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도면 괜찮좌나
#scene1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저를 보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와 너 좋아보인다. 요즘 운동해?"
하지만 저는 하는 운동도 없고 심지어 지난번 친구와 만났을 때보다 더 살이 쪄있는 상태였어요.
저는 왠지 허둥대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유 아니야. 그때보다 더 쪘는데 이상하네 ㅎㅎ 아마도 옷을 헐렁한 거 입어서 그래 보이나봐"
#scene2
친애하는 후배가 한 명 있습니다.
스펙은 물론 제 눈에는 정말 일도 잘하고 센스까지 좋아서 어딜 가든 잘할 것만 같죠.
하지만 면접 때 물어오는 희망 연봉에 턱없이 적은 숫자를 부릅니다.
심지어 회사 측에서 '그건 너무 적지 않냐'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scene3
스무살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 본인 점수보다 훨씬 높은 대학에 과감하게 지원을 했는데,
그 과가 정원 미달이 되어 합격을 한 것입니다.
모두가 그 친구를 부러워했음은 당연합니다. 저 역시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입학한지 한 달만에 그 친구는 그 대학을 그만두고 재수를 선택합니다.
이유인즉슨, '나는 운이 좋았을 뿐 그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였습니다.
여러분은 위의 3가지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아, 나도 저런 적 있는 것 같다! 하는 분도 계셨을 테고,
혹은 저렇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느껴지죠.
저 역시 '이것만은 꼭 고치고 싶다!' 고 최근에 자각하게 된 버릇 중 하나가 이런 쓸데없는 겸손과 겸양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혹은 제가 작업한 결과에 대한 칭찬 앞에서 왜 그리 몸둘바를 모르겠는지, 서둘러 (거의 빛의 속도) 겸손을 떨며 저를 낮추곤 하는데요.
그러고나면 늘 뒷 맛이 씁쓸합니다.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일인데, 그렇게까지 나 스스로를 깎아내렸나 싶은 것이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나의 존재나 내가 이룬 성취를 습관적으로 평가절하하거나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심리학에서는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 이라고 말합니다.
가면 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을 노력이 아닌 운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심리이다. 높은 성취를 이루었는데도 그것을 과대평가된 것으로 치부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출처: 나무 위키>
가면 증후군은 가볍게 여겨지기 쉽습니다.
자기 객관화와 아주 닮아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릅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은 본인이 이룬 성취에 대해서
이 부분은 운이었고, 이 부분은 내가 잘 처리했고,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겠다와 같이
보다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수도 내 탓, 잘 된 부분도 내 덕. 이런 거죠.
하지만 가면 증후군에 빠진 사람에게 나의 성취란,
순전히 운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사람들이 나의 진짜 모습 (무능한 모습)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일례로, 회의 시간에 모르는 단어나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은 '그건 무엇인가요'라고 바로 물어볼 수 있지만
가면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이걸 모르는 척 했다가는 면접 때 날 뽑은 저 부장님이 속았다고 실망하겠지'와 같이 깊은 생각의 수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주변인들을 '잠재적으로 나에게 실망할 사람들'로 보기 때문이겠죠.
가끔 지인들의 고민을 듣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중 상당수가 '가면 증후군'이라는 말로 귀결이 되더군요.
제 값을 못받고 있는 프리랜서, 새로 입사한 곳에서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커져 힘든 사람들까지.
하지만 가면 증후군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겸손이 그저
개인적인 열등감이나 우울감, 자책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사람들이 어, 저건 정말 가면일지 몰라.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에요.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법대로 사람들도 나를 인식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법대로 나는 점점 더 그렇게 만들어져 갑니다.
스스로 존중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누구도 알아서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1년 넘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이 가면 증후군은 많이 나아지긴 한 것 같습니다.
겸손이 뭔가요.
뻔뻔 허세 유능 만능 내가 최고 어이쿠 잘 오셨습니다 의 가면을 써야만이 살아갈 수 있는 프리랜서의 삶...☆
하지만 저 역시 아직도 단련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칭찬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왜그리 어려울까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쓴 김하나, 황선우 작가 역시 2019 여성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과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대다수가 '아니에요' 하고 수줍게 웃죠. 그러지 말고 '감사합니다' 합시다."
"조직의 안과 밖에서 그렇게까지 양보할 필요 없어요. 본인 크레딧(Credit·명성) 잘 챙기세요."
프리랜서로 살건, 직장인으로 살건, 학생으로 살건, 전업주부로 살건 간에
쓸데 없는 겸손은 독이 됩니다.
반복하자면,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법대로 사람들도 나를 인식하기 마련이니까요.
스스로 잘한 것은 자랑스레 여겨주고, 토닥여 주고, 그래 운도 실력이야! 하며 무브무브 앞으로 나아갑시다.
칭찬 앞에서 '아유 아니에요' 가 아니라 '감사합니다!'하고 힘껏 인사해 봅시다.
만약 실수를 할 생각이라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하는 편이 좋다.
<앤서니 로빈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