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을 팔았다고!!!
아프리카는 막연하게 일 년 내내 더울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이곳에도 두 계절이 있다. 건기와 우기. 시에라리온에서는 11월쯤부터 이듬해 4월까지 비가 오지 않고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는 건기이고, 4월 중순 5월쯤부터 10월까지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라고 했다. 1월 중순쯤 도착한 우리는 건기의 중간쯤을 경험하고 있는데, 땅은 메말라 먼지가 피어오르고, 풀은 말라서 갈색을 띠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느낌이 들 정도이고, 낮에는 따가운 햇볕에 무덥지만 그늘을 찾아서 낮잠을 자기에 알맞은 날씨다. 학교의 수업도 오전, 오후 그리고 저녁으로 나뉘어 있어서 안토니오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점심을 먹고, 바로 기분 좋게 오수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쿨쿨 낮잠을 즐기고 있던 어느 날, "쿵쿵"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이 집의 주인과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현지 억양이 강한 영어가 정확히 들리지도 않고, 말뚝같이 서 있는 낯선 남자를 혼자 상대하기에 자신이 없어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이웃이라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남자를 집 안으로 들여 탁자에 함께 앉았다. 신발도 벗지 않고 저벅저벅 실내로 들어온 그는 사무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사연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집안에서 큰 아들인데, 현재 어머니와 옆동네에 살고 있단다. 원래 하던 사업이 파산해서 집세를 낼 돈이 없어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단다. 그래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왔으니 돈을 좀 달라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생면부지의 타인 집에 다짜고짜 찾아와서 횡설수설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달라는 것도 그렇고, 멀쩡한 생김새와 옷차림을 하고 오히려 빚을 받으러 온 것처럼 너무 당당하게 돈을 달라는 행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우리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월급을 아직 받지도 않았고, 현재 가진 돈도 없어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는 힘들다. 혹시 배가 고프면 밥이나 먹고 가라며 식탁에 놓여있는 밥을 권한다. 나는 남편의 대답조차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낯선 남자는 순순히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 동네 사람들은 원래 자기 어려움을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나?', '아니면,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봉으로 보이는 걸까? '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그의 시선과 몇 번 마주치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집을 나갈 때까지, 나는 이 기막힌 상황을 해석해 보려고 애를 썼다. 당황스러운 나의 눈빛과 마주친 남편은, 어깨를 으쓱하며 '어쨌든 보냈으니 해결되었잖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들과 남편이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청년은 또 나타났다. 그는 남편을 찾았는데, 내가 자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남편이 방에서 나왔다. 남자는 이번에는 들어오라고 말도 안 했는데, 스스럼없이 들어와서 의자에 앉았다. 화가 난 표정으로 자기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단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서 있는 나에게 그가 자꾸 눈짓을 한다. 나는 화가 나서 "그래, 무슨 중요한 얘기인지 해 보시죠."하고 말했더니, 남자는 "일단 앉으세요."하고 대꾸한다. 남편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서든, 앉든 그건 집주인 마음이니까, 당신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닙니다. 할 말이나 해보시죠."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불쾌한 표정으로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 남편과 할 말이 있으니 자리를 좀 비켜주시죠."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남의 집에 와서 무슨 행패야, 당신이 나가!" 남자는 순순히 일어나서 집을 나갔지만, 마당에 서서 계속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철 대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도 모두 닫았다. 그는 다시 대문으로 다가와서 나와보라고 소리를 쳤다.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을 생각으로 대꾸하지 않았고, 그는 문을 쾅쾅 두드리며 문을 열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서 대학의 루이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대문 밖에서 우리를 죽이겠다며 협박하고 있다고...... 깜짝 놀란 루이스는 한 참만에 경찰과 함께 도착했고, 경찰은 그 자를 연행해 갔다. 루이스가 도착하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루이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단다. 그 와중에 내가 발견한 것은, 경찰이 루이스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이곳에서는 범죄를 신고하면, 경찰이 경찰차를 타고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을 모시러 경찰서에 가야 한단다. 경찰은 간단하게 우리에게 진술을 받아갔는데, 루이스가 수고비를 건네며 경찰을 다시 경찰서로 데려다주었다.
그다음 날은 토요일이라 집에 있는데, 빅터가 찾아왔다. "어제 많이 놀라셨지요? 그 작자가 어제부터 경찰서에 구류되어 있는데, 자기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우기고 있어서...... 아무래도 피해자와 대면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남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가능하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는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데...... 집에 어린아이도 있고, 혹시 그자가 무슨 헷코지를 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빅터는 이미 사건을 경찰서에 신고했고, 피고가 구류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양자대면을 해야 사건을 풀 수 있다고 설득했다. 남편을 결국 빅터와 경찰서로 향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남편은 죠셉 부총장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고 죠셉 신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찰서에서 그는 우리에게 금을 팔았다고 진술했단다. 우리가 금 10kg를 받고,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집으로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경찰서에 같이 갔던 남편과 학교직원들은 그 이야기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고, 마리화나 같은 환각성 마약을 복용한 것 같으니, 법정보다는 아무래도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처리하자고 결론을 지었단다. 정신 나간 사람 덕분에 정신없이 보낸 주말을 돌아보며, 우리는 한시름 걱정을 놓고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번에는 경찰관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법원으로 출두하라고 연락을 해왔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머리가 복잡해지려는데, "부릉!"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루이스가 나타났다. 루이스의 말에 따르면, 대학 측에서 이 사건을 다시 고민을 했고, 범인을 그냥 "정신 나간 사람"으로 풀어주기보다는 법정에서 죄를 물어 대가를 받게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단다. 그래야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단다. 따라서 우리에게 대학교 측 변호사와 함께 번거롭겠지만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생전 처음 피고가 되어 시에라리온 마케니 법원에 갔다. 오전 9시에 법원에 도착했지만, 우리 사건의 판결은 정오가 되어야 판결 차례가 되었고 나는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와야 해서 재판 과정을 직접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게 금을 팔았다고 주장했던 그 남자는 법원에서는 잔뜩 겁을 먹고, 자신이 거짓말을 했고 잘못을 인정하며 선처를 구했단다. 그리하여 그는 2주 구류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한낮의 불청객"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노골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No!"를 외치며 단호하게 뿌리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마 그 불청객과 재판을 지켜보았던 사람들도 쉽게 외국인에게 다가가서 뭐든 요청하려는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