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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Dec 23. 2021

내 콘텐츠, 얼마 받아야 할까?

당근 쫄보 졸업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2년 전, 엄마가 프랑스 파리 여행에서 사오신 말 장식품이 있었습니다.


나무로 곱게 깎고 유약을 칠한 말 장식품은 안장마저 멋진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지요.



엄마는 가족들에게 늘 '인테리어 파괴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식품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실용주의자이신지라, 처음 트렁크에서 그 말 장식 한 쌍을 꺼냈을 때 모두가 의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장식품 가게에서 불을 켜고 쇼핑하는 것을 보고 말을 한 마리만 들고 오려다 옆 친구분께서 한 마리는 애매하지 않냐며 두 마리를 사라고 하셨답니다)



여튼, 이 말 장식품은 엄청난 존재감까지는 아니었지만 10년 넘게 엄마 집의 티비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얼마 전 엄마 집을 리모델링하게 되면서, 엄마는 말 두 마리를 '처분'하고 싶어하셨습니다.


필요 없는 것 = 버린다 의 공식이 상식이던 엄마는 꽤 비싸게 사오신 장식품에도 미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엄마, 당근에 내놓으면 될 것 같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사가겠지! 그때까진 보관해 보자"


"저걸 살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는 나타날 수도 있잖아. 짐 되는 것도 아니고. 나름 파리에서 온 수제 조각품이니까!"



그렇게 말 두 마리는 파리에서 물 건너와서 마포구에서 10여년을 살다가 당근마켓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matreding, 출처 Unsplash



이제 문제는, 가격입니다.


과연 말 두마리를 얼마에 올릴까요?


엄마는 미련도 없이 무료 나눔을 하라고 하셨지만, 무료 나눔을 꽤 해본 저는 무료 나눔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당근에서 나눔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음,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 No Show가 많습니다.


이쪽에서는 깨끗하게 잘 쓴 물건을 선의를 가지고 나눔으로 내놓지만,


받아들이는 쪽의 온도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겠다고 한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입니다.


약속한 날짜에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



나눔을 받겠다고 했을 때는 초고속으로 말을 걸던 사람들이,


막상 준다고 했을 때 나타나지 않는 심리가 궁금해졌습니다.


에이, 그래도 공짜로 받기로 했는데 거기를 왜 안가겠어요,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실 이게 재미있는 가치와 가격의 메커니즘이기도 합니다.



'거저 얻는 것' = '가치가 떨어지는 것' 이라는 공식이 나눔을 받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 세워지는 거예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나눔을 신청했을 때의 온도와 달리 내가 발품을 파는 것조차 아까워지게 되는 겁니다.


몇 번의 노쇼와 잠수를 당하며 제가 자체적으로 터득한 공식이랍니다.


그리고 제가 나눔을 하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마지막에 말씀 드릴게요! :)






1. 말 두마리의 가격 정하기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 저는 무료로 하라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손바닥만한 (제 손바닥이 꽤 큽니다) 말 두 마리의 가격을 결국 3만원으로 올렸습니다.


엄마는 하하 웃으며 절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죠.



우리 눈에는 흔하고 익숙해져버린 것. 그런 것에 가치를 매기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말 장식도 마찬가지였어요.


리모델링을 앞둔 엄마 눈에는 처분의 대상일 뿐,


현금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이때, 3만원이라는 첫 가격을 매긴 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1) 시세


먼저 동물모양을 한 장식품의 시세를 쭉 보았어요.


마포구가 아닌 다른 동네에서도 검색을 해 보았죠.



보다보니, 음? 스러운 장식품을 10만원 넘게 올린 판매자도 있었고,


으리으리 멋진 장식품을 나눔으로 내놓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가가 확실한 장난감이나 생활용품이 아닌 장식품이라는 중고 품목의 시세는


한마디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습니다.



2) 시급성


저희는 일주일 후에 짐을 다 뺄 예정이었으니,


이 말들이 어딘가 이삿짐으로 딸려 들어가기 전에 얼른 처분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두 마리에 5만원으로 올렸겠지만,


판매자가 빨리 처분하고 싶은 경우 값이 내려가는 것은 인지상정.


이렇게 생각 끝에 3만원으로 정한 바탕은 시세, 그리고 시급성이었습니다.




2. 입질이 온다



당근마켓에 말 두마리를 올린지 반나절쯤 지났을까요?


앱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조회수도 관심 수도 생각보다 좀 있었습니다.



"엄마! 말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3명이나 된대!"



사람들의 관심을 말의 가치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는 성적표로 받아들고,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한 이틀이 지났을까요.



관심이 2배, 3배로 늘어났습니다.


마치 주가를 관망하고만 있는 잠재 투자자들의 수를 예측하는 회사의 대표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조금 더 떨어지면 사야지,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얼마 후, 입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3. 나는 더이상 당근쫄보가 아니다



"당근!"


