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머리가 이쁘네! 누가 심어줬니?
요즘 시에라리온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머리 스타일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곳의 남자들은 어른이건 아이이건 입대하는 한국의 군인처럼 까까머리이다. 날씨가 덥고, 이 곳 사람들은 거의 곱슬머리이다 보니 머리를 늘 짧게 유지하는 것이 면도를 하는 것처럼 단정한 모습의 표준인 듯하다. 그에 비해 여자들의 머리는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하다.
"엄마, 저기 봐. 수박이야.!"
안토니오가 교복 치마를 입고 걸어가는 여학생들의 뒤통수를 보고 소리쳤다. 머리카락을 촘촘히 땋아서 여러 가닥으로 내려간 모습이 정말 수박을 연상시켰다. 가늘게 여러 가닥으로 땋아내려 간 머리카락과 그 사이의 줄이 마치 잘 매어놓은 밭고랑 같기도 했다. '아이고, 신기해라. 도대체 어떻게 머리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보면 볼수록 너무 신기했다.
매일 집에 오는 테레사의 머리도 유심히 보니, 촘촘하게 땋아진 머리가 정수리 왼쪽으로 삐쭉 올라와 있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테레사에게 물었다. "테레사, 그 머리 혼자서 땋았어요?" 그녀는 예기치 못한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내가 머리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머리를 어떻게 혼자 심어요. 주인집 여자가 심어주었죠. " 테라 사는 머리를 "심는다"(plant)고 말했다. 쌀이나 나무를 땅에 심고 가꾸듯이, 머리 밭을 심고 가꾼다......"그 머리를 심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머리스타일마다 이름이 있나요?", "특별한 머리를 심어주는 미용실 같은 곳도 있나요?"내가 끝없이 질문을 쏟아내며 궁금해 하자 테레사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제 머리처럼 이렇게 여러 가닥으로 땋아 정수리 왼쪽으로 올리는 걸 링건(linggun)이라고 불러요. 머리카락을 모두 정수리 쪽으로 올려서 마무리를 하면 '세븐업'(7-up)이라고 부르고, 두 갈래로 나누어서 양 쪽으로 솟아오르게 심으면 '돌화덕 두 개'(two fire ston), 세 갈래로 나누어서 솟아오르게 하면 '돌화덕 세 개'(three fire ston)이라고 하죠.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가닥가닥 땋아 내리면 '모두 아래로'(all go down), 수평으로 땋아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묶으면 "통과, 통과"(pass pass),......
테레사에게 머리 밭 가꾸기의 기본을 배운 후, 길을 지나가는 여인과 여자아이들의 머리 모양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어떤 심기를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동네 이웃 아낙들 서너 명이 서로 머리를 심어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매일 길을 지나다니며 인사를 나누던 사이어서, "와, 머리 예쁘게 심고 있네!"하며 가까이 다가섰다.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인의 길고 곧은 머리카락이 낯설었을 터였고, 나는 가늘고 곱슬곱슬한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신기했다. 우리는 서로 머리카락을 만져보며 깔깔 웃었다. 처음 시에라리온에 왔던 서양 선교사들은 이곳 여인들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고는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며 목화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인들의 머리 심기는 끊이지 않는 수다와 함께 한나절이 지나도록 지속되었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여인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것인지!
여자 아이들의 머리스타일도 무척 다양해서, 안토니오 유치원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같은 스타일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엄마가 딸에게 쏟는 애정이 머리 밭 가꾸기로 드러난다고 할까? 머리 밭을 형형색색의 작은 핀으로 장식한 아이,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는 곧은 머리카락 가발을 머리 밭에 접붙인 아이, 솜사탕처럼 동글동글 머리를 묶은 아이,...... 한 아이에게 "와, 머리 이쁘네! 누가 심어줬니?"하고 물어보니, 아이는 웃으며 대답한다 "내 머리는 맨날 엄마가 심어주는데, 어제 처음으로 우리 언니가 심었어요. 그래서 쪼끔 삐뚤빼뚤해요." 이야기를 들으며 가꾸어 줄 머리 밭이 없는 아들을 둔 엄마라서 한편 아쉽고,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