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구상, 강사 찾기, 학생 모집, 그리고 개강
2월에 마케니 대학의 졸업식이 끝나자, 학기는 시작되었다. 마르코는 사회과학과의 교양 코스인 "문화인류학"을 바로 맡아서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개설하기 원했던 "중국어"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과목이고, 마케니 대학에는 인문학과가 존재하지 않아서 어느 학과에 개설을 할지,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지, 수업을 어떻게 구성할지, 학교 측에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1년 정도라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최근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아프리카 곳곳에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이 많은 사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의 수도인 프리타운에서 마케니에 이르는 고속도로 공사를 중국에서 건설 중이고, 시장에 가면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일용품이 거의 "Made in China" 제품이다. 때문에 현지인들은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은 편이었다. 마케니 대학에도 중국에서 경제학으로 석사, 박사를 마치고 돌아온 브라이만 박사와 컴퓨터를 전공한 빅터 박사가 막 중국에서 돌아와서 재직 중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학원"이 스쳐갔다. '그래, 어느 학과에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개설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대학 학과와는 구분된 어학원을 만들면 되겠구나!' 마케니 대학 안에 독립적으로 어학원을 설립해서 중국어 과목을 개설하자. 학교의 학생뿐 아니라 외부에서 중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학생으로 등록해서 수강할 수 있다. 학생들의 수강료로 어학원을 운영하며, 교재비, 강사료 및 운영비를 조달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어학원 아이디어를 남편을 비롯한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제시하니,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특히 우리 이웃의 소냐와 알리체는 자신들도 중국어반에 등록해서 공부하겠다며 빨리 개설을 했으면 좋겠다며 격려를 해 주었다. '내친김에 중국어와 함께 현지에 필요한 다른 언어도 포함시켜?' 이탈리아와 협력 프로젝트가 많은 마케니 대학의 특성상 이탈리아어는 학생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다. 또한, 중국사람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전에는 특히 광산업, 댐 건설 등 크고 작은 사업에 많은 유럽인들이 종사하고 있었고, 특히 교육과 관련된 사업에는 이탈리아 선교사들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NGO 기관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었다.
어학원을 차리려면, 학생 모집 전에 해야 할 일은 강사를 구하는 일이다. 중국어 강사는 나. 혹시 수강인원이 많아 지거나 수준에 따라 반을 편성해야 한다면 학교에서 재직 중인 중국 유학파 교수 두 명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는 소냐와 알리체 그리고 급한 경우 마르코도 강의를 맡아 주겠다고 했다. 대학에는 이탈리아 유학파 교수들이 꽤 많이 재직 중이어서, 혹시 우리가 떠난 후에도 강사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의 월급은 학교에서 나오고, 이탈리아어 강의를 맡아주겠다고 흔쾌히 승낙한 소냐와 알리체는 일체 강사료를 받지 않겠다고 해서 사실 강사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어학수업의 특성을 고려해서 학생을 15-20명 사이로 정하고, 수업 시간은 외부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로 정했다. 이는 대학의 저녁 발전기 가동시간으로, 교실마다 전기불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학생 모집 기간을 고려해서, 개강은 4월 중순으로 정하고 여름 방학 전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12주의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수업료를 얼마로 책정해야 할까? 대학의 교수, 강사 등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해서 외부인에게는 13만 리온, 대학 직원에게는 9만 리온, 학생들에게는 7만 리온으로 한 학기 수업료를 정했다. 이제 학생 모집 공고를 낼 차례였다. 우선 전단을 만들어서, 마케니 시내의 도서관, 시청, 그리고 학교 곳곳에 눈에 잘 뜨이게 붙였다. 신문방송학과의 임마누엘 교수는 유심히 보더니,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면 수업의 광고가 저절로 될 것이라고 인터뷰를 제안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라디오 스튜디오에 초대되었고, 시에라리온의 첫 중국어 강좌를 소개하게 되었다.
"시에라리온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 마케니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어 강좌를 열게 되었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은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마케니 대학의 언어센터로 등록하세요."
새롭게 만날 학생들을 기다리며, 개강일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