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니의 일상
엊그제 마케니 시내의 ECO은행에서 계좌를 열고, 당장 생활비로 200유로쯤 환전을 했다. 리온화 지폐를 대여섯 다발을 받아 들고 확인하는 작업에는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를 안내했던 루이스까지 동원되었다. 세 사람이 지폐 뭉치를 나누어 지폐를 세어 확인하고, 지폐 다발을 배낭 가득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환율이 얼마인지 은행 직원에게 들었지만, 그 숫자는 머릿속을 떠돌기만 할 뿐, 일상의 거래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1유로가 5000 리온쯤 된다면, 한국 돈 1300원이 5000 리온, 1000 리온은 260원......
며칠 지내고 보니, 마케니에서 식품 및 일용품을 살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시내 중심의 시장, 도시 곳곳의 잡화점, 그리고 슈퍼마켓. 우선, 시내 중심에 있는 시장은 입구나 출구가 있는 구획된 공간이 아니다. 길바닥에 큰 포대를 깔고 각종 그릇, 냄비, 주전자, 컵 등 식기류를 늘어놓아 진열한 냄비 장사, 그 옆 커다란 고무 대야 안에 오이를 가득 담아 놓고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 장사를 하는 오이 장사, 청양고추를 닮은 작은 고추를 쌓아놓고 한 컵 단위로 파는 고추장사, 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냉장고 삼아 고기를 파는 고기 장사, 생선장사, 기름장사, 채소장사,...... 주로 단일 품목 혹은 동일 분류의 물건을 파는 난전 사이에 드문드문 상점도 있는데, 바로 쌀과 밀가루, 계란을 취급하는 쌀 가계, 옷감을 파는 포목점, 각종 일용품과 가공품을 파는 잡화점들이다. 이런 잡화점들은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 퍼져 있다. 마지막으로 슈퍼마켓은 현지에서는 최고급 상점으로, 모두 레바논(Libanon) 상인들이 경영하고, 냉장고와 냉동고가 설치되어있다. 아직 공공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마케니에서, 가전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기가 있다는 뜻이다. 발전기를 돌리려면 기름이 필요하며, 기름을 사려면 이를 감당할 돈이 있어야 한다. 슈퍼마켓은 마케니에서 유일하게 시원한 음료, 아이스크림, 얼음을 구할 수 있고, 더위에 시들지 않은 신선한 채소를 살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식품과 일용품은 외국에서 직수입된 것으로, 선진국의 슈퍼마켓에서는 사은품으로 거저 주기도 하는 플라스틱 대야 같은 하찮은 물건도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주 고객은 그런 가격을 부담할 수 있는 부자이거나 외국인이라서, 쇼핑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거나, 과일 등을 팔기 위해 대여섯 명의 부인들과 아이들 무리가 늘 슈퍼마켓 출입구 앞에 진을 치고 있다.
아직 환전을 하기 전이라 땡전 한 푼의 리온도 없었던 마케니에 도착하던 날, 죠셉 신부는 우리를 데리고 아드난의 슈퍼마켓(Adnan's supermarket)에 갔다. 우선 급한 식료품과 물건을 고르라고 하셨는데, 환율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십만, 백만 단위의 가격을 보니 선뜻 물건을 카트에 넣을 수가 없었다. 뺑글뺑글 슈퍼마켓을 몇 바퀴 돌아서 당장 마실 생수와 조리를 하는데 필요한 냄비, 팬, 토마토소스와 파스타, 가루분유, 빗자루와 물걸레 등을 조심스럽게 골라 카트에 넣었다. 계산을 할 때 보니, 죠셉 신부님이 지폐 한 뭉치를 건네고 주인은 그 돈을 받아서 헤아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슈퍼마켓을 빠져나오자마자, 빠빠야, 바나나, 오렌지 등 과일을 손에 들고, 머리에 인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그리고 저마다 하나만 사달라고 들이민다. "신선한 빠빠야 사세요. 오늘 아침에 따온 거예요. 하나에 5000 리온만 내세요.", "달콤한 바나나 사세요. 이렇게 다 해서 4000 리온만 주세요. "그중 한 아이에게 무언가를 사면, 다른 아이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첫날 잘못 찍히면 매번 슈퍼마켓에 올 때마다 휘둘릴 것이 예상되었다. 우리는 웃음을 지으며 단호하게 "오늘은 필요한 것을 다 샀단다."하고 무리를 헤치고 나오는데, 민첩한 눈매의 키 작은 여자아이가 졸졸 따라오며 "그럼, 내일을 꼭 사줘야 돼요!" 하며 다부지게 외친다.
