 사장과 2021년 다시 일하겠노라 결정하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당시 영지는 별다른 또렷한 계획이 없었다. 의외로 내향성이 높은 영지의 기준으로 꽤 큰 이벤트인 개인그림전시를 치렀고, 그간창고살롱을 통해 만났던 지인을 처음으로 만나는 일은 너무 좋지만 동시에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시마지막날결혼식을 마치고자 신의머리에 꽂혀있던 실 핀들을 빼며 격렬하게 쉬고 싶어 했던 밤을 떠 올릴 정도였다. 영지는 그토록 “하고 싶다" 노래 불렀던 그림전시를 실제로 했지만 내적에너지가 생각보다 너무 많이 소진된 것을 깨달았다.


 출처 : Midjourney by 영지


영지는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싫었고 그 와중에 먼 곳까지 와준 지인들이 너무 고마웠다. 싫고 좋은 마음이 전시 기간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아도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는 덩치 큰 프로그램을 돌리는 컴퓨터와 동일했다. 2주 동안의 전시만으로도 이토록 소진되는데 전업작가의 삶은 막막했다.


전시에 와주셨던 분들을 한 명씩 떠올리던 어느 날이었다. 과거 함께 일했던 사장도 전시장에 방문했었다는 걸 뒤늦게 기억하고는 멀리까지 보러 와준 사장에게 고마웠다. 전시장에 방문했던 지인들과 사장에게 뭐라도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전업작가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애써 지우려 했다. 마침그때, 사장이 일자리를 제안했다.



타이밍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실제 타이밍 때문이었다면 영지는 결단코 “왜 또 같이 일했을까?” 같은 질문에 굳이 이렇게 피곤하게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별다른 계획 없이 누가 제안을 하면 호기심을 앞세워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퇴사 한 번 더했노라 쿨한 태도를 유지하고 싶은 자아와 최근 퇴사를 하며 느꼈던 괴로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자아가 부딪혔다. 영지는 이런 자신의 상태가 오래전 결벽증 환자처럼 굴던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그을음이 너무 거슬려서 기어코 긁어내리라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며 냄비 바닥을 박박 긁어내던 날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냄비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기도 했던 광년이 같았던 시절을 다시 떠올렸다. 


속이 너무 시끄러워진 영지는 입 밖으로 내면 안 될 거 같은 말까지 내뱉어버리자 생각했다. 그러면 수치심 때문이라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란극단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왜 다시 같이 일했고도 대체 왜 또 그만뒀는 지다까발리기로 한다.



Back to the point. 그래서 진짜 이유가 뭘까?

서론이 길었지만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한 번의 창업을 경험하며 돈을 벌기엔 상대적으로 월급이 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정 시간을 월급과 바꾸는 삶이 가장 익숙하기도 했고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기에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과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일정 기간은 감내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장과 과거 함께 일했던 업종은 누가 하더라도 힘들 수밖에 없는 요식업이었다. 그래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일을 하게 되면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이브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비싼 명품을 못 사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다만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몇 장을 보내야 하는 고민이 싫었다. 누군가 텀블벅이나 와디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소식을 전하면 고민 없이 후원을 하고 싶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을 때 자신의 형편과 응원하는 마음의 비용을 저울질하는 것이 싫었다. 결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에 복잡성이 더해졌다. 회사를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라면 친정 시댁 경조사에 아무렇지 않게 제외될 수도 있었으며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지불하는 후원 비용에 협의 단계가 불필요했다. 무엇보다 실용적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그러나 꼭 참여하고 싶었던 글쓰기 수업이나 유료 멤버십 기반의 커뮤니티 활동 비용을 고민 없이 지출하고 싶었다. 


돈을 벌지 않는 영지는 집안 경조사에 ‘못 간다'는 말 대신 ‘가기 싫다'라는 솔직한 심정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통장 잔고를 따져보고 후원해야 할 액수를 썼다 지웠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뜻하기도 했으며 가끔은 텀블벅이나 와디즈에서 날아오는 소식을 무시해야 했다. 게다가 집안이 지저분해짐을 제일 먼저 목격하고 치워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눌릴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영지는 조직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 싫었다. 그런데 돈을 벌지 않고 기혼유자녀여성으로 집에 머무는 것도 영지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과거 함께 일했던 사장과다시일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지는 제조, 판매 및 유통, 배송, 재고관리, 고객상담 및 회계, 재무, IR, 그리고 비서일을 맡게 된다.  그런 영지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to be continued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 Ⓡ 레퍼런서 Ⓡ박지영님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 서비스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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