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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Feb 09. 2023

#1. 한 달 살기, 마음먹은 이유


재택근무를 시작 한지 벌써 3년 차. COVID-19가 끝나더라도 회사는 재택근무를 지속하기로 했다. 

덕분에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를 늘 곁에서 돌봐 줄 수 있어서 마음 한편이 놓인다.


'엄마 출근 금지'라고 현관 문에  써 붙여 놓았던 삐뚤빼뚤 글씨의 아이 메모는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어느 날 아이가 떼어 버렸다. 이제 아이에겐 엄마는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일하는 엄마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은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골고루 해먹였더니 살도 많이 오르고 키도 쑥 큰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아이의 마음도 살이 붙고 쑥 성장했을까라는 생각에 멈추었다.


재택근무의 명과 암, 아이에게도 영향이 간다



출근하던 시절에는 온종일 엄마와 떨어져서 타인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아이가 안쓰러워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아이의 말에 기울이고 더 많이 아이와 함께 하려고 노력했었다. 퇴근하자마자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서 가방에 넣어둔 채 일절 연락도 받지 않았고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기분이 드는 하루였는지, 슬펐거나 행복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쫑알쫑알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재택근무 이후로는 그런 시간이 확연히 많이 줄어들었다. 하루 종일 함께 하기에 아이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회사에 나가지 않고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집에서 아이를 잘 돌보니, 나는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멋진 워킹맘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아이 생각은 달랐다. 


물론 엄마가 집에 있어서 좋긴 하지만 재택근무 전과 후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거다. 오히려 엄마가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지금 바쁘니까 자꾸 나중에 하자 하고 매번 기다리라 하는 엄마가 서운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게임을 하거나 TV 만화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학원을 많이 보내지는 않지만 집에서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아이의 학교 체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방과후수업과 몇 개의 학원을 돌렸더니 아이의 하루가 금방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아이가 이제는 '뭐 어쩔 수 없지'라며 체념한 듯 집을 나서는 뒷모습에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가 자라면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기고 규칙도 습득하고 시간 개념도 배워가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아이를 내모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잠잘 시간이야, 일어날 시간이야, 학교 갈 시간이야, 밥 먹을 시간이야, 숙제할 시간이야, 학원 갈 시간이야..'. 모든 게 무엇을 해야만 하는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는 삶이라 아이도 나도 빡빡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시간이다. 화상 미팅에 늦지 않게 들어가고 데드라인을 지켜서 자료를 보내야 하고 출퇴근 시간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아이도 엄마도 하루 종일 시간을 잘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시간을 잘 지키는 싸움에 내몰리는 아이와 나.



앞으로도 계속 아이와 나는 서로의 시간을 배려하며 노력을 해야 할 테고 아이가 자라면서 더 많은 규칙과 습관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우리 둘 다 시간에 쫓겨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일상이 아니라 느긋하게 여유 있게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딱 한 달만 그렇게 살아보자고. 


그런데 지금의 일상이 침범하는 서울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을 완전히 바꿔서 아무런 방해꾼이 없는 곳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서울만 아니면 될 것 같았는데 제주도나 강릉으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 경험담들을 찾아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학습도 해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 이왕 한 달 살기 하기로 한거 해외로 가보자. 공부는 없고 규칙은 아주 최소화해서 아이가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해보기로 했다. 대신 나라는 그동안 해외 출장 다니면서 눈여겨 봐두었던 몇 개 나라로 추렸고 그중에서 아이와 지내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보려고 한다.  



우리, 시간에 쫓기는 삶을 잠시 멈춰 볼까?




응, 엄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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