드디어 첫 채팅이 왔습니다.



김빠지게도 '2만원에 안될까요?'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가족들은 그냥 2만원에 파는 것은 어떻냐고,


사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했고 저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 후 마음을 찍는 (관심을 준) 잠재 고객들은 조금씩 늘고 있었지만 구매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것 봐, 그떄 그냥 2만원에 팔지 그랬어"


가족들의 충고가 귀에 와서 꽂혔습니다.






자 여기에서 잠깐 퀴즈.


여기에 선택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 보아요. :)



잠재고객들이 장식품에 관심은 있지만 다들 가격을 내리고 있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중 여러분은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 25,000원으로 내려서 실수요자를 확보한다.

2. 30,000원으로 그대로 기다리는 게 낫다.

3. 35,000원으로 올린다.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선택만 있을 뿐이에요.



제가 선택한 답을 공개하자면 이렇습니다.



4. 40,000원으로 올린다.


© wildlittlethingsphoto


내 서비스나 내 제품을 보며 누군가가 '간만 볼' 뿐 실제 구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저 멀리 있는 잠재고객을 향해 문을 더 활짝 여는 것이 아니라,

문을 조금 닫아보는 전략을 써볼 수 있습니다.


<아 저기 살 사람이 많이 나타났으니 조금 가격을 올려볼게요> 라는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격이 주는 신호는 참 묘해서,


무료 나눔을 한다 =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10만원의 가격표 = 10만원짜리 가치가 있다, 와 같이 사람들은 숫자로 가치를 판단합니다.


만약 가족들의 말을 듣고 25,000원으로 가격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가 추측하는 바는, 구매자 입장에서 전혀 급할 것이 없는 '장식품'이라는 품목 특성까지 더해져


'언젠가 더 내릴 것이다' 라며 관망이 더 길어졌을 것 같습니다.



숫자는 소비자에게 말을 겁니다.


그리고 숫자가 저절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콘텐츠의 가치를 설득해 주기도 합니다.




4. 얼마 받고 계신가요?



내 제품이나 서비스, 내 콘텐츠에 붙이는 가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격을 정하는 일. 프라이싱은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여기에 나의 욕구를 맞춰 나가는 과정입니다.



당근에 올린 말 두마리의 첫 가격. 3만원.


시세를 알아보며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해 보았고,


시급하게 처분하고 싶지만 얼마 이상은 받고 싶은 저의 욕구를 맞춰서 정한 가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격은 당연히 유동적입니다. 헌법같은 게 아니잖아요.


처음 앵커링된 가격이 3만원이었으니 이게 30만원으로 오를 일은 없을 테지만 (신고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정관념 - 첫 가격에서 조금씩 깎으면서 거래한다 - 을 한번 다시 생각해보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만들고 판매하는 서비스와 콘텐츠는 - 그게 전자책이 되었든 강의가 되었든 디자인이 되었든 교정교열이 되었든 - 시세는 있겠지만 정가는 없습니다.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면, 내가 붙여주는 그 가치가 시장에서의 가치가 됩니다.


내 콘텐츠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면 그 가격은 용기있게 내가 정해야 하고요.



엄마가 10년 넘게 그 자리에 늘 있었던 말의 가치를 몰라본 것 처럼,


여러분은 열심히 일해놓고 여러분의 가치를 (익숙해서) 잘 몰라볼 수 있습니다.



나와 동일한 콘텐츠가, 나보다 못해보이는 서비스가 나보다 많은 돈을 받고 거래되고 있나요?


시장의 욕구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볼 때입니다. 동시에 나의 욕구에도 솔직해져야 할 때입니다.




자, 문제의 (?) 말 장식품은 결국 얼마에 팔렸을까요?



4만원으로 올리고 나니 채팅이 여러군데에서 거의 동시에 왔는데요.


그중 37,000으로 깎아달라는 요청이 있던 구매자가 있었습니다.


4만원에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던 차여서 정중히 거절했지만 조금 필사적이었습니다.



그 어투와 묘하게 빗겨가는 맞춤법에 혹시나 해서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네요.


죄송하지만 지금 현금이 37,000원 밖에 없다는 고3 수험생.



고3 수험생에게 말 장식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저는 4만원을 제껴두고 그 친구와 쿨거래를 합니다.


(네, 가격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 있습니다)


© dancounsell, 출처 Unsplash


위에서 미처 공개하지 않은


제가 당근에서 절대 무료 나눔을 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를 알려드리며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바로 이렇게,


내 콘텐츠, 서비스, 제품에 가격을 매기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에요.



당근으로 연습하는 내 콘텐츠의 가격, 내상 없이 내 배포를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추천 드려요 당근! �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참, 저와 함께 하는 나만의 콘텐츠 밑그림 그리기 (+가격 매기기도 함께 해 봐요!) 코칭을 신청 안하셨나요?


https://brunch.co.kr/@june7hyun/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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