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날의 친구란, 비 오늘날 밤의 카드놀이......
아주 반가운 소식이 생겼다.
우리 집이 있는 스토코 단지 안에 새로 이웃이 생긴 것인데, 소냐와 알리체라고 하는 두 명의 이탈리아 친구들이다. 카리타스(Caritas)라는 가톨릭 교회의 복지, 긴급구조, 개발협력 등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에서 파견된 이십 대의 두 아가씨는 "정의와 평화"(Justice and Peace)라는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왔단다. 시에라리온 10년 내전이 남긴 상처 치유 프로그램을 비롯해, 올해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모니터링, 민주주의(democracy)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1년간 마케니에 체류할 계획이란다.
짙은 밤색 머리를 높이 올려 묶고, 쾌활한 웃음을 띄며 인사하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출신의 자그마한 소냐. 그리고 금발 곱슬머리를 짧게 다듬고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이탈리아 북부 빈첸자 출신의 키가 큰 알리체. 그녀들은 우리 집 창문으로 바로 보이는, 20m 정도 떨어진 녹색의 작은 집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테니에 조금 일찍 도착한 '선배'로서, 비가 오면 반드시 물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동원해서 빗물을 받을 것, 발전기로 전기를 공급받는 시간, 현지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 등 생활정보를 그녀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사실 우리는 그저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을 넘어서 생활의 공동체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전기 발전기에 있었다. 같은 단지 안에 있는 수녀원에서 전기 제공을 거부해서(구체적인 이야기는 "물, 물, 물"편을 참조) 우리 집은 따로 발전기를 마련했는데, 그 후 도착한 이웃집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발전기를 공유하기로 했다. 커다란 사과 궤짝만 한 크기의 자가 발전기는 60-70kg 정도로 무겁다. 발전기를 가동하면 "다다다다닥닥닥!"하며 울려 퍼지는 소음은 도로공사를 하는 것처럼 시끄러웠고, 주변엔 벤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서 발전기는 당연히 실외에 설치해서 가동하는데, 현지에서 소형 발전기는 도난 1 순위의 제품이었다. 우리는 매일 발전기를 실외로 옮겨서 가동시키고, 발전기를 끄면서 다시 집안으로 기계를 들여와야 했다. 다소 귀찮고도 중요한 전기 발전기 가동 및 정지 작업에 우리의 이웃은 자신들도 참여하겠다고 나섰고, 그래서 매일 밤 발전기 책임 3인조가 탄생했다.무게도 꽤 나가지만, 부피와 안전성을 고려해서 발전기를 이동하는 작업에는 두 사람이 양 옆에서 들어야 한다. 또 발전기를 끄는 시간인 밤 10-11시경에는 온통 깜깜하다. 어두움 속에서 발전기를 실외에서 실내로 옮기려면 렌턴을 들고 안전하게 길을 이끄는 길잡이도 필요하다. 만약 비가 오면 침수로 인한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발전기에 우산을 씌워서 조심조심 운반해야 했다.
그렇게 발전기를 무사히 실외로 옮겨서 가동을 시키고, 두 시간 가량의 "밝은" 밤을 즐기려던 어느 날 밤이었다.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먹으려고, 부엌에서 한참 소스를 만들고 있는데 "푸르르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우렁차게 울리던 발전기 소리가 멈추었다. "엄마~!"하며 방에서 놀던 안토니오가 어둠 속에서 외쳤고, 나는 얼른 렌턴을 켜서 촛불을 찾았다. 이전에 전기가 수녀원의 발전기와 연결되어 있을 때도,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일이 빈번했기에 이런 상황이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발전기에 기름이 떨어졌나?"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불 빛 하나가 우리 집으로 다가온다.
"전기가 나간 것 같아! 역시 너희 집도 암흑이네." 한 손에 렌턴을 들고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알리체였다. "그러게, 갑자기 발전기가 멈추었어. 기름이 떨여졌나? 엊그제 채웠던 것 같은데...... 다들 무사하지? 촛불은 있어?" 마르코가 물었다. 알리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게, 소냐는 어둠 속에서 샤워 중이고..... 나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깜깜해졌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렇게 나왔지. 다행히 렌턴은 있는데, 촛불 여분이 있으면 좀 빌려줄래?" 나는 촛불을 몇 자루 꺼내어 알리체에게 건네었다. 샤워를 하다가 어둠 속에 갇혀버린 소냐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저녁은 다 준비했어? 우리는 스파게티 소스가 거의 다 되었는데, 저녁 같이 먹을까?"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요리를 하는 일은 고역이다. 알리체는 마침 자신들은 스파게티 면을 다 삶아 놓았단다. 잠시 후, 소냐와 알리체가 가져온 파스타를 우리가 만든 소스에 넣어서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었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조명삼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니 우리의 소박한 저녁식사는 즐거움이 넘쳤다.
그때 소냐가 불쑥 "우리 카드놀이할래?"하며 주머니 속에서 카드를 꺼냈다. 서양의 트럼프와 비슷하지만 스페이드, 하트, 클로버, 다이아몬드를 대신해서 동전, 칼, 컵, 방망이 모양과 기사들이 등장하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비롯된 카드놀이라고 했다. 소냐, 알리체, 나 그리고 남편이 함께 모이니 짝도 딱 맞았고, 패를 둘로 나누기도 편했다. 카드 패가 좋지 않을 때 소냐는 "이런 제기랄.."하고 이탈리아어로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알리체는 소냐를 쏘아보며 "이봐, 세 살 어린 아기가 듣고 있거든!"하면서 핀잔을 주었다. 물론 안토니오는 소냐가 했던 말을 쏙쏙 알아듣고, 억양도 틀리지 않고 표정도 똑같이 "이런 제기랄, 이게 무슨 패야!"하고 따라 했다.
그날 밤 이후, 우리 두 가족은 종종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식후 오락 프로그램으로 거의 매일 카드놀이를 함께 했다. 덕분에 안토니오는 글이나 숫자를 배우기도 전에 카드 패를 읽고 카드놀이에 끼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