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 유치원(St. Joseph's NurserySchool)
방학이 끝나고, 곧 대학의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은 두 살 반 안토니오의 유치원을 찾는 일이다. 안토니오는 한 살 반쯤 되었을 때부터 기저귀를 차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한 달 정도의 적응기간을 지나자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우리 부부가 함께 공부를 하다 보니, 아이가 유치원을 간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각자 강의를 하게 되면, 유치원은 어쩌면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곳인지 모른다. 나와 남편은 어릴 적 유치원에 다녔고, 그 또래의 친구들이 대부분 유치원에 다녔듯이, 나의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상의 부분이자 성장의 필수과정이었다. 아이의 유치원 문제는 마케니로 오기 전 이미 대학 측과 협의했던 부분이라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케니에는 "유치원"이라고 할 만한 시설이 많지 않았다. 사립유치원이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sos 어린이 마을(SOS Chinldren's village)이라는 외국 NGO단체에서 설립한 곳이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함께 운영되는 SOS는 규모나 시설이 가장 좋고, 스쿨버스까지 운영한다고 했다. 대학에서 내어준 차로 기사 히브라임, 빅터와 함께 유치원 물색에 나섰다. 교외에 위치한 SOS는 우리 집에서 차로 거의 30분이 걸렸다. SOS는 원래 시에라리온 내전 이후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위해 지어졌다. 반란군의 기지였던 마케니는 내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14세 이하의 인구가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 도시이다. SOS는 유치원 아이들만 거의 200명이 되었고, 몇 개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교복을 입고 책상 앞에 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유치원이라기보다는 학교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회초리 같은 길고 가는 나뭇가지를 든 선생님은 왠지 무서운 표정이었다.
빅터와 함께 유치원 원장을 만나서 유치원 비용 등 전반적인 설명을 듣는데,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빅터의 표정이 어둡다. 우리는 일단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유치원을 나왔다. 빅터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재 유치원은 정원이 다 차서 자리가 없지만, 우리가 등록을 원하면 받아는 줄 수 있다고 원장이 말했단다. 히브라임은 빅터에게 한 학기 유치원 학비를 듣고는 비명을 지른다. "무슨 유치원 비용이 대학 등록금만큼 비싸!" 자식 셋의 아빠인 히브라임은 이미 시집 간 첫째 딸과 열 살짜리 둘째 딸, 그리고 두 살짜리 막내아들이 있다. 금쪽같은 두 살짜리 막내아들은 장사를 하는 엄마를 따라 늘 시장에서 논다. 빅터에 따르면, 레바논(Libanon) 상인들의 자식들이 SOS 유치원과 학교에 많이 다닌다고 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현대식 슈퍼마켓과 건축자재 상점 등을 독점하고 있는 갑부들이다. 해외에서 고아들을 위해 설립한 시설이 현지에서는 유일한 귀족학교가 된 셈이다. 아무튼, 유치원까지의 먼 거리, 비싼 학비, 콩나물 교실과 너무 엄격한 분위기 등 우리는 SOS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마케니 시내에 있는 성 요셉 유치원( St. Joseph's Nursery School)으로 가톨릭 재단의 사립유치원이었다. 같은 울타리 안에 초등학교도 있고, 특히 농. 맹아를 위한 초. 중학교가 함께 있었다. 유치원은 천장이 높고 커다란 단독 건물 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창문이 그저 철제 창살로 되어 있고(유리창이 없음) 건물 내부의 바닥도 시멘트 바닥이라서 실내와 실외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건물 안에 미끄럼틀, 시소 등 놀이터가 자리 잡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놀이터 안 쪽으로 교실이 두세 개 있었는데, 교실마다 칠판이 하나 덜렁 놓여있고, 바닥에는 커다란 멍석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이 그냥 바닥에 앉아서 노는가 보다......'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지만, 화장실을 한 번 보자고 부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나의 머릿속엔 시에라리온으로 오기 전 아들이 한 달쯤 다녔던 한국 유치원이 떠오른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아이들 방, 청결한 주방과 화장실, 알록달록 놀잇감으로 가득한 놀이터와 집 앞까지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려다주는 유치원 버스......
"그럼, 여기로 할까요?" 빅터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유치원 비용, 유니폼, 휴지 2개, 공,.... 학기당(3개월) 한국 돈으로 15-2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SOS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통학버스는 없고, 열두 시 반까지는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한다. 이 유치원도 집에서 차로 1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라서 교통편이 걱정되었는데, 히브라임이 "안토니오 유치원 통학은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유치원 등록해요."라고 말해 주어 결정을 내렸다. 사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다음날부터, 안토니오는 자주색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반바지 유니폼을 입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은 엄마가 유치원까지 따라갔는데, 헤어질 때 손을 꼭 붙들고 놓으려 하질 않는다. 그러자 히브라임은 집에서만 배웅하고 유치원에 아예 혼자 보내라고 하며, 안토니오를 자신의 옆 앞 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사탕과 과자로 아이를 달래어 무사히 등원하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며칠 다니더니, 하루는 아들이 영어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여덟 시 아침이 되었어요.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서 학교로 가요...(Eight a'clock in the morning, boys and girls go to the school.)" 한 번은 점심때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함께 갔더니, 안토니오가 한 선생님 등에 업혀있다. "안토니오가 어디 아픈가요?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웃으며 "아니에요. 아직 엄마, 아빠랑 떨어지는 게 습관이 안 되어서 그런지. 자꾸 울어서 달래느라고 업어주고 있어요."하고 대답한다. 천역 덕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 등을 독차지한 아이를 바라보니 웃음이 나왔다. "안토니오는 한 살 반부터 유치원에 다녔어요. 아마 선생님이 업어주는 게 좋아서 계속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네요. 보통 울다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칠 텐데...... 여기서는 아이들이 울면 선생님이 자주 업어주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뇨. 우리도 아이들이 울만큼 울다가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안토니오는 하얀 아이라서 어째야 좋을지 몰라서......"선생님이 웃으면 대답한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안토니오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몸에서 향긋한 비누냄새가 퐁퐁 났다. 아침에도 세수하기를 싫어해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해서 보내는데, 물도 귀한 유치원에서 씻고 오는 게 의아했다. 그래서 한 번은 선생님한테 "저, 안토니오가 유치원에서 씻나요?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네, 안토니오가 하도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아서 손, 발, 얼굴에 흙먼지가 묻어 너무 더러워서요. 다른 아이들은 까매서 더러운 게 잘 안 보이는데, 하얀 아이는 더러운 게 너무 잘 보여서 우리가 집에 가기 전에 한 번씩 씻긴답니다."라고 대답한다. 유치원과 학교를 통 털어 유일한 하얀 아이여서, 안토니오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안토니오를 알아보고는 "아, 안토니오 아빠, 엄마!"하며 인사를 건넨다. 부디 건강하고, 즐겁게 그리고 신나게 놀며 자라렴.
. Joseph'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