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흐린 날, 맑은 날..... 인터넷이 안 되는 이유!
마케니 대학의 1월은 방학기간이다. 2월에 졸업식이 있고, 그 이후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중순쯤 도착한 우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학교로 출근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마케니 도시 전체에 아직 공공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라서, 개인 가정에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사용되는 전기는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생산된다. 마케니 대학도 예외가 아니라서 오전, 오후 그리고 저녁으로 나누어서 발전기를 가동하고, 강의시간도 여기에 맞춰 짜여 있다. 이런 상황이니 통신망을 이용한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고, 학교에 설치된 위성 수신기를 통해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이 위성 수신기도 전기가 공급되는 시간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매일 아침 9시가 되면, 대학 행정건물 회의실은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한 학기 연구와 강의로 대학을 찾은 아일랜드 학자 데이비드가 가장 일찍 출석 도장을 찍고, 자매결연을 맺은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에서 방문한 우제니오가 가족들과 스카이프를 시도한다. 안토니오를 유치원에 보내고 부랴부랴 도착한 나와 남편도 각각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1분, 2분, 3분....... 느릿느릿...... 메일 하나를 열고 확인하는 데도 5분이 넘게 걸려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과 이야기를 하던 우제니오의 목소리가 "어, 어, 여보세요.."하고 높아지는가 싶더니, 말수가 적은
데이비드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인터넷에 문제가 없는지 살핀다. 남편은 인터넷이 또 안된다는 제스처를 나에게 보냈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회의실 옆에 딸린 작은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잠시 후 문이 열리며 당황스러워하는 압둘이 보인다. "압둘, 우리 인터넷이 갑자기 끊어졌어요. 왜 그런 건지 점검 좀 해 주세요." 자그마한 체구의 뿔테 안경을 쓴 압둘은 대학의 전산망을 관리하는 직원인데, 인터넷이 끊어지거나 아예 연결이 안 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그런데 그는 번번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뿐 아니라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워낙 인터넷 환경이 좋은 한국에서 살다온 나는, 물이나 전기보다도 인터넷 환경이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글쎄요. 제가 아까 접속했을 때는 되었는데....."압둘은 이미 몇 차례 나의 끈질긴 괴롭힘을 당한지라, 대답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한 번 점검을 해 봐달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나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조치를 취할 때까지 그를 졸졸 쫓아다녔던 것이다.
나는 제한구역이라고 표시된 그의 방에 들어서며, "다시 한번 시도를 좀 해봐요."애원했다. 압둘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돌아가 앉으며 화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설정을 바꾸어가며 무언가를 시도하는데, 계속 접속이 안된다는 메시지가 뜬 모니터를 나에게 보여준다. "압둘 생각으로는 왜 안 되는 것 같나요?"답답한 마음에 압둘에게 묻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뜸 대답한다. "그게, 우리가 위성 수신기를 사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거라서, 비가 오거나 흐리면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순간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깥은 햇빛이 찬란한 맑은 날씨가 아닌가!"하지만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인데요?"그러자 압둘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그게, 지금 여기는 맑지만 저 하늘 위에는 흐릴 수도 있다는 말이죠. 저 하늘 위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내가 못살아!' 압둘의 대답에 할 말을 잊었다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그러지 말고, 공유기 전원을 아예 껐다가 다시 켜 봐요!"하고 제안했다. 기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문제가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껐다가 켜는 것! 압둘은 내 말대로 공유기 전원을 껐다가 켰고, 잠시 후 제한구역인 압둘의 방 밖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었어요! 야호!"
그 날 일이 있은 후, 내가 고장 난 인터넷을 고쳤다는 소문이 대학 내에 돌았다. 한 번은 부총장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다급하게 "지난번에 인터넷 문제를 해결했다지요? 지금 급히 이메일을 확인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안되네요. 압둘을 찾아가 해결 좀 해주시지요."하고 부탁하는 일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