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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Nov 01. 2023

비오는 날의 주민센터, 크리스천의 단상

공무원으로 2년 정도 일하다가 퇴직했다. 요즘 mz세대들이 공무원이 보상이 부족하고 경직된 문화 때문에 줄퇴사를 하고 있다는데, 내가 퇴사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공무원 시절 특히 주민센터에서 일하며 썼던 단상들은 지금 읽어도 참 감사하고 또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브런치북으로 게재하게 되었다. 첫 글로는 비 오는 날의 단상을 써보고자 한다.


비 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특히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마음이 화창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만 떼고 휙 가는 등, 그들은 공무원에게 별로 기대가 없어서인지 굳이 말을 건네지 않는다. 사실 공무원도 민원인이 안부를 물어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말이다. 행정이란 명목으로 만난 우리들은 그저 서류로 소통하는 관계다. 


그래도 주민센터 공무원은 민원인의 고맙다는 말과 웃는 얼굴로 에너지를 얻으며 하루 일과를 보낸다. 불친절 민원을 넣거나 소란을 피우고 가는 민원인도 일주일에 한 명 이상 꼭 나오는 것 같지만, 좋은 민원인들도 있다. 실수를 눈감아주며 오히려 수고하신다고 말하는 민원인은 직장을 그만둔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민원대는 다른 날보다 좀 더 힘들다.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들고, 사람들은 서류만 떼고 휙휙 떠난다. 비로 인해 여유도 없어진 느낌.


이런 날에는 내 역할이 서류 떼주는 기계인가, 하는 우울함이 들기도 했다. 외국인이 많은 동네로 발령받았을 때 교회 언니 오빠들은 선교하러 간 거라며 응원해주었었는데, 맡겨진 일은 열심히 하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고 돌아설 때 그 기분은 퇴근을 하고 나서까지도 참 좋지 않았다.


아픈 마음에 하나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힐링하며 돌아오던 중, 아버지께 내가 오늘 행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주기만 했다고 생각이 들자 내일도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고, 사람들은 서류만 받아 가는 날들이 이어진다면 나의 선교 사명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랑은 때로 돌려받지 못해도 주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하나님은 비가 오지 않았던 날 나를 보고 웃어주었던 민원인을 생각나게 하셨다. 그리고 이런 음성이 들렸다. "네가 떼 주는 서류에 사람들이 웃는 게 아니야. 네가 바라보는 그 눈빛에 웃고 너의 마음에 웃는 거야. 그게 선교하고 있는 거야."


하루종일 쓴 마음을 돌려받지 못한 오늘 되돌아오든 그렇지 않든 나는 오늘 하루의 선교를 했다는 그 사실로 내가 하는 일에 만족감을 느껴야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야 누구나 떼줄 수 있다. 하지만 일관된 친절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복음‬ ‭21:19‬ ‭KRV‬


인내는 주민센터 공무원의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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