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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san Sep 12. 2016

물, 물, 물

물 찾아 삼만리......

우리 집에는 3개나 되는 화장실마다 수도꼭지와 수세식 화장실, 그리고 샤워기까지 있다. 부엌에도 멀쩡하게 수도꼭가 설치된 개수대가 있고, 한 일주일 동안 "콸콸" 나오는 물은 아니어도 불편함 없이 생활을 했다. 그런데, 샤워기를 시작으로 물줄기는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쫄쫄 흘러나오는 단계를 거쳐, 똑똑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식수는 정수된 물을 250ml 플라스틱 비닐용기에 넣어 50팩씩 파는 현지 정제수를 사 먹고 있어서  당장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비축해 둔 물이 한 통도 없는 상황에서 물이 안 나온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잠깐 단수가 되었나? 곧 나오겠지....'하고 기다렸는데, 몇 시간이 지나고, 반나절이 지나도 물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전기를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없는 점이 불편했는데, 전기가 없는 불편함은 물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당장 밥을 할 수가 없고, 세수, 양치, 그리고 화장실에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 불안감에  단수가 된 지 반나절이 지나서  대학에  연락을 했고, 루이스가 금방 나타났다. 


"아이고, 내가 이 옹고집 수녀님들을......!" 대학 직원 루이스는 밑도 끝도 없이 수녀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단지에는 작은 의원 하나, 작은 수녀원 하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나병환자의 신발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방이 함께 있다. 우리 집과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수녀원의 수도는 단지 안에 있는 우물과 연결되어, 수녀원의 발전기를 사용해 우물에서 물을 끌어올려 각각 사용처로 보내고 있었다. 물뿐만 아니라 전기도 연결되어 있어서, 수녀원에서 발전기를 켜고 끄는 시간이 바로 우리 집에서 전기불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인 셈이었다. 수녀원과 대학은 둘 다 가톨릭 마케니 교구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기관이었다. 단지 안의 땅과 건물은 대학의 소유였고, 대학은 이에 대한 관리와 유지를 수녀원에 위탁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우리 집도  수녀원에서 관리하며 나이지리아(Nigeria) 수녀님들이 거주하고 계셨는데, 대학 측에서 우리의 사택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하면서 수녀원에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던 것이었다. 이에 수녀원 측에서는 단지 안에 우물이 하나라서  물은 공급해 주겠지만, 전기까지 함께 공급할 수는 없다고 대학에 통보했다. 수녀원에의 발전기는 자신들만 사용하기에도 용량이 부족하니 우리가 발전기를 따로 구입해서 전기 사용을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학 측은 이에 확답을 미루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일단 따로 발전기를 마련할 때까지 전기를 함께 사용하되, 사용한 만큼 요금을 따로 지불하겠다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수녀원에서는 따로 발전기 설치하기 전까지는 물을 공급할 수 없다며, 우물에서 우리 집까지 연결된 수도관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사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수녀원에서는 물 공급을 차단했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불편함 없이 물을 사용했던 것은 물탱크의 물이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막을 루이스로부터 듣고 나자, 슬며시 화가 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학과 수녀원의 갈등 사이에 바로 우리가 놓여 있는 셈이었다.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 수도꼭지가 설치된 것을 보고, 물이 당연히 나오는 줄 알고 마음을 푹 놓았던 기억이 스쳐갔다.  우리는 대학 측에 빠른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수녀원에도 찾아가서 물이 없는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루이스는 바로 발전기 구해서 우리 집의 전기시설과 연결시켜 주겠다고 했고, 수녀원의 담당 수녀는 대학과 갈등이 있는 것이지 우리 가족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필요하면 수녀원에서 물을 받아가라고 했다. 


루이스가 발전기를 바로 구한다고 해도, 이를 설치하고 기존에 연결된 수녀원의 발전기와 우리 집의 전기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려면 전기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설령 당장 기술자가 와서 이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장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200m가량 떨어진 수녀원의 부엌에서 물을 받아오기로 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쫄쫄 흐르는 물을 20-30리터 정도 되는 물통에 받아서, 200m 떨어진 집으로 옮겨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 서너 차례 양 손에 물이 가득 든 통을 들고 몇 차례 오가면, 온몸은 땀에 젖었다.  힘들게 받아온 물을 샤워를 목욕하는데 다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루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을 길어오는데 거의 2-3시간이 걸렸고, 남의 집에서 물을 얻어오는 셈이라서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물은 또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물을 아끼기 위해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한 물은 흘려버리지 않고 바로 변기의 물탱크를 채웠다. 빨래를 하기도 조심스러워서, 가능하면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살짝 비누칠을 해서 대충 헹궈 빨았다. 안토니오는 늘 마당에 나가서 쉬를 하도록 하고, 마르코는 변기에 비닐봉지를 씌워서 큰일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물 때문에 고생 한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드디어 대학 측에서 우리 집에 단독  발전기를 설치했고, 수녀원에서는 물을 다시 공급했다. 콸콸 나오지 않아도, 쫄쫄쫄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어찌나 고마운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며칠이 가지 않아, 쫄쫄쫄 나오던 물은 다시 멈추었다. 엄습하는 불안에 이번에는 한 걸음에 수녀원으로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우물이 다 말라버렸어요. 우리도 하루 종일 펌프질을 해야 물 한 통을 받기가 어려워요. 아무래도 건기의 절정인지라......"까만 얼굴의 수녀님은 체념한 듯 대답한다. '우물이 말랐다. 건기의 절정이라....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지?' 우물이 말라서 물이 안 나온다는 현실에 충격을 받아 대학 측에 다시 사정을 이야기하니, 루이스는 놀라지도 않고 대답한다. "건기에는 늘 발생하는 일이랍니다. 대학의 우물은 좀 더 깊으니 오늘부터는 대학에서 물을 받아서 집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그 날이후 대학의 운전기사 패트릭은 매일 10리터 용량의 노란색 플라스틱 통에 물을 가득 받아서, 두 통씩 집으로 배달해 주었다. 하지만 몇 주일이 지나자  대학의 우물도 말라버렸다. 이번에는 마르코가 패트릭과 함께 근처 마을의 물이 마르지 않은 우물을 찾아다니며 물 통을 채웠다. 그야말로 물 찾아 삼만리...... 마르코는 물을 길러 오면서 매일 우물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꺼냈다. 우물에 가면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그나마 우리는 대학의 차가 있어서 물을 쉽게 운반하는 셈이란다.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니, 이웃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몇 시간씩 물을 찾아 길어 나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의 반나절은 물을 찾아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던 어느 날 밤, "두두둑, 다다닥!" 빗소리가 들렸다. 무더운 밤 잠결에 들려온 마술 같은 빗소리에 놀라, 나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봐! 비가 오는 것 같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빗소리 인가! 버뜩 정신을 차리고, "물 받아야지!" 소리를 지르며 집에 있는 통이란 통은 다 들고 밖으로 나갔다. 옆 집, 뒷 집 마당에서도 인기척이 들린다. 빗물을 받고  샤워를 하는 것도 같다.  베란다에 대야, 물통을 쭉 늘어놓고 경쾌하고 시원한 빗소리를 한참 동안 감상했다.  이튿날 화창한 햇살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대문 바깥에 놓인 통마다 물이 가득하다. "와! 우린 물 부자다." 통마다 가득 찬 물을 보고 있으려니, 백만장자라도 된 듯 가슴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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