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타운(Freetown)에서 마케니(Makeni)까지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모로코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거쳐 시에라리온 프리타운(Freetown)의 룽기(lunggi)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기내에서 장시간 에어컨 바람에 춥다고 담요를 덮고 있다가, 비행기를 나오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겉옷을 벗었다. 비행기가 착륙한 활주로에서 공항 건물까지 걸어가니, 작은 입국장이 우리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과 화물로 가득 찼다. 카사블랑카 공항 탑승장에서 몇 마디 나누었던 현지에 도로건설 공사를 위해 파견되었다는 중국 아저씨와 동료들도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곤히 잠든 아이를 남편이 앉고 줄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3인분 입국카드를 잽싸게 작성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
하얀 유니폼에 긴 머리를 뒤로 올린 여직원이 유리창으로 막힌 창 안에서, 여권과 입국심사 카드를 펼쳐 보며,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tip, tip, tip!" 말한다. 나와 남편은 서로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졌다. '지금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다시 세관직원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돈을 세는 포즈를 보여주며 다시 한번 "tip, tip, tip!" 하고 외쳤다. '아~! 돈을 달라는 거구나.'하는 직감과 함께 아프리카 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한 블로그의 조언이 스치고 지나갔다.
현지에 도착하면 때와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요구하니, 당황하지 말고 확실하게 거절할 것.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1 달러, 2 달러 정도의 작은 단위의 화폐를 준비할 것.
설마 그런 일이 공항의 입국심사에서부터 시작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공항직원은 한 손에 입국도장을 찍은 여권을 들고 다른 손으로 돈을 세는 시늉을 하며 우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작은 단위의 지폐가 없었다. 우리는 고개를 저으며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 사이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자, 세관직원은 우리 뒤에 줄 선 사람들과 주위의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화가 난 표정으로 여권을 던지다시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입국장을 무사히 넘어 수화물을 찾는 곳으로 가니, 신분증인듯한 카드를 목에 건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친절하게 카터를 끌어다 주며 옆으로 다가선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시에라리온 처음 오셨나요?"
'1월도 열흘이나 지났는데 뜬금없이 웬 새해인사?' 이 친절함 뒤에 또 무언가 요구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떨떠름하게 "네, 네"하고 대답하며, 오직 우리의 짐을 찾는데만 신경을 쏟았다. 3단 이민가방 두 개와 대자 캐리어 두 개, 그리고 30리터 배낭 두 개, 로마의 형편없는 보도블록에 걸려 고장 나는 바람에 유모차를 두고 온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짐을 하나씩 카터에 다 싣고, 출구를 찾아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급 직원들이 몰려와서 우리의 짐을 가리키며 열어보란다.
"무슨 짐이 이렇게 많소?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 품목은 없는지 봐야겠소."
"우리는 이곳 대학에 강의를 하러 왔어요. 이 짐 안에는 책과 옷가지 밖에 없으니, 원하시면 다 열어보세요."남편이 지지 않고 대답했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앉은 나를 보며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한층 누그러졌다.
"그게 아니라, 새해도 되고 했는데 정말 우리에게 줄 선물은 없나요? "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전 처음 본 외국인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새해 선물을 요구하는 이 사람들은 "구걸"이 아니라 "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우리는 어리둥절함, 민망함, 불쾌함으로 찡그렸던 표정을 지우고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그리고 " 새해는 이미 열흘이나 지났잖아요. 내년에 꼭 준비할게요."라고 대답하며 검역을 빠져나왔다.
그때 한 청년이 다가왔다.
"라짜로띠씨, 맞으시지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저는 마케니 대학에서 근무하는 빅터(victor)라고 합니다. 시에라리온에 도착한 것을 환영합니다."
빅터는 우리를 데리러 공항에 나왔다며 차량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고, '마케니 대학'이라고 쓰인 하얀 봉고차를 보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빅터만큼 크지는 않지만 다부진 체격에 야구모자를 쓴 남성이 차에서 내렸다. "환영합니다. 나는 마케니 대학 운전사 히브라임(Ibrahim)입니다." 히브라임과 빅터는 특히 이제 잠에서 완전히 깬 아이를 보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안녕, 꼬마 친구. 이름이 뭐니?" 아이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안. 토. 니. 오."
우리가 목적지인 마케니는 룽기 공항에서 동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두 가지 루트가 가능하다고 히브라임이 설명했다. 룽기 공항에서 프리타운까지 자동차도 탑재가 가능한 화물여객선을 타고 건너는 노선과 프리타운을 거치지 않고 바로 포트로코(Port Loko)라는 도시를 거치는 노선이 있다. 프리타운을 거치는 첫 번째 노선은 거리는 멀지만 길이 잘 닦여있고, 두 번째 길은 거리는 짧지만 완공이 된 도로가 아니라서 길이 험하다고 했다. 그런데 프리타운까지 가는 화물여객선 운행시간이 새벽 5시라서, 일단 2시간 이상을 공항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마침 보름달이 밝으니, 달밤의 사파리를 한다고 생각하세요. 운이 좋다면, 아침 6시면 마케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히브라임이 유쾌하게 말했고, 결국 우리는 포토로코 노선을 선택했다.
'차가 시속 80km로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200km라면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완공이 안 된 도로라면 비포장도로를 말하는 거겠지, 조금 흔들리긴 하겠지만 차멀미를 안 하니까 괜찮겠지. 새벽이라 다른 차들도 별로 없을 것이고, 차가 막히는 일도 없을 테니.......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겠지.' 스르르 눈을 감으며 잠으로 빠져 드는 순간, "쿵~!" 하고 머리가 차 창문에 부딪쳤다. 눈 앞에 별이 보일만큼, 세게 부딪쳐서 잠이 다 달아났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도로는 그냥 비포장도로가 아니라 곳곳에 깊은 웅덩이가 파여있고, 커다란 돌이 박혀있어 미로 찾기를 하듯 운행 가능한 길을 탐색하며 나아가야 했다. 길 위에서 좌우로, 아래 위로 요동치며 달리는 봉고 차 안에서 한 손은 창가의 손잡이를, 또 다른 손은 요동치는 배낭을 잡고 몰려오는 졸음은 물리쳐야 했다. 잠깐 조는 순간 머리가 계속 창문에 부딪쳤기 때문에. 안토니오는 들썩들썩 흔들리는 자동차가 재미있는지, 크게 흔들릴 때마다 "까르르" 웃었고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가로등은 고사하고 인적도 드문 도로 위에서 하얗게 비추는 달 빛에 의지한 봉고는 넘실거리는 바다 위의 배처럼 출렁이며 사파리를 지속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끝이 없을 것 같던 사파리는 점점 내가 알고 있는 "비포장도로"에 가까워졌고 출렁이는 바다 위를 배는 다시 봉고차로 돌아와서 얌전히 길 위를 달렸다. 히브라임이 휴식을 위해 잠시 차를 세웠고, 끝없는 초원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며 동이 텄다. 다시 차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비포장도로는 어느새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접어들었고, "Makeni"라고 씐 표지판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