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어느 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노래를 만난다. 노래가 있을 만한 곳으로 찾아간다. 저녁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사운드홀릭 시티에 이르렀다. 홍대 인근 공연장(club soundholicity)으로 간 것이다. 무대 가까이는 이미 사람들로 채워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bar)가 있던 오른쪽 가장자리에 가 앉았다. 어떤 공연이든 마음껏 보고 싶은 이유로 무대 바로 앞을 좋아한다. 다시 가서 비집고 기어이 서서 보고 싶다. 가만히 무대를 응시했고,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디에 왔는지 느끼게 해준다.
노래는 시작부터 무료하다. 사랑이라는 인기 주제를 선호하고, 흔한 말들을 담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한다. 그런 노래가 무의미했고, 우스웠다. 그럼에도 음악은 매번 근사하다고 느낀다.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Suede, 3집 앨범 <Coming Up>의 1번 트랙 'Trash'를 시작으로 브릿팝을 즐겨 듣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영국 밴드 위주로 듣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마음에 드는 한 곡을 듣고 듣는다. 때로 앨범을 한 곡처럼 듣기도 한다. 당연히 노래의 제목이나 가사를 살피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듣는다고 했을 때, 목소리 톤이나 어조, 말씨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이야기는 듣지 않고, 어감만으로 선호한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습관이 마음에 들었다. 본의 아니게 음악 취향이 매우 뚜렷했다.
이따금 노래를 부른다는 건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곡들이 담긴 것을 의식하고 고른 앨범을 샀다. 노래를 듣다가 노랫말을 읽고 싶었다. 슬퍼서 행복한 노래, 노래들로 봤다. 별다른 이유 없이 노래로 인해서 눈물이 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음악에 추억이 담기기 쉬워서 감정 이입이 일어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납득해왔다. 이러한 생각 뒤에 음악을 들으면서 울었던 기억은 없다는 걸 알았다. 그게 이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래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겉돌면서도 맴돌았다. 이때까지도 음악에 거는 기대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공연장을 찾았는지 떠올려 본다. 그 이유를 선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입장 전에 어떤 밴드를 보러 왔는지 묻는다. 여러 밴드가 노래하는 공연이었고, 유일하게 아는 밴드 이름을 당당히 말한다. 기다리던 밴드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