시내 중심의 시장까지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모험을 하지 않더라도, 비싼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빙빙 돌며 가격을
환율로 계산해서 따져보는 번거로움과 옹색스러움을 느끼지 않고도, 집 근처에서 필요한 양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며칠 사이에 깨달았다. 우리 집이 속한 단지의 대문을 나서기만 하면, 바로 옆에 굵은 나무 가지로 기둥을 세우고 풀을 엮어 지붕을 삼은 방갈로에서 거래는 이루어졌다. 아침마다 신선한 고구마 순, 카사바 잎 등 채소와 달걀 크기만 한 작은 양파와 200그램들이 의 작은 토마토소스 캔, 마기(maggi)라는 성냥갑 크기의 조미료, 그리고 쌀도 한 컵씩 팔고 있었다. 카트를 앞에 밀고, 필요한 것 뭐든 원하는 코너에 가서 수십, 수백 가지의 상품 중 가격, 브랜드, 포장과 할인정보를 따져보며 유유히 장을 보던 나의 일상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퍼뜩 '김치를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남편의 허벅지처럼 굵은 팔뚝의 주인장 아줌마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저, 혹시 마늘도 있나요?" 아줌마는 낯선 동양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병을 하나 건넨다. "마늘, 당연히 있죠. 여기 안에 있으니, 필요한 만큼 꺼내슈." 잼 병만 한 유리병 안에 마늘이 한 톨씩 들어있다. '마늘을 한 톨씩 판다고...!"스무 톨 남짓 든 병 안에서, 두 톨을 꺼내 들었다. "통마늘은 안 파나요? 이건 좀 오래된 것 같은데......"나의 물음에, 주인아줌마는 코웃음을 친다. "마늘이 얼마나 비싼데, 통으로 팔아요! 마늘은 원래 저장해 두고 먹는 음식이라 오래되도 괜찮아."
불현듯 육쪽마늘을 접으로 사서 광에 걸어두고, 늘 마늘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가 여기 오시면 완전 갑부 되겠네.' 마늘 두 톨을 멋쩍게 꺼내 들고, 또 뭔가 살게 없나 두리번거렸다. 그때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 든 알맹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땅콩이다. 내가 알던 땅콩보다 훨씬 작은 땅콩 알갱이가 자주색 껍질에 싸여 들어있었다. 모양이 조금 달라도, 내가 아는 땅콩 한 봉지를 낚아 들고 주인에게 값을 물었다."1000 리온 주쇼." 은행에서 바꾸어 온 보라색 5000 리온을 건네자, 주인은 허리춤의 전대에서 꼬질꼬질한 1000 리온 지폐 네 장을 건네준다.
거스름 돈을 받아, 마늘 두 톨과 땅콩 한 봉지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처녀가 머리 위에 계란 두 판을 이고 다가온다. "삶은 계란 사세요. 오늘 아침에 삶았어요." "삶은 계란이요? 한 개에 얼마인가요?" 처녀는 머리 위의 계란판을 내리며 대답한다. "1000 리온이에요."
'삶은 계란 한 개=마늘 두 톨+ 땅콩 한 봉지', '1000 리온은 260원'
싼 건지 비싼 건지 헤아려보려고 해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처녀는 망설이는 나를 바라보며, "계란 5개, 4000 리온만 주세요."하고 말을 건넨다. '에라 모르겠다', "그럼, 다섯 개 주세요."하고 아까 받은 꼬질꼬질한 지폐 네 장을 고스란히 계란 파는 처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돈을 받아 허리춤에 찬 지갑에 얼른 넣고, 삶은 계란 다섯 개와 소금, 그리고 고춧가루가 든 작은 봉투도 함께 비닐봉지에 넣어 건넨다. 마늘 두 톨과 땅콩 한 봉지 그리고 삶은 계란 다섯 개가 든 비닐봉지를 흔들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표지그림: 실제 크기의 마늘 두 톨, 그리고 토끼똥 만한 크기의 알갱이가 들어있는 땅콩 한 봉지.
각각 500 리온*(Leone)을 내고 샀다. 시에라리온에서의 첫 구매를 기념하여 그림으로 남겼다.
*리온(Leone)은 시에라리온의 화폐의 단위로, 동전은 한국과 같이 10, 50, 100, 500 리온이 있고, 지폐로는 1000, 2000, 5000, 10000 